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구 평리동1동 일대 '열차촌' 옛 전경. 한국전쟁 난리통에 형성된 '열차촌'은 판자집들이 열차칸 처럼 붙어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대구 서구청 제공
대구 서구 평리동1동 일대 '열차촌' 골목사진. 한국전쟁 난리통에 형성된 '열차촌'은 판자집들이 열차칸 처럼 붙어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대구 서구청 제공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대구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의 집결지가 됐다. 북한군 공세에 밀려 대전을 임시 수도로 삼은 이승만 정부가 같은해 7월 대구를 다시 임시 수도로 정하면서 피난 행렬은 절정을 이뤘다. 대구시가 공개한 역사 자료인 '대구시사'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대구지역 피란민 규모는 3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피라민들은 대구역을 중심으로 터를 잡고 움막을 짓기 시작했다. 서구 평리1동 역시 그중 하나였다. 좁고 비탈진 곳에 집(무허가 주택)을 촘촘히 이어 붙이며 자연스레 마을이 형성됐다. 그렇게 형성된 마을은 수십년 간 '열차촌'으로 불렸다. 한동안 도시 한복판의 '그늘'로 남았다.
◆ 슬레이트 지붕 아래 삶을 버텨온 사람들
1950년대 대구 평리1동 일대는 철도변 공터였다. 인근에 맹아학교(청각·언어장애학교)가 자리하면서 주거지는 형성되지 않은 곳이다. 이 일대는 행정의 손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그래서 피란민들은 비교적 쉽게 삶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정부 차원의 주거 지원은 사실상 없었다. 피란민들은 '각자도생' 방식으로 버텼다. 흙벽돌을 굽고 슬레이트를 얹은 집을 직접 지었다. 골목이 비좁다 보니, 집과 집은 담 하나 없이 촘촘히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다수는 정식 주소나 건축 허가도 없는 무허가 판잣집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열차 칸을 연상케한다고해서 이후 '열차촌'으로 불렸다.
이 동네에 오래 거주한 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거주환경은 극도로 빈약했다. 상하수도 연결이 빈약해 몇몇 가구가 수도 한 개를 나눠 쓰거나 우물물에 의존했다. 열차촌 가구 전체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은 두 곳에 불과했다. 위생상태가 좋을리 없다. 여름이면 악취가 진동하고 벌레가 바글바글했다. 장마철이면 골목 곳곳은 작은 연못이 됐다. 집 안까지 물이 차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설사 집 앞 물길을 막아도 '악몽'은 지속됐다. 구멍 뚫린 슬레이트 지붕 탓이다. 빗물을 막기 위해 대야를 빗물받이로 사용해도 속수무책이었다.
열차촌 일대 허술한 전기선은 늘 누전과 화재 위험을 안고 있었다. 주민들은 '리어카'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은 골목길에서 긴급 상황이 생길까봐 늘 노심초사했다.
이후 열차촌은 도시계획의 변방으로 조금씩 밀려났다. 도시 정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80년대, 서구청 역시 열차촌 문제를 인지했다. 뾰족한 해법은 없었다. 마을 대부분이 무허가 건물이어서 공공 개발 대상에서 배제됐다. 민간 자본은 수익성 부족을 이유로 철저히 외면했다.
열차촌은 한마디로 도심 속에 고립된 '섬'이었다. 주변에 고층 아파트와 새 도로가 들어섰지만, 그 틈에 낀 열차촌은 '시간'이 멈췄다. 행정과 투자 측면에서 매력이 떨어져 '지도 위 공백지대'로 남아있게 된 것.
열차촌 사정을 잘 아는 70대 후반의 한 어르신은 "옛날 동네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열차촌 쪽으론 절대 가지 말라고 했다"며 "그곳을 지나갈 때면 그냥 숨이 막혔다. 왠지 모르게 동네가 무서웠다. 냄새도 지독했다. 오랫동안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대구 서구 평리1동 열차촌 일대가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통해 공공 주차장과 쉼터, 마을 안내시설이 갖춰진 '열차촌 기억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사진은 철거된 빈집 부지에 조성된 기억공간. 구경모기자
대구 서구 평리1동 열차촌 일대가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통해 공공 주차장과 쉼터, 마을 안내시설이 갖춰진 '열차촌 기억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사진은 철거된 빈집 부지에 조성된 기억공간. 구경모기자
대구 서구 평리1동 '열차촌' 도새재생사업 계획도. 대구 서구청 제공
◆ 도시재생, 삶의 터전을 '지우지 않고 바꾸다'
열차촌의 전환점은 2022년 찾아왔다. 국토교통부 도시재생 뉴딜사업 공모에 평리1동 일대가 선정되면서다. 이를 통해 마을에도 변화의 물꼬가 트였다. 대구 서구청은 열차촌의 역사성을 살리면서 주민의 삶도 이어갈 수 있는 공간 재편작업에 나섰다. 2026년까지 총 185억원을 투입한다. 단순한 환경 개선사업이 아니다. 주민들의 삶과 기억을 함께 담아내는 '생활 기반형 재생 모델'을 표방한다. 노후 슬레이트 주택 130여동은 철거됐다. 도시가스·전기·상하수도 등 기반 시설도 전면 정비됐다. 어두침침한 골목길 26곳엔 CCTV 38대와 스마트 가로등 4개소가 설치됐다. 바닥 평탄화 작업까지 시행한다. 주거 안전성이 한층 강화됐다.
생활 인프라도 많이 달라졌다. 공영주차장 2개소가 새로 조성돼, 그간 주차난에 몸서리치던 주민들의 불편이 일정부문 해소됐다. '창업소통공간 들꽃'과 주민 커뮤니티센터는 내년 상반기 완공을 앞두고 있다. 두 건물 모두 기존에 없던 마을 생활·문화 거점이다. 완공 후엔 청년 창업 지원과 고령층 복지 프로그램이 운영될 예정이다.
'열차촌'이란 역사적 의미도 되새겼다. 복합문화쉼터인 '기억공간'을 통해 사업에 대한 상징성을 더했다. 철거된 빈집 자리에 들어선 이 쉼터는 마을의 과거와 현재를 담는 전시 공간이자, 주민과 방문객 모두를 위한 소통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열차촌 도시재생 사업이 지역주민들을 단순한 수혜자가 아닌 재생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했다는 점도 주시할만 하다. 지난해부터 열차촌에 대한 사진 전시, 골목투어, 전통음식 체험 등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내년엔 마을 방송국, 마을밥상, 골목문화 아카이빙 등을 마련한다. '마을 공동체 형성'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구청 관계자는 "열차촌은 단순한 슬럼가가 아니라, 대구 현대사의 한 축을 이룬 생활사 공간"이라며 "그 흔적을 없애는 대신, 기억하고 나누는 방식으로 재생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고 했다.
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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