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무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입 상임대표·대구 화동초등 교사
수업을 마치고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싱숭생숭하다. 멍하게 있는데 갑자기 올해 고3인 된 아이들이 생각나서 전화했다. 예닐곱 명에게 전화했다. 3학년 때 가르친 나를 기억해 줄까 싶어서 임성무다 하니 다들 반갑게 받아주었다. 3학년 아이들은 그때 대부분 휴대전화기가 없어서 번호가 몇 개 남아있지 않다. 수능은 잘 쳤어? 과는 어디로? 하고 물었지만 나나 아이들 모두 무슨 대학인지는 묻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대학이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모두 이제 성인이 되고 사회 초년생 청년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제 밤에 쉰 줄에 든 제자가 전화했다. 내가 첫 6학년 담임을 맡았던, 내 길을 따라서 가겠다고 일찌감치 교사가 되겠다고 하고 이젠 중견 교사로 사는 제자이다. 선생질하는 제자들은 특별히 각별하다. 스승의 날이 되면 나는 내가 먼저 교사인 제자들에게 전화해 본다. 좋은 선생으로 살자고 다짐 한다. 오늘은 내 정년 퇴임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아직 많이 남았고 나도 모르겠다. 정해지면 알려 주겠다 하고 끊었다. 이 친구들이 6학년 때인 88년에는 촌지가 유행이었고 나는 촌지를 받지 않는다. 나중에 너희들이 자리 잡으면 내가 너희들 덕에 노년을 잘 보내도록 하는 게 촌지라고 말해 주었다. 그땐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것처럼 한번 담임은 영원한 담임이라는 생각으로 해마다 아이들을 불러 모아서 잘 사는지 확인했다. 오랫동안 그러다가 이것도 인위적이다 싶어서 자연에 맡겨 두고 오는 전화만 받고 살았다. 얼마 전 이젠 나이가 든 아이들이 대구에 사니 별수가 없는지 여럿이 나를 비판한다는 소식도 들었다. 기껏 일 년을 가르쳤는데 내 가르침을 30~40년을 지속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퇴임을 앞두니 하루하루가 천년 같았다. 그런데 12월이 되니 내게 주어진 한 시간 수업이 천년 같다. 그래서 말 한마디라도 아이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면 좋겠다고 하는 마음으로 1분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다 이쁘다. 혼을 내고도 돌아서서 나 혼자 웃는다. 음악 수업을 마치고 감상한 곡을 틀어놓고 혼자 가만히 나는 정말 좋은 교사였나 돌아본다. "교사의 길이란 구절양장보다 어려운 밤길"이라고 했던 이광웅 시인의 시구절이 자주 생각이 난다. 돌아보니 참 굽이굽이 먼길을 지나왔다. 그 길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나는 좋은 교사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을 때였다. 초임 교사 때 서문시장 지하상가에서 훔쳐 온 전자계산기를 선물로 준 아이들이 있었다. 담배는 청자가 가장 맛있다고 알려 준 아이들이었다. 가난한 아이들이었다. 모두 내 반은 아니었지만, 이 친구들을 중2까지 방학 때마다 학교에 불러 모았다. 그중 몇은 결국 소년원에 갔다. 지금도 이름이 또렷하다. 스무 살 때 선생님 술은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해놓고 아직 술 한잔 사주지 않았지만, 가난한 집 아들이었던 이 친구는 어떻게 살지 가끔 생각이 난다.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교육은 내 평생 지키기 힘들지만 놓치지 않는 가치였다.
최근 며칠 조진웅 배우의 청소년 시절 보호처분을 받아 한 학기를 소년원 학교에 다녔던 이력이 보도로 시끄러웠다. 비판 여론은 그런 배우가 독립군이나 형사와 같은 정의로운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려 30년도 지난 일이다. 그 배우가 최근 갑자기 유명해진 것도 아닌데 왜 이제야 그런 보도하는지 의심스럽다. 나는 교사로서 참 답답하다. 어린 시절 소년교도소는 아니지만 소년원까지 갈 만한 잘못을 저지른 아이였지만, 성장해서 사회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며 산다는 것은 교사가 아이들에게 교훈으로 들려 줄 이야기이다. 만약 피해자가 아직도 용서하지 않고 있다면, 그게 아니라도 내가 조진웅 배우라면 은퇴하기보다는 앞으로 배우로서 얻는 수입의 일정액을 자신과 비슷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돕는 기금이나 단체를 만드는 것으로 갚아나가고, 다시 배우로 돌아오길 바란다. 그래야 교사들이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고 '봐라! 조진웅 같은 배우도 있지 않느냐'라고 가르칠 수 있다.
음악 시간에 베토벤의 소나타 월광을 감상하면서 베토벤의 일생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음악의 성인 베토벤과 같은 유명인들의 삶에도 도덕적으로 불완전한 대목이 있다. 신앙의 아버지 아브라함도 자기가 살려고 아내를 넘긴 적도 있다. 내 교직 40년을 돌아보면 부끄러운 일이 너무 많다. 혹시라도 제자 중 누군가 나타나 내가 한 잘못을 말하겠다고 할까 봐 두려울 때도 많다. 언제라도 나는 깊이 사과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내 눈에 들보가 너무 많지만 그래도 나는 꾸준하게 반성하면서 더 좋은 교사가 되려고 애써왔다. 이게 내 잘못에 대한 해명이 되지는 못할 것이지만 다른 수가 없지 않은가?
김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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