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석 시인
황인찬 시인
시를 읽는 이도 쓰는 이도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요즘이다. 이러한 현상이 전 세대에서 고루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반갑게 느껴진다. 시가 많은 이들의 삶에 폭넓게 접촉하고 있다는 이 기꺼운 진단이 새로운 시의 움직임과 시적 담론이 정체된 것 아니냐는 항간의 우려쯤은 가볍게 날려버릴 것이라 기대해볼 수 있겠다.
2026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본심에서는 이러한 기대를 걸어 보기에 충분한, 성실한 시편들을 다수 만날 수 있었다. 오랜 수련을 통해 자신의 시적 세계를 펼쳐 보이려는 이들의 작품이 주로 눈에 띄었으나, 소통을 바라면서도 동시에 소통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양가적인 모습이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 가운데 주로 거론된 작품은 '백안 터널' 외 2편, '어떤 터미널로지를 위하여' 외 2편, '아직 나의 눈을 피하지 않는' 외 2편, '백지와 백기' 외 2편, '성사되지 않는 저녁' 외 4편이었으며, 이 가운데 '백지와 백기' 외 2편, '성사되지 않는 저녁' 외 4편이 마지막까지 거론되었다.
'성사되지 않는 저녁' 외 4편은 개성적인 시적 태도가 미덕으로 여겨졌으며, 시적 무대를 구성하고 그 무대를 통해 고유의 세계관을 읽어낼 수 있도록 하는 구성이 장점이었다. 그러나 밀도가 낮고 가벼운 문장들이 오히려 시를 둔탁하게 만든다는 우려가 있었다.
논의 끝에 '백지와 백기'를 당선작으로 추천하기로 결정하였다. 자신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면서도 타자와의 소통을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 시적 성실성이 무엇보다 큰 장점이었다. 우리 삶에 매일 던져지는 저 드넓은 백지로부터 도망치지 않겠다는 시인으로서의 결심, 그러나 그것과 겨루고 싸우는 대신 차라리 백기를 들어 올리며 무상한 삶과 자유롭게 놀겠다는 시인으로서의 배포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시인이란 결국 세상에 지는 자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 패배가 결코 패배로 그치지 않도록 하는 자이기도 하다. 당선자가 앞으로도 백지와 더불어 계속 싸워나갈 수 있기를, 매번 멋지게 패배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아쉽게 당선되지 못한 이들에게 무한한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앞으로 다가올 더 넓은 시의 내일에는 분명 여러분의 정진이 필요할 것이다.
■본심 심사위원=이하석(시인), 황인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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