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에 나왔던 그 나무…경남 창원 동부마을 팽나무

  • 류혜숙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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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9-25 15:59  |  수정 2025-09-28 14:16  |  발행일 2025-09-28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와 유명해진 동부마을 팽나무. 바위덩어리 산의 한정된 토심에 뿌리를 박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한참 올려다봐야 할 만큼 웅장하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와 유명해진 동부마을 팽나무. 바위덩어리 산의 한정된 토심에 뿌리를 박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한참 올려다봐야 할 만큼 웅장하다.

대산들에 벼가 익어간다. 문 열린 하우스 안에 새빨갛게 매달린 것은 고추다. 대산제의 벚나무는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대산에는 큰 산이 없는데 대산(大山)이다. 대신, 넓은 들이 있다. 그래서 '대산'은 '한뫼'의 차자로 여겨진다. '한'은 '크다'는 뜻이고 '뫼'는 산뿐 아니라 넓은 들이나 평야를 뜻하는 옛말로도 사용되었으니, 대산은 곧 '큰 들'이다. 대산평야는 낙동강이 만든 범람원으로 농경지로 개간하기 이전에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황무지였다. 황무지가 곡창지대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백여 년 전이다.


마을 앞 도로에서, 토실토실한 벼이삭의 물결 너머, 똥메를 꽉 껴안은 마을을 본다. 동산 꼭대기에 마을의 신목인 팽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마을 앞 도로에서, 토실토실한 벼이삭의 물결 너머, 똥메를 꽉 껴안은 마을을 본다. 동산 꼭대기에 마을의 신목인 팽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동부마을의 팽나무는 2022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팽나무로 가는 골목길 곳곳에 드라마 속 대사와 고래 벽화가 있다.

동부마을의 팽나무는 2022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팽나무로 가는 골목길 곳곳에 드라마 속 대사와 고래 벽화가 있다.

◆ 대산면 북부리 동부마을


대산평야에는 여기저기 소규모의 고립된 구릉성 산지가 분포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를 순우리말로 '똥메'라고 부른다. 대산평야가 황무지였을 때부터 사람들은 똥메인 구릉지를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해 생활해 왔다. 자연재해로부터 어느 정도 안전한 곳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특히 평야의 북안 강변을 따라 툭툭 놓인 똥메는 스스로 자연제방의 역할을 하고, 따라서 마을은 열촌(列村)의 형태로 자리하고 있다. 대산면의 북부리 동부마을도 강변의 야트막한 동산에 기대어 자리한 똥메 마을 중 하나다.


마을 앞 도로에서, 토실토실한 벼이삭의 물결 너머, 똥메를 꽉 껴안은 마을을 본다. 산이라 부르려니 헛기침이 나는 조그마한 동산이다. 동산 꼭대기에 동산만 한 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나무는 마을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저 나무가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고, 세상 사람들은 저 나무를 '우영우 팽나무'라 부른다. 동부마을의 팽나무는 2022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소덕동이라는 가상의 마을이 도로 건립 계획으로 존폐 위기를 맞이했지만, 마을의 당산나무인 아름다운 팽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마을을 지켜낸다는 이야기다. 드라마가 끝나고 두 달 뒤, 드라마처럼 동부마을의 팽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집집마다 붙어 있는 작은 도로명 주소 명판 안에 팽나무가 있다.


팽나무로 가는 골목길 곳곳엔 벽화가 채워져 있다. 드라마 속 대사와 고래가 주를 이룬다. 실제 북부리 마을의 주민인 윤소정 작가가 직접 그린 것이라 한다. 고래들이 우주를 유영하는 박공지붕 창고에 '82경상남도지정 북부새마을기계화영농단'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옛날 동부마을 사람들은 벼와 보리, 밀 등 식량 위주의 농사를 지었고, 농사는 사람의 일이었다. 우리나라에 동력경운기, 동력탈곡기, 동력분무기 등이 일부 공급되기 시작한 것은 1961년부터라 한다. 그러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마무리된 후 농촌인력의 이농이 시작되었다. 1980년부터 농업기계화촉진법을 운용했고, 1981년부터는 새마을기계화영농단을 확대 조성했으며, 1982년에는 제3차 농업기계화 기본계획 5개년계획이 수립됐다. 오래된 간판 하나에 반세기가 흐른다. 지금 마을 인구는 30여 가구 60여명 정도다. 대다수 고령으로 60-80대가 절반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주민들은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수박, 참외, 딸기, 고추, 멜론을 재배하며 소득을 올린다.


팽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 오른쪽이 대산제방이다. 대산제는 일제강점기 때인 1920년대에 처음 쌓았다고 한다.

팽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 오른쪽이 대산제방이다. 대산제는 일제강점기 때인 1920년대에 처음 쌓았다고 한다.

북쪽으로는 낙동강 일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낙동강 푸른 둔치에는 대산파크골프장이 들어서 있고 강 건너는 밀양시 하남읍의 들이다.

북쪽으로는 낙동강 일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낙동강 푸른 둔치에는 대산파크골프장이 들어서 있고 강 건너는 밀양시 하남읍의 들이다.

