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 경북문화관광공사 사장. 경북문화관광공사 제공
천년 전, 황룡사 9층 목탑 아래에서 신라인들은 사람과 세상의 조화를 기원하며 팔관회(八關會)를 열었다. 살생, 간음, 거짓말, 사치 등을 금하는 여덟가지 계율을 결의하며 현세와 내세의 평안을 빌었다. 고려 태조 왕건은 신라 팔관회를 계승해 국가 의례로 격상시켰다. '고려사'에는 송나라 상인과 여진, 일본 등지에서 온 외국인들이 참석해 방물을 바치고 풍악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팔관회는 종교 제례를 넘어 오늘날 세계박람회에 견줄 만한 국제문화축제였으며, 한국문화의 개방성과 포용성을 상징하는 뿌리라 할 수 있다.
1998년 외환 위기 속에서도 경북도와 경주시는 그 정신을 현대적으로 되살렸다. '문화의 세기'를 앞두고 시작한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경제 중심의 엑스포 개념을 '문화'로 확장한 세계 최초의 문화박람회였다. 황룡사 9층 목탑을 형상화한 '경주타워' 아래에서는 세계 각국이 모여 문화로 소통했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2006), 튀르키예 이스탄불(2013), 베트남 호찌민(2017)으로 무대를 넓혀 나가면서 한류 확산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문화엑스포는 신라의 원융회통(圓融會通), 곧 '원만하게 융화하고 모여서 소통하는' 정신을 현대적으로 구현했고, 경주는 '문화 실크로드의 출발점'으로 다시 빛났다.
이제, 그 천년의 축제 정신이 2025년 APEC 경주 개최로 이어가고 있다. APEC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21개국 정상이 모이는 국제회의지만, 경주에서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팔관회와 문화엑스포의 가치와 일맥상통하는 '세계와의 만남의 장'이다. 무력(武力)과 재력(財力)의 시대를 넘어, 문화와 대화로 세계를 연결하는 APEC 경주는 그야말로 '21세기형 팔관회'라 할 만하다.
경북문화관광공사는 APEC 이후를 대비한 '포스트 APEC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최근 건립된 '2025 APEC 경제전시장'은 정상회의장을 그대로 재현한 'APEC 정상회의기념관'으로 조성하고, APEC 공동번영의 숲과 기념숲이 들어서는 경주엑스포대공원의 명칭을 'APEC기념정원'으로 변경해서 지속가능한 국제문화의 교류장으로 변모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APEC 1주년을 기념하는 'APEC 기념 주간(APEC Memorial Week)'을 내년부터 운영해 나갈 계획이다. 낮에는 외국인 유학생들과 함께하는 '인터내셔널 스마일 페스타', 밤에는 '나이트 런(Night Run)' 등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기는 축제를 선보일 계획이며, 국제행사를 계속 발굴 유치하여 경주의 APEC 효과를 컨벤션을 건설 중인 인근 포항과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있는 안동과 고령 등 경북 전역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황룡사 9층 목탑이 고대의 국제컨벤션센터였다면, 'APEC기념정원'은 문화와 산업 그리고 관광이 융합된 미래형 교류 플랫폼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팔관회의 정신, 문화엑스포의 경험, 그리고 APEC 청년 세대들의 열정이 어우러지며 경주는 '문화로 세계를 잇는 도시', '평화와 번영의 문화수도'로 성장할 것이다. 나아가 21개국 청년과 예술인들이 함께하는 전시와 공연을 통해 포용·혁신·번영의 APEC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천년의 정신은 이렇게 새로운 시대의 경주에서 다시 꽃필 것이다.
김남일 경북문화관광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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