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나이의 미학(美學)

  • 백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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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2-29 04:05  |  발행일 2025-12-29

어느 해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을사년(乙巳年)이 저물어간다. '붉은 말의 해'라는 병오년(丙午年)이 코 앞으로 다가온 것은 한 해가 익어간다는 것이다.


"너 늙어 봤냐/나는 젊어 봤단다/이제부터 이 순간부터/나는 새 출발이다" '가는 세월'을 불러 유명해진 어느 가수가 2016년 발표한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 제목의 가사다. 노랫말은 젊은 시절의 기억은 있어도 늙은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것에서 구상했다고 한다.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여류 소설가 박경리는 '옛날의 그 집'이라는 시를 통해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든 세월이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며 노년의 즐거움을 표현했다. 15년간 살면서 '토지'의 산실이었던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집에서 옛 시절을 회고한 '옛날의 그 집'은 작고 한 달 전 무렵인 2008년에 쓴 글이다.


비슷한 세월을 살다 2011년 하늘에 별이 된 박완서 여류 소설가는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은 것을 안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늙음의 아름다움 말을 남겼다. 박경리 작가는 강원도 원주의 산골에서, 박완서 작가는 경기도 구리시의 시골집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노년을 보내면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물처럼 사는 것)로 삶을 마감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라는 노래말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늙는다는 것이다. 과일과 술은 익을수록 향이 진해진다면 인간에게는 세월이 빚는 노년의 미학이 있다.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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