◆ 마을을 지키는 어르신 팽나무


마을 곳곳에 감나무다. 감은 아직 초록이다. 마을 옆으로 흐르는 대산제방 사면에 연분홍 나팔꽃과 청보랏빛 달개비는 입을 꼭 다물고 누웠다. 대산제는 일제강점기 때인 1920년대에 처음 쌓았다고 한다. 일제가 대산면의 땅을 사들인 것은 경술국치 이전인 1905년부터다. 그들은 먼저 농토를 확보하고 범람을 막기 위해 1907년 '촌정제방'을 설치했다. 이후 산미증식계획에 따라 개발한 것이 대산제방이다. 현재 촌정제방은 대개 지방도가 되었는데, 동부마을 앞 도로가 촌정제방의 흔적이고, 북부리 마을로 들어오는 길 따라 이어지는 수로 또한 촌정제방의 흔적이다. 대산제는 지금 4대강 사업으로 정비되어 한쪽에 자전거길이 생겼고 둑길에는 벚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낙엽 떨어지는 벚나무 아래 하얀 애기나팔꽃이 예쁘게도 피었다.


대산제는 똥메에서 끝나고 똥메에서 시작된다. 동부마을 똥메는 바위산이다. 그래서 석암산이라고도 한다. 튼튼한 돌이어서 더 믿음직스런 자연제방이다. 수십 년 전 억수 같이 비로 물난리가 났을 때, 사람들이 이 동산에 올라 살아남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팽나무는 그 바위덩어리 산의 한정된 토심에 뿌리를 박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한참 올려다봐야 할 만큼 웅장하다. 팽나무는 높이 16m, 둘레 6.8m 정도로 어른 대여섯이 안아야 할 만큼 크다. 수령은 500살로 추정된다. 주민들이 팽나무를 신목으로 여겨 당산제를 이어온 지 90여년이 됐다고 한다. 나무는 오랫동안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이었고 지금도 허리에 금줄을 두르고 있다. 나무아래에 작은 절집이 있다. '대한불교 법화종 석암산 당선암(堂仙庵)'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1950년대에 비구 정공(正空) 스님이 거주하면서 당선암이라 했다 한다. 대웅전 왼편에 한 아름 정도 되는 두세 그루 팽나무가 있는데, 할매나무와 아들나무라 부른단다. 신목 팽나무는 할배나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당선암 스님이 마을 동제를 주관하고 있다.


동쪽을 바라본다. 가까운 똥메는 무진산, 마을은 대산면 유등리이고 그 너머는 김해시 한림면이다. 산 위로 톡 튀어나온 하얀 구조물은 최근 완공된 화포대교의 탑이다.

동쪽을 바라본다. 가까운 똥메는 무진산, 마을은 대산면 유등리이고 그 너머는 김해시 한림면이다. 산 위로 톡 튀어나온 하얀 구조물은 최근 완공된 화포대교의 탑이다.

대산제는 지금 4대강 사업으로 정비되어 한쪽에 자전거길이 생겼고 둑길에는 벚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벚나무가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대산제는 지금 4대강 사업으로 정비되어 한쪽에 자전거길이 생겼고 둑길에는 벚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벚나무가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남쪽으로는 대산평야가, 북쪽으로는 낙동강 일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낙동강 푸른 둔치에는 대산파크골프장이 들어서 있고 강 건너는 밀양시 하남읍의 들이다. 서쪽에 바짝 다가선 구릉은 북부리 서부마을이다. 산마루에 오래된 나무가 있었는데 불에 타 소실됐다고 한다. 동쪽을 바라본다. 강은 가늘게 멀어지고, 제방 아래 낙동강 둔치가 넓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가까운 똥메는 무진산, 마을은 대산면 유등리이고 그 너머는 김해시 한림면이다. 산 위로 톡 튀어나온 하얀 구조물은 최근 완공된 화포대교의 탑이다. 현재 창원 대산면에서 김해시 생림면까지 연결하는 왕복 4차로 공사가 진행 중인데, 화포대교는 부분 개통된 구간이다. 도로가 완성되면 마을 앞길은 사라질까. 아니, 사라지지 않고 조금 더 한적해지겠지. 팽나무 옆 팔각정에 두 쌍의 중년 부부가 강바람을, 또 들바람을 맞이한다. 갑자기 남쪽으로부터 거대한 회색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마을회관입구 처마아래에서 팽나무를 올려다본다. 빗속의 나무는 오히려 비를 주관하는 듯하다. 땅을 두들기던 비가 금세 멈추고, 새떼가 이때다 하고 허공을 가로지른다. 땅도 강도 하늘마저도 변했지만, 나무가 하늘과 땅을 연결한다는 신화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글·사진=류혜숙 전문기자 archigoom@yeongnam.com


>>여행정보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 창원방향으로 가다 영산IC에서 내린다. 영산교차로에서 하남, 부곡방면으로 우회전해 계속 직진, 수산교차로에서 창원방면 12시 방향으로 나가 직진한다. 수산교 건너 모산사거리에서 좌회전, 약 350미터 정도 가다 갈래 길이 나오면 왼쪽 북부리 방향으로 가면 된다. 약 2km 가면 동부마을 언덕 위의 팽나무가 길에서 보인다. 55번 대구부산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남밀양IC에서 내려 25번 국도를 타고 진영, 수산 방향으로 가다 수산교차로에서 직진해 수산교를 건너면 된다. 마을안쪽으로 들어가면 마을회관 옆에 방문객 주차 편의를 위해 마을 공동경비로 마련한 주차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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