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혁신의 어머니, 실패에서 배운다] 1억원의 채무가 남긴 교훈…1인 미용실로 다시 일어서다

  • 최미애
  • |
  • 입력 2026-01-04 15:55  |  발행일 2026-01-04
매장 2곳 닫은 후 아픈 몸과 빚만 남아
주먹구구식 운영이 경영 위기 초래
실패 거름 삼아 1인 미용실 운영 시작

누구나 자신의 생(生)이라는 앨범에 '실패'라는 빛바랜 사진을 남기고 싶진 않을 것이다. 한 번의 좌절이 공들여 쌓아온 삶의 궤적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나면, 대부분은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넘길 용기를 잃는다. 하지만 시련을 자양분 삼아 이전보다 훨씬 깊고 단단해진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실패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픔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더 크게 비상하는 새로운 동력이 됐다.


영남일보는 좌절 끝에서도 다시 일어선 지역민들의 담담한 기록을 담아보고자 했다. 앨범의 한 페이지가 눈물로 얼룩졌을지라도, 그 다음 페이지에 '희망'과 '발전'이라는 새 사진을 채워 넣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한다. 이들의 이야기가 오늘을 견디는 모든 이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작지만 강한 확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수현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미용 도구를 정리하고 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김수현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미용 도구를 정리하고 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대구 달서구의 한 조용한 골목. 이곳에서 1대1 예약제 미용실을 운영하는 김수현(가명·48)씨는 한때 잘나가던 미용실 매장 두 곳을 운영했다. 당시 김씨는 적지 않은 매출을 올리며 쉼 없이 일에 몰두했다. 하지만 무리하게 달린 끝에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건 망가진 몸과 마음, 그리고 1억원의 빚이었다.


◆ 쉼 없이 달린 끝에 남은 건 빚


김씨는 고교 졸업 후 언니의 권유로 미용업에 발을 들였다. 미용일의 매력에 빠진 그는 20대 후반에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를 차렸다. 30대 초반쯤에는 미용실 두 곳을 동시에 운영할 만큼 성장했다. 당시 매출이 나쁘지 않아 직원을 여럿 뒀고, 모든 고정비를 제한 후에도 사장인 그에게 남는 돈은 매달 1천500만원 정도였다. 하지만 버는 만큼 지출도 컸다. 매출이 좋고, 신용도가 높다 보니 여기저기서 대출을 받았는데, 이는 결국 화근으로 돌아왔다.


연중무휴로 일을 하다 보니 결국 몸에 탈이 났다. 허리디스크 파열로 다리에 마비가 온 것이다. 파스를 붙여가며 미련하게 버티다 결국 119 구급차에 실려 가기에 이르렀다. 의사는 "다시 현장에 복귀하기 힘들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김씨는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었고, 그동안 매장 두 곳 모두 급격히 흔들렸다. 매출이 떨어지면서 결국 한 매장은 4년, 또 다른 매장은 2년을 못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매장 2곳을 정리하면서 보증금으로 직원들 급여·퇴직금을 정산하고 나니 김씨에게 남은 것 빚이었다. 1억원의 채무를 안고 모든 것을 정리했을 때, 극심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그를 덮쳤다. 때로는 안 좋은 생각을 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김수현씨가 고객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김수현씨가 고객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 눈물로 닦아낸 낡은 과거


"근처에 미용실이 몇 개가 있는지 시장조사도 좀 했어야 했는데, 데이터나 시스템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했어요. 잘되니까 무리하게 대출을 받았었죠. 365일 쉬는 날 없이 일하느라 정작 아이들 돌보는 일과 가정은 뒷전이었습니다."


2018년 개인회생을 신청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건 가족이 보내준 짧은 영상이었다. 영상에는 생의 절반을 산 솔개가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 자신의 남은 생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결단을 내리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솔개가 뭉툭해진 부리를 돌에 쪼아낸 후 새로운 부리가 나면 무뎌진 발톱과 낡은 깃털을 다 뽑아낸 후 130일간 고군분투한 끝에 비상해 다시 새로운 삶을 산다는 내용이었다. 이 영상을 본 김씨 또한 자신의 낡은 과거를 도려내고 다시 일어서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영상을 보며 펑펑 울었습니다. 새들도 저렇게 자기 삶을 선택하는데 나라고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김씨는 다시 일어서기로 결심했다. 그에게 아픔을 준 미용업이었지만, 미용에 대한 애정은 변하지 않기에 다시 가위를 잡았다. 그는 20대 후반 일본에서 한 달 동안 공부했을 당시 봤던 골목 안의 작은 1인숍들을 떠올렸다. 10년 전, 현재의 자리에 김씨는 다시 미용실을 열고 당시만 해도 드물던 '1대1 예약제'를 도입했다.


손님 1명에게 오롯이 2~3시간을 투자하는 이 전략은 뜻밖의 순간에 빛을 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대다수 미용실이 타격을 입었을 때, 철저한 1인 예약 시스템인 그의 미용실은 오히려 안정적인 성장을 보인 것이다.


대구신용보증재단의 '재기 지원 교육'은 그를 단순한 기술자에서 경영자로 바꿔놓았다. 수많은 현장 경험이 있었지만, 이 교육을 들으며 김씨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예전엔 '잘되니까 또 잘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해 무턱대고 대출을 받았어요. 하지만 교육을 받은 후엔 자금을 세분화하고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세우게 됐습니다. 재도전 보증 지원으로 받은 대출금 1천만 원은 계획 없이 여기저기 쓰는 게 아니라, 제일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점검해 적절하게 나눠서 사용했습니다."


그는 이제 '감(感)'이 아닌 기록과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일한다. 이전에 미용실 2곳을 운영할 때는 고객 이름과 직업 정도만 파악하고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없었다. 이제는 고객의 시술 내역과 대화 내용을 꼼꼼히 메모해 관리한다. 그 결과, 단골이 부쩍 늘어 손님 중 80%가 재방문한다. 미용 재료를 고를 때도 과거에는 판매원의 말만 듣고 가격만 비교해서 선택했다면, 이제는 단골 고객에게 한번 써보라하고 피드백을 받아 신중히 선택한다.


김수현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미용실에 비치한 염색약.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김수현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미용실에 비치한 염색약.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 새로운 비상을 준비하다


다시 일어선 김씨는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는 미용 관련 지식을 좀 더 쌓기 위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고, 내년에도 미용 공부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론적 지식이 채워지니 시술의 품질도 높아지고 고객의 만족도도 높아졌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제 그는 새로운 사업계획서를 품고 있다. 단순한 미용을 넘어 헤드 스파, 체형 관리 등을 돌보는 '토탈 뷰티 케어'를 위한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 목표다. 과거처럼 주먹구구식 확장이 아닌, 철저한 분석과 준비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김씨는 2018년 개인회생 신청했을 때를 오히려 본인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말한다. "제 인생은 브레이크 없이 막 달리다 어딘가에 부딪혀야만 멈출 수 있었던 차 같았어요. 실패가 마음 아프긴 했지만, 얻은 게 더 많습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영업자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했다.


"실패했다고 모든 게 끝난 게 아닙니다. 당신이 부족해서 이런 일이 생긴 게 아니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단지 방법을 조금 몰랐을 뿐이니, 무너졌다 생각하지 말고 지금부터 인생을 다시 설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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