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무 경북스포츠과학센터장
최근 몇 년 사이, 스포츠의 무대는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다. 폭염으로 인해 마라톤 출발 시각이 새벽으로 당겨지고, 겨울 스포츠의 상징인 스키장은 자연설이 아닌 인공설에 의존한다. 기후 위기가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포츠가 누구보다 먼저 체감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엔 '날씨'가 변수였다면, 이제는 '기후'가 경기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2020년 도쿄올림픽 마라톤은 이상 고온으로 인해 홋카이도로 개최지를 옮겨야 했고,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사상 최초로 100% 인공설 경기로 기록되었다. 이 두 사례는 기후 변화가 스포츠의 일정, 장소, 심지어 종목의 존속까지 뒤흔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포츠는 자연을 배경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 자연이 변하고 있다면, 스포츠 역시 변화를 피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선수들의 안전과 경기의 공정성, 팬들의 경험까지 모두 기후의 영향을 받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희망의 움직임은 있다.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확산 중인 탄소 제로 스타디움 프로젝트가 그 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은 빗물을 재활용해 경기장 잔디를 관리하고, 전력의 상당 부분을 태양광으로 충당한다. 미국 시애틀의 클라이밋 플레지 아레나는 세계 최초로 탄소배출 제로 아레나를 표방하며, 관람객의 교통수단부터 음식쓰레기 처리까지 전 과정의 탄소 발자국을 계산한다. 또한 일부 구단은 지역사회와 협력해 '녹색 팬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속가능한 문화 확산에 힘쓰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친환경 트렌드가 아니다. 이제 지속가능한 스포츠는 구단의 사회적 책임이자, 브랜드 가치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팬들 또한 더 이상 경기력만으로 구단을 평가하지 않는다. 환경을 생각하는 팀이 응원할 가치가 있는 팀이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는 단순한 이미지 개선이 아니라, 스포츠 산업이 미래 세대의 지지를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2024년 한국프로야구는 그린 리그 캠페인을 통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일부 구단은 태양광 발전 설비를 갖춘 구장을 운영 중이다. 또한 국내 축구계에서도 환경부와 손잡고 탄소중립 경기 운영 지침을 시범 도입했다. 이러한 시도들은 스포츠가 환경 문제의 가해자가 아니라, 해법의 일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앞으로는 선수단의 이동 방식, 유니폼 제작 과정, 팬의 응원 문화까지도 친환경적으로 재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기후 위기는 분명 스포츠의 생존을 위협하지만, 동시에 스포츠가 사회적 변화를 이끌 주체가 될 기회이기도 하다. 경기장은 더 이상 단순한 경쟁의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인류가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상징하는 무대이다. 결국 지속가능한 스포츠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운동장 하나를 지켜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스포츠는 늘 인간의 한계를 시험해왔다. 이제 그 한계는 기록이 아니라, 지구와 공존할 수 있는 능력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때 진정한 승리는 더 빠른 기록이 아니라 더 오래 지속되는 미래일 것이다. 그리고 그 미래는 바로 지금, 우리의 선택과 행동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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