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창훈
'적반하장'은 도둑 적(賊), 거꾸로 반(反), 멜 하(荷), 지팡이 장(杖)자가 결합한 단어다. 그대로 풀어 해석하면 "도둑이 오히려 몽둥이를 든다"는 뜻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우리 속담과도 비슷하다. 그러고 보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잘못한 사람이 뻔뻔하게 큰소리치는 현상을 빗대는 말은 상존했던 모양이다.
주목할 대목은 방귀 뀐 놈이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책임을 상대에게 떠미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것. 대표적으로 병자호란 이후 파생된 '환향녀(還鄕女)'와 '후레자식'을 꼽을 수 있다. '화냥년'과 '호로자식'이란 멸칭의 기원이 되는 이 단어에 대해 다른 견해도 있지만 차치하고, 약소민족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슬픈 역사를 담고 있는 이 말의 유래는 이렇다.
전쟁에서 이긴 청은 조선의 국왕 인조에게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라는 굴욕을 강요했다. 또 전리품으로 수많은 재물과 함께, 왕족과 양반, 서민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을 볼모나 노예로 삼아 강제로 끌고 갔다.
문제는 노예로 잡혀간 여성들이 하나둘씩 돌아오면서 불거졌다. 누군가에게 귀한 딸이었거나, 부인, 그리고 며느리였던 이들. 고향에 남은 이를 대신해 이역만리 타국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왔지만, 당시 사회는 그들을 반기지 않았다.
특히 기득권층은 이들을 배척하기에 급급했다. 이 정도로 성에 차지 않았는지 몹쓸 짓을 당하고 돌아온 그녀들에게 "정조를 지키지 못하고 고향에 돌아온 여인"이라며 환향녀라는 굴레를 씌웠다. 또 원치 않은 임신으로 낳은 자녀들에게 "홀어머니 아래서 배운 것 없이 막 자라, 교양이나 버릇이 없다"며 후레자식이란 딱지를 붙였다.
조선 사회는 온갖 굴욕을 견뎌내고 살아 돌아온 이들을 왜 이렇게 박절하게 대했을까.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가부장적 가치관의 뿌리가 깊었다. 여기서 기인한 '남존여비(男尊女卑)'라는 사회 통념 속 의례가 가진 주술적 기능을 이용해 표출된 문제를 덮으려는 지배층의 위기의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그녀들을 포함해 수많은 백성이 포로나 노예로 끌려가게 만든 원인과 결과에 대한 성찰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다시 말해 병자호란 발발의 책임을 져야 할 지배층에게 환향녀는 자신들에게 쏟아질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에 안성맞춤의 호재였다. 오죽하면 인조가 "살아 돌아온 여성들이 고을마다 지정된 강에서 몸을 깨끗이 씻으면 심신이 모두 정화된 것으로 보고, 각 집안에서 따뜻하게 맞으라"는 명을 내렸을까.
이처럼 자신들의 오판(정책 실패)으로 발발한 호란의 책임을 뒤로한 채, 죄없이 끌려갔다가 살아 돌아온 이들을 비난하는 적반하장의 반사회적 행태는 시공을 초월해 오늘도 진행형이다.
오밤중에 난데없는 계엄을 선포한 대가로 수감 중인 윤석열 전 대통령의 인권 타령이 그렇다. 또 자당이 배출한 윤 전 대통령의 폭주와 관련해 사과는커녕, 이재명 정부와 여당을 향해 '독재정권'과 '입법독재'로 각각 규정하고 좌충우돌 중인 야당. 그리고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한을 무기로 윤 전 대통령의 당선은 물론, 정권 유지에도 앞장섰던 검찰. 하나 더 보탠다면 전 정권과 홍준표 전 대구시장 시절에는 숨죽이고 있다가, 이제야 물 만난 고기처럼 'TK신공항 건설'에 대한 고견(?)을 쏟아내는 대구·경북의 정치인들. 이들에게서 적반하장의 향기를 느끼는 것은 나 혼자만의 착각인가.
마창훈 / 경북본사 부장

마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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