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 계명시민대학 강사, 미술학 박사
온통 단풍 세상이다. 나뭇잎이 곱게 물들었다. 한여름 태양을 견디고 비에 젖으며 얻은 빛깔일 것이다. 태어나는 모든 것은 저마다 산고를 겪는다. 고통이 따르고 세상에 나올 때는 두렵다. 서랍 속의 작가들이 세상에 나올 때도 그랬다.
서랍을 열었다. 잠자던 작가들이 하나둘 깨어나는 것만 같다. 묵혀두었던 원고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서영옥이 만난 작가Ⅱ', 마침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만나서 읽고 쓴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한데 모은 책이다. 고백하건대 거창하진 않다. 이미 발표한 글이고, 평론이라기보다 작가의 예술관을 경청하고 글로 풀어낸 작품론에 가깝다. "작가를 이해한 글을 쓰자"는 신념으로 매 순간 진심으로 만난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문장으로 공글린 흔적이다.
글 60편을 다시 꺼내 읽었다. 부족한 표현들이 다시 돌아가서 채우고 싶은 인생의 빈틈 같다. 인터뷰 도중 함께 울고 웃었던 공감의 온도도 되살아났다. 작품론을 책으로 묶는다는 것은 단순히 흩어졌던 글들을 하나로 뭉치는 작업이 아니었다. 작품과 다시 호흡하는 일이었다. 그 호흡이 책이 되어 독자에게 닿을 때는 또 하나의 창작이 이루어질 것이다.
제목은 서평을 쓴 기호학자 박일우 교수의 제안으로 정해졌다. 2015년에 낸 같은 결의 책 제목에 Two(2)만 덧붙였는데 성격이 더 명료해졌다. 미학자 김대중 교수는 서평에 "작품은 곧 작가"라고 적었다. 작품을 보는 것은 작가가 바라본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두 학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모든 창작은 사람에게로 향하고 사람을 통해 추창조(追創造)된다.
완성된 400쪽 갈피에는 여러 사람의 정성이 스며 있다. 편집자와 디자이너, 인터뷰한 60인의 작가와 서평을 써준 분들의 응원과 조언이 고루 버무려져 있다. 여전히 부족함을 알지만 '서영옥이 만난 작가Ⅱ'를 통해 동시대 지역 미술이 독자의 마음에서 다시 피어나고 선순환하길 바란다. 지역 작가들의 예술이 더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필자의 은밀한 시도라고 해도 괜찮다.
아직 열지 않은 서랍 속에는 제목을 달지 못한 문장들이 있다. 때가 되면 그 서랍 속의 작가들도 독자들과 마주하게 되리라 기대한다. 고운 단풍 다 지기도 전에 겨울이 당도한 것 같다. 밤바람이 차다. "부디 아프지 마라"는 한 시인의 기원을 떠올리며 저무는 가을밤 당신의 평안을 빈다. 열었던 서랍도 조용히 닫는다.
서영옥<계명시민대학 강사, 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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