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 소설가
1907년 11월14일 스웨덴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안나 에밀리아 린드그렌이 태어났다. '말괄량이 삐삐' 등 세계가 알아주는 다수의 걸작을 창작한 린드그렌은 안데르센과 그림 형제에 이어 가장 많이 번역된 아동문학가로 인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말괄량이 삐삐'가 최고 널리 알려졌지만 본국 스웨덴에서는 '에밀은 사고뭉치'도 그에 못지않게 유명하다. 그래서 기자가 그녀에게 "에밀이 자라서 총리에 뽑혔으면 어떤 정치인이 되었을 것 같습니까"라고 묻는 일까지 생겼다. 그만큼 '국민 동화'로 추앙받고 있었다는 뜻이다.
기자의 질문은 우리나라의 문화와 정치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같은 경지의 대화가 언론인과 정치인 사이에 오갔다는 풍문은 들은 적이 없다. 사회 전반이 독서를 않는 풍토인 탓에 애당초 품격 있는 언어생활이 자리잡기 어렵다.
1889년 11월14일 네루가 태어났다. 네루는 아홉 차례나 투옥되었는데, 어린 딸에게 장차 읽히려고 1934년 편지 형태의 '세계사 편력'을 옥중 저술했다. 또 1946년에는 역사서이자 문화철학서인 '인도의 발견'도 지었다.
우리나라에도 학자형 독립운동가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독립의 기쁨을 못 누렸다.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 박은식은 1925년 타계했고, '조선혁명선언' 신채호는 1936년 옥사했다. 우리나라는 문화와 역사에 깊은 조예를 가진 정치인이 그리운 곳이다.
어떤 지도자가 훌륭한 정치인일까? '에밀은 사고뭉치'에 답이 있다. 기자가 뜬금없는 소리를 한 것이 아니다. 에밀네 집은 파리가 극성이다. 부엌에서 시달리던 어머니가 선언한다. "파리 끈끈이를 사야겠어." 아버지가 펄쩍 뛴다. "그 비싼 것을? 그러다가 우리는 거지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 게야!"
에밀은 고민에 빠진다. 마을 사람들이 다 가진 파리잡이 끈끈이를 못 사면 어머니가 불쌍하고, 사면 거지 신세가 될 가족들이 불쌍하다. 에밀은 뜬눈으로 밤샘 끝에 기상천외한 해결책을 찾아낸다. "파리 끈끈이를 샀다고 구걸하게 된다면 그전에 미리 구걸해서 그걸 사면 되잖아!"
에밀은 나무를 깎아 거지 지팡이를 만든 다음, 꼬마 거지로 변장해 돈을 얻는다. 이윽고 에밀은 파리 끈끈이를 스무 개나 사서 부엌에 빼곡 매단 후 기뻐한다. "내가 파리들을 모두 퇴치할 테니, 아버지도 어머니도 동생도 모두가 다 기뻐할 거야!"
에밀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생각하는 훌륭한 정치 지도자가 되리라. 그것이 기자의 판단이다. 어른들이 동화책을 읽는 나라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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