
수성못 입구에 자리한 수성못 관광안내소 '모티'(MOTII). <대구 수성구 제공>
도시 미관은 심미적인 요소다. 좋은 경관은 공간을 오가는 시민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마치 예술이 인간의 마음을 유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잘 정돈된 환경은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있다. 하지만 한국은 1960년대 이후 산업화로 급속한 인구 유입을 동반하면서 도시화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대다수의 도시가 단기간에 걸쳐 인위적으로 형성됐다. 이런 탓에 자연·문화유산과의 부조화, 획일적·폐쇄적인 주거단지, 무질서한 옥외광고물의 범람 등 도시 미관이 훼손된 곳이 많다.
팬데믹 이후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도시 미관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혼잡한 경관에 대한 지적과 함께 정비에 대한 요구가 잇따른다. 이에 최근 많은 지자체가 경관 개선과 공공디자인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대구 수성구다. 도심의 낡고 작은 건물을 재생해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2019년 대구 최초로 건축민간전문가 제도를 도입해 민간 건축가가 공공에서 건축하는 건축물과 도시 디자인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다른 도시화 차별화된, 수성구만의 특징을 담아내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는 구상이다. 최근 수성구 곳곳에 이런 건축물들이 조성되고 있는데, 새로운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처음 개막한 수성국제비엔날레를 통해 건축과 조경이 어우러지는 도시 경관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도시를 디자인하는' 수성구의 미적 실험을 들여다봤다. 14면에 계속

수년간 공실이었던 범어3동 행정복지센터를 2022년 리모델링해 탄생한 정호승문학관. 정호승 시인이 유년기를 보낸 범어천과 그 옛집 인근에 자리한다. 조현희기자
◆원룸주택이 문화시설로…공공건축의 변신
수성구 범어동에 위치한 정호승문학관은 수년간 공실이었던 범어3동 행정복지센터를 2022년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위치가 상징적이다. 정호승 시인이 유년기를 보낸 범어천과 그 옛집 인근에 자리한다. 건물에도 시인의 정신과 감성을 투영했다. 시집의 3:4 비례로 창과 벽을 반복 배치해 시적인 리듬을 살렸다. 붉은색 외관은 시인의 유년시절 추억인 범어천 바닥의 거친 흙을 상징한다. 비어 있던 옥상은 조경을 통해 '시인의 정원'이라는 콘셉트의 휴게공간으로 조성됐다.

고모동 개발제한구역에 조성된 '팔현쉼터'. 금호강 팔현습지 인근에 위치한 주민 공동이용시설이다. <대구 수성구 제공>

팔현쉼터 내 휴게공간. 목재 천장과 탁 트인 통창으로 안락함과 함께 개방감이 느껴진다. 조현희기자
고모동 개발제한구역에 조성된 '팔현쉼터'는 금호강 팔현습지 인근에 지어진 주민 공동이용시설이다. 노후화된 주택을 마을회관과 휴게공간, 소모임실, 화장실 등을 품은 주민친화적 간이휴게소로 탈바꿈시켰다. 내부는 노출 콘크리트와 목재가 어우러진 단정한 구조로 안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테이블 옆 통창으로 수성패밀리파크골프장의 녹색 풍경이 펼쳐져 탁 트인 개방감이 더해졌다. 금호강변 인근에 위치해 자연 속을 걷고 쉬기 좋다.

수성못 인근 들안길에 위치한 '들안예술마을 창작소'. 다세대주택을 지역 문화 거점시설로 바꾼 사례다. 조현희기자
특이한 공공건축물이 또 있다. 수성못 인근 들안길을 둘러싼 중동·상동·두산동 일대는 저층 주거지역이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수성구 타 동네에 비해 낙후됐다는 시선이 있었다. 하지만 마을 공동체 활동이 활발하고 작가들이 입주하면서 예술적 기운이 무르익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수성구는 이런 특성을 고려해 노후 공실 주택·원룸을 매입해 10개의 문화예술시설 조성을 목표로 한 '생각을 담는 공간 사업'을 2020년부터 조성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들안예술마을 창작소'로, 지난해 세계 3대 디자인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공공건축 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대구 수성구 상동에 위치한 들안예술마을 창작소 내 금속공방 작업실. <대구 수성구 제공>
들안예술마을 창작소는 평범한 다세대주택을 지역 문화 거점시설로 바꾼 도시재생 사례다. 들안어린이공원 근처에 위치한 다가구주택 한 채를 리노베이션해 전시장, 스튜디오, 커뮤니티 공간, 작업실 등으로 운영 중이다. 필로티 구조 건물의 1층은 보통 주차장으로 쓰이지만 이곳은 도서실, 전기차 충전소 등으로도 이용할 수 있게 조성했다. 건물의 용도가 공공시설로 바뀌면서 주차장 산정 방식도 달라져 여유 공간이 생겨서다.

외부 노천카페로 심리적 접근성을 개선한 황금2동 행정복지센터. <대구 수성구 제공>
이밖에도 경상도 방언인 '모티'(MOTII)라는 이름으로 수성못 모퉁이에 아트 갤러리 같은 입면 디자인으로 설치된 수성못 관광안내소, 외부 노천카페로 심리적 접근성을 개선한 황금2동 행정복지센터 등 다양한 공공건축물들이 지역 곳곳에 자리한다.
◆자연환경 연계한 건축도…국제비엔날레 개최
수성구는 지난해부터 건축·조경 분야 비엔날레인 '수성국제비엔날레'도 개최하고 있다. 조경 등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공공건축을 실현하고 그 가치를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구(區) 단위에서 이런 국제비엔날레가 열리는 건 이례적이다. 첫 행사인 2024년 수성국제비엔날레에는 5천200여명의 관람객이 발걸음했다.

수성국제비엔날레 프로젝트로 진밭골 목재친화도시 사업이 이뤄질 진밭골 일대. <대구 수성구 제공>
내년에는 'Living Ground(리빙그라운드)'를 주제로 두 번째 행사가 개최된다. 예술을 통해 삶의 공간을 돌아보고, 도시·자연·사람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전시로 기획된다. 이에 맞춰 국내외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다양한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노후 건축물 재생뿐 아니라 수성못·금호강 등 자연환경과 연계한 사업들이 두드러진다.

소규모 갤러리 4곳을 세우는 '연호지구 소규모 갤러리' 사업이 이뤄질 연호지 일대. <대구 수성구 제공>
대표적인 프로젝트로 △범물동 진밭골 일대에 목재친화거리(4㎞)와 목재커뮤니티센터를 단장하는 '진밭골 목재친화도시'(2024~2027) △연호지구 저수지 일대에 소규모 갤러리 4곳을 세우는 '연호지구 소규모 갤러리'(2025~2027) △들안길 일대에 어린이 문화예술광장을 조성하는 '들안예술마을 어린이 예술공원'(2024~2026) 등의 사업이 있다.
다만 수성구의 공공건축물에 대한 비판도 있다. 건축물의 미관에만 집중해 안전성은 떨어진다는 의견이다. 지난해 12월 수성구의회 정례회에서 김경민 구의원은 "수성구에서 신축한 공공건축물의 일부가 꾸준히 누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수성구는 현실적인 디자인을 통해 안전성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성구청과 수성구의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최근 4년간 신축된 22곳 청사 중 7곳에서 누수 피해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김대권 수성구청장은 "건축물이 미적 감각을 갖췄기에 물이 샌다는 것은 인과관계가 맞지 않다"면서도 "하자보수에 대한 기한이 5년이 있어 원인을 찾아 차츰 고쳐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