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전년 대비 전반적으로 난도가 상승했다. 시험 난이도는 모든 수험생에게 동일하게 작용하는 변수이므로, 전체 집단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유불리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별 수험생에게는 전략적인 접근이 중요하다.
최근 명문 사범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음에도 임용의 어려움으로 의대 진학을 목표로 수능 시험을 다시 본 학생을 만났다. 이 학생은 앞선 두 번의 시험에서 국어 때문에 의대 진학에 실패했다. 작년 수능 직후, 나는 학습 방법의 전환을 강력히 제안했다. 학생에게 문학, 철학, 에세이, 문화사, 신문 오피니언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폭넓게 읽을 것을 강조했다. 특히 글을 읽는 과정에서 뜻을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반드시 사전을 찾아 정확한 의미를 확인하며 어휘력을 확장하도록 주문했다. 문제집 학습은 이전 대비 절반 이하로 줄이도록 조언했다.
올해 다시 수능을 치른 이 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가장 어렵다는 국어에서 단 한 문제만 틀렸다는 놀라운 소식이었다. 학생은 폭넓은 독서와 체계적인 어휘력 배양 덕분에 지문 이해의 깊이와 속도가 크게 향상되어 정답 찾기가 훨씬 쉬웠다고 했다. 학생은 "국어 고득점의 원리를 비로소 체득한 것 같다"라며, 수학 전공자임에도 앞으로 국어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돕고 싶다는 교육에 대한 새로운 소망까지 밝혔다.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이 사회 전반에 급속히 확산하면서, 많은 이들이 AI 활용 능력을 미래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AI는 기본적으로 사용자가 제공한 자료와 요구 조건을 바탕으로, 이미 학습된 방대한 데이터를 참조해 인간이 던진 질문에 최적화된 답을 찾아주는 도구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따라서 미래 사회에서는 양질의 질문(High-Quality Prompt)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만이 AI로부터 최적화되고 통찰력 있는 답변을 끌어낼 수 있다. 결국 'AI와의 대화'를 주도하는 '질문 능력'이 미래 사회의 핵심 경쟁력이자 생존 수단이 된다. 이러한 질문 능력의 토대는 단편적이고 말초적인 정보 소비가 아닌, 복잡한 맥락을 파악하고 논리를 구조화하는 '깊이 읽기'에서 비롯된다.
AI의 발전은 과거 가장 주목받던 소프트웨어 개발자마저 위협할 만큼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현재는 이공계 학생들이 인문사회계 학생들보다 취업의 불확실성을 더 많이 호소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이공계라서 죄송하다는 '이공송'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여러 자료에서 인공지능 노출도가 높은 산업군일수록 청년 고용이 유의미하게 감소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많은 공대생이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복수전공을 고려하는 현상은 단순한 흥미를 넘어,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대한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대응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제 문과라서 죄송하다던 '문송'의 시대도, '이공송'의 시대도 서서히 저물고 있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역량은 문제를 창의적으로 재구성하는 힘, 복잡한 맥락을 읽어내는 감각, 그리고 윤리적 성찰을 바탕으로 새로운 질문을 구조화하는 능력으로 수렴된다. 이러한 핵심 역량의 기반은 결국 다양한 분야에서 수행하는 '깊이 읽기'다. 읽기는 단순히 지식 습득을 넘어 인간의 정서와 타인의 경험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으로 확장된다. 독서는 비판적 사고뿐만 아니라 공감력, 상상력, 사회적 감수성을 기르는 데 압도적인 효과를 가진다.
청소년기에는 좋은 텍스트를 경험하는 읽기 활동이 특히 중요하다. AI와 공존하는 시대에는 스스로 정보를 선별하고, 비판적으로 해석하며, 주체적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능력이 최고의 생산성이 된다. 지속적으로 읽고 사유를 습관화한 학생일수록 변화에 대한 적응력과 심리적 회복탄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다수 보고되고 있다. 읽기는 결국 개인이 삶을 능동적으로 지탱하는 정신적 '근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학교 교육 현장에서는 교과목 학습만큼이나 체계적인 '깊이 읽기' 교육 프로그램의 도입이 절실하다. '독서력 배양 운동'을 다시 활성화하고, 학생들이 단순히 양적 독서가 아닌 '깊이 있는 독해'를 경험하도록 돕는 구조화된 지도가 필요하다. 특히 개념의 위계를 파악하고 서술자의 관점을 분리하며, 텍스트 내부의 논리를 구조화하는 훈련은 깊이 읽기의 핵심이자 AI 시대의 질문 능력을 형성하는 토대가 된다. 미래는 단순히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더 잘 읽고 더 잘 질문하는 사람에게 열린다. 독서는 미래를 향한 가장 확실하고 근본적인 투자이자, 변화의 속도를 스스로 통제하며 자기 삶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지적 기반이다.
김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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