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진입 대구·경북, 노인학대 신고 매년 증가세

  • 최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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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9-29 17:41  |  발행일 2025-09-29
대구 노인학대 신고 5년새 41% 급증
경북도 2배 가까이 늘어 위기 ‘경고음’
대구 주택가 전경. <영남일보DB>

대구 주택가 전경. <영남일보DB>

대구 동구의 한 주택가 골목, 낡은 철제 대문 너머로 날 선 고성이 새어 나온다. 인근 주민들은 익숙한 듯 발길을 재촉한다. "가끔 소리지르는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남의 집안 일이라 끼어들기가 참 조심스럽죠." 인근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주민의 말처럼, 노인학대는 대개 이처럼 견고한 담장 안에서 소리 없이 시작된다. 80대 여성 A씨가 아들의 폭언과 협박을 견디다 못해 노인보호전문기관의 문을 두드린 것도 이미 학대가 일상이 되어버린 뒤였다. 생활비를 이유로 반복된 언어폭력은 편안해야 할 노년의 삶을 서서히 갉아먹고 있었다.


이러한 현장의 징후는 통계로 고스란히 증명된다. 2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한병도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대구의 노인학대 신고는 2020년 682건에서 지난해 963건으로 5년 새 약 41% 급증했다. 올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8월까지 벌써 895건이 접수되어, 현 추세라면 연말까지 1천건을 상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경북 지역 역시 대구와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2020년 497건이었던 노인학대 신고는 지난해 777건으로 증가했으며, 올해는 8월까지 639건이 접수됐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긴 초고령사회의 단면이 가파른 학대 신고 곡선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대구경북은 전국 최고수준의 초고령지역이다. 올해 8월말 기준, 대구의 고령인구(만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21.2%다. 특광역시중 부산 다음으로 가장 높다. 경북 고령인구비율은 25.4%로 전남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로 높다. 그만큼 가족 등으로부터 학대에 노출될 개연성이 높은 상황이다.


학대 주체는 과거와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2020~2021년까지만 해도 (손)자녀에 의한 가해가 전체의 절반가량을 차지했으나, 최근 3년 사이 배우자에 의한 학대가 과반을 넘겼다.


최근 접수된 경북의 한 면 소재지 주택에서 발생한 70대 여성에 대한 배우자의 상습 폭행 사건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노인이 노인을 수발하며 발생하는 돌봄 피로와 경제적 고립이 폭력으로 분출되는 이른바 '노노(老老) 학대' 구조가 지역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리는 모양새다.


신고 증가에 발맞춰 수사 당국의 검거 인원도 눈에 띄게 늘었다. 대구의 검거 인원 수는 2020년 127명에서 지난해 251명으로 두 배 가까이 널뛰었다. 경북 역시 2023년 166명에 이어 올해 8월까지 108명이 사법 처리를 받았다. 경찰은 단순 훈방 대신 적극적인 수사와 검거에 나서고 있지만, 현장에선 처벌 이후의 삶이 더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경찰청, 한병도 의원실 제공 자료. <그래프=생성형 AI>

경찰청, 한병도 의원실 제공 자료. <그래프=생성형 AI>

보건복지부와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이 발간한 '노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학대 발생 장소의 절대다수는 '가정'(80% 이상)이다. 피해 노인이 가해자와 분리되지 못한 채 한 공간에서 생활을 지속해야 하는 현실이 '학대사건 재발의 불씨'가 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정서적 학대와 신체적 학대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외부에서 이를 인지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피해 노인이 자녀나 배우자의 처벌을 원치 않아 사건을 은폐하려는 경향도 신고의 문턱을 높이는 원인 중 하나다.


대구의 한 노인보호전문기관 상담실은 상담 예약과 신고 전화로 쉴 틈이 없다. 익명을 요구한 이 노인보호전문기관 담당자는 "상담실을 찾는 어르신들 대부분이 오랜 시간 참다못해 마지막 수단으로 이곳을 찾는다"며 현장의 어려움을 전했다.


그는 "학대가 장기화된 뒤 신고되는 경우가 많아 초기 상담과 즉각적인 보호 조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피해 노인을 가해자와 분리한 뒤에도 재학대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후 모니터링 체계를 촘촘하게 구축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실제 현장에선 신고 이후의 보호 인프라 부족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학대 피해 노인을 위한 전용 쉼터가 운영되고는 있으나, 급증하는 신고 건수와 피해 노인의 특성을 고려한 전문적인 케어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이다.


구미의 한 복지시설 관계자는 "초고령사회로의 진입 속도가 빠른 대구와 경북은 노인 부양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단순한 범죄 검거를 넘어 지역 사회가 노인 가구의 고립을 막고 돌봄 체계를 강화하는 예방적 접근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노인학대 문제는 개인의 가정사를 넘어 지역 공동체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로 인식되고 있다. 매년 늘어나는 통계 수치는 담장 안에서 들려오는 신호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로 읽혀진다. 대구시, 경북도, 해당 경찰청과 각 기초자치단체는 노인학대 전담 인력을 확충하고 유관 기관과의 협력을 외치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웃의 작은 관심이다. "일단 옆집에서 술 마시고 소리 지르면 예삿일이 아니다"라는 자각이 초고령 사회의 비극을 멈추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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