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본사 장석원 부장
경북도가 지난 3월 '저출생과의 전쟁 시즌2'를 선포했다. 출생 장려에서 양육 지원으로 정책의 무게 중심이 옮겨가며 결혼 축하비와 조부모 돌봄 수당, 다자녀 가정 지원 등 150여 개의 세부 과제가 촘촘히 실행 중이다. 덕분에 지난해 경북의 합계출산율은 0.9명으로 전년 대비 0.04명 상승했다. 단기 성과로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지금까지의 저출생 대응은 '태어나는 인구'를 늘리는 데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출생률 반등만으로는 지방 소멸의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 아이가 자라며 머물고, 일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생활 생태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출생은 곧 유출로 이어진다. 진정한 인구정책은 단기적 장려금이 아니라 사람이 머무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최근 경북도가 추진 중인 '생활인구 활성화 사업'은 이러한 인식 전환을 보여준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활용해 14개 시군에 114억 원을 투입, 유휴 건물을 리모델링해 문화·예술·창업 공간으로 바꾸고 도시민이 주말에 체류할 수 있는 '클라인가르텐(소형 정원)'을 조성하고 있다.
'워크스테이 in 안동', '예천 팬 아카데미', '갭먼스@청도' 같은 프로그램은 일회성 관광객을 지역과 지속적으로 관계 맺는 생활인구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출생 중심 정책에서 생활 중심 정책으로의 확장은 단순한 행정 변화를 넘어 지역 인구정책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이는 '살기 좋은 지역'을 넘어 '살고 싶은 지역'을 만드는 시도이며 사람과 사람이 엮이는 공동체적 관계망 회복으로 이어진다.
'천년 건축 마을' 사업도 같은 맥락에 있다. 경북은 경주·포항·문경 등지에 문화·산업·주거가 결합된 정주 단지를 조성하며 단순한 주택 공급을 넘어 일자리와 문화가 어우러진 지속 가능한 생활공간을 구상 중이다. 은퇴자에게는 귀향의 선택지를 청년에게는 자립의 기회를 제공하는 구조다. 또한 이들 단지는 지역 자원을 활용해 지역산업과 연계함으로써 지역 내 소비와 고용을 동시에 창출하는 구조적 효과를 낼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이 모이면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가 있으면 사람이 남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 경주는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숙박난을 겪고 있다. 하룻밤 숙박비가 평소의 몇 배로 치솟고 숙소를 구하지 못한 방문객들이 인근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지역 관광 인프라의 한계를 드러내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새로운 인구 전략을 설계할 기회이기도 하다. 관광객이 단순히 스쳐가는 방문자가 아니라 머물다 정착할 수 있는 잠재적 생활인구로 바뀔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생활인구 정책'의 본질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저출생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해법은 출산율 경쟁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생활 환경 구축에 있다. 안정된 일자리, 적정한 주거, 품격 있는 교육·문화 인프라가 있을 때 사람은 떠나지 않는다.
경북이 '저출생 전쟁'을 넘어 '생활인구 확보전'으로 나아간다면, 지방소멸을 막는 새로운 인구정책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태어나는 인구를 늘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살아가는 인구를 지키는 일이다. 그 변화가 시작될 때 경북은 다시 사람이 모이는 곳이 될 것이다.
장석원 경북본사 부장

장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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