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태 동부지역본부 차장
포항의 산업지도가 흔들리고 있다.
철강과 2차전지, 기계산업으로 이어진 이 도시는 한국 제조업의 심장으로 불려왔지만, 지금 그 심장이 서서히 식고 있다. 글로벌 수요 둔화와 미국의 고율 관세, 중국의 저가 공세라는 삼중고 속에서 철강업계의 매출은 3년 연속 하락했다. 여기에 더해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이 결정적 타격을 가하며, 포항의 공장들은 가동률을 줄이고 인력을 감축하는 악순환에 빠지고 있다.
포항상공회의소가 지난달 채택한 '경제 위기 극복과 지역산업 발전을 위한 결의문'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다. '전기요금 한시적 인하' 조항이 포함된 것은 그만큼 현장의 절박함이 깊다는 방증이다. 이미 중소 제조업체들은 "전기요금이 세금보다 무섭다"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한국전력의 통계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요금 체납액은 최근 5년 새 83% 급증했다. 체납 업체 수도 1만2천 곳에서 1만5천 곳으로 늘었다.
철강산업의 전기요금 부담은 치명적이다. 2022년 1분기 ㎾h당 105.5원이던 산업용 전기요금은 올해 7월 194.1원으로 뛰었다. 3년간 7차례의 '인상 폭탄'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미국(80.5달러/MWh)이나 중국(60~80달러/MWh)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제조업 국가의 근간이 무너지는 수치다. 전기로 제강사들은 "친환경 전환을 요구하면서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은 모순"이라며 호소하지만, 정부는 탈원전 기조 아래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며 전력 단가 상승을 자초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원전 르네상스'로 질주하고 있다. 프랑스는 2035년까지 신규 원전 6기 추가 건설, 스웨덴은 40년 만에 탈원전을 뒤집었다. 그런데 유독 한국만은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현 정부는 기존 원전을 최대한 활용하되 재생에너지를 강조하고 있다. 태양광의 발전단가는 ㎾h당 130.5원으로, 원전(80원)보다 1.6배 비싸다. 정부가 태양광과 풍력 중심의 '친환경 전력' 확대를 지속할 경우, 전력 정산단가가 오르고 그 부담은 결국 산업현장으로 전가된다. 정책적 명분과 산업 현실의 괴리가 커질수록 '탄소중립'은 오히려 산업 붕괴의 명분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포항의 위기는 단순히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용 전기요금의 지속적 인상은 한국 제조업 전체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이미 독일은 전력다소비 기업에 최대 280억 유로의 보조금을 투입했고, 영국은 25% 인하를 결정했다. 중국도 최대 16%를 깎았다. 반면 우리 정부는 "시장원칙"을 내세워 산업용 요금 인하에 인색하다. 그러나 시장의 원칙은 균형 위에 서야 한다. 가정용·농사용 전기요금은 정치 논리에 묶여 동결되면서 산업용만 '한 놈만 팬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포항의 공장 불빛이 꺼지는 것은 단지 한 도시의 침묵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제조업의 엔진이 멈춘다는 신호다. 산업용 전기요금의 한시적 인하와 현실적 조정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탈원전 정책의 궤도를 재점검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그토록 외치는 '녹색성장'은 녹슨 철판 위의 공허한 구호로 끝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계산서다. 전력의 원가 구조와 에너지 전환의 속도를 현실에 맞게 재조정해야 한다. 산업이 무너진 뒤 요금을 내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포항의 결의문은 그래서 단순한 지역의 외침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경제의 마지막 경고음이다.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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