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렉스(HyREX) 공정의 특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모형 조감도. 포스코 제공
포항제철소 부지 조감도. 포스코 제공
전기용융로 ESF 시험설비 모습. 포스코 제공
지난해 중순부터 포스코는 물론이고 포항시민들의 눈과 귀는 정부의 인허가 발표에 쏠려 있었다. 포스코그룹이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을 위한 부지 조성 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역 어민 단체와의 보상 및 상생 협약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진통을 겪으며 사업은 수개월간 연착됐다. 이제 사업의 공은 국토교통부로 넘어갔다. 포항의 미래 100년을 좌우할 수소환원제철소 부지 조성 사업의 현주소와 지역 경제에 미칠 파급 구조를 심층 취재했다.
◆ 5개월간의 멈춤, 그 뒤에 숨겨진 긴박했던 '상생'의 막전막후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 포항제철소가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파고를 넘기 위해 추진 중인 '수소환원제철소' 건립 사업이 마지막 질주를 준비하고 있다. 당초 이 사업은 지난해 상반기 중 모든 인허가를 마치고 하반기 착공을 목표로 했으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제동이 걸렸다. 바로 공유수면 매립을 둘러싼 지역 어민 단체와의 갈등이었다.
10일 영남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인허가 과정의 핵심이었던 해양수산부의 승인 조건에는 '관할 지방해양수산청을 통한 어민회와의 상생 협약 체결'이라는 부관 사항이 달려 있었다. 이 과정에서 어민 측은 과거 포스코 제4투기장 조성이나 해수 준설 당시의 보상 사례를 근거로 수백억 원 규모의 보상을 요구하며 협상은 평행선을 달렸다. 기업 입장에서는 구체적인 피해 산출 용역 결과도 없이 거액의 보상금을 지급할 법적 근거가 부족해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약 5개월이라는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하지만 포항시의 적극적인 중재와 포스코의 끈질긴 설득 작업이 빛을 발했다. 포스코는 법률 검토를 마친 뒤 어민들을 설득해 지난해 11월쯤 극적으로 상생 협약을 체결했다. 이 5개월의 지연은 단순한 시간 낭비가 아니라, 대규모 국책 사업 수준의 프로젝트가 지역 사회와 어떻게 합의점을 찾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준 고통스러운 산고의 시간이었다. 이제 어민 협상이라는 가장 큰 산을 넘은 사업은 국토교통부의 최종 승인만을 남겨두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마지막 검토… 6월 이전 고시가 포항의 100년 운명 결정
현재 수소환원제철 부지 조성 사업은 국토교통부의 '중앙산업단지 계획 심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포스코는 이미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17개 유관 부처의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를 모두 통과한 상태다. 마지막 남은 국토부 심의는 지난 1월부터 실무 검토가 본격화되었으며, 현재는 관계 부처 간의 최종 의견 조율과 고시 공고를 위한 행정 절차가 진행 중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포스코 측은 올해 1분기 내 승인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지만, 행정적 절차를 고려할 때 보수적으로 잡아도 2분기인 6월 안에는 반드시 최종 고시가 완료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전체적인 수소환원제철 로드맵의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함이다. 3분기 초에는 실제 매립 공사가 착공되어야만 2028년 시험 설비 가동과 2030년까지 하이렉스 기술을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2050년까지 포항·광양제철소의 기존 고로 설비를 단계적으로 수소환원제철로 전환, 탄소중립을 달성하게 된다. 6월 이전의 승인 고시는 포항이 세계 최초의 수소환원제철 도시로 나아가는 '역사적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1조 원 규모 부지 조성, 지역 경제에 쏟아질 '직접적인 낙수효과'
수소환원제철소 설비가 들어설 터를 잡는 '용지 조성 사업'에만 약 1조 원의 재원이 투입되며, 2041년 매립 완료가 목표다. 포항제철소 인접 해상 약 135만㎡(약 41만 평)를 매립하는 이 공사는 단일 토목 공사로는 포항 역사상 최대 규모 중 하나다. 1조 원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무게감은 지역 경제계에 엄청난 활력을 불어넣을 전망이다.
우선 매립을 위해 투입되는 막대한 양의 사석과 흙을 실어 나를 덤프트럭, 그리고 바다에서 공사를 진행할 준설선과 예인선 등 중장비 수요가 폭발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포항의 운송 업계와 건설 장비 임대 업체들에게 전례 없는 특수를 의미한다. 또한, 대규모 토목 공사를 수행할 지역 건설사들의 컨소시엄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건설업계 전반의 자금 흐름이 개선될 전망이다. 현장 인력 채용에 따른 직접적인 고용 효과와 인근 상권의 소비 활성화 등 일차적인 낙수효과만으로도 포항 경제에는 커다란 단비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임계점' 다다른 철강 산업, 50조 투자가 유일한 탈출구
지금 포항의 경제 지표는 심각한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전기료 급등과 글로벌 수요 감소, 그리고 저가 중국산 철강재의 공습으로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지역 주요 철강사들은 생존의 임계점에 도달해 있다. 포스코 역시 최근 실적 발표를 통해 매출은 줄었으나 가격 인상으로 간신히 흑자를 유지하는 '불황형 흑자' 구조임을 드러냈다. 특히 전기로 중심의 기업들은 전기료 부담으로 인해 가동률을 낮추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위기 국면에서 수소환원제철은 단순한 신사업이 아니라 '산업 구조의 근본적 고도화'를 의미한다. 부지 조성이 완료된 후 순차적으로 이어질 설비 투자 규모는 무려 40조 원에서 50조 원에 달한다. 기존 고로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그 자리에 첨단 하이렉스(HyREX) 설비와 대형 전기로를 채워 넣는 과정은 향후 20년 이상 포항 경제를 지탱할 강력한 엔진이 될 것이다. 기계설비, 전기제어, 정밀 플랜트 엔지니어링 등 연관 중소 협력업체들에게는 수십 년 만에 찾아온 최대의 기회이자 재도약의 발판이다.
◆민·관·사 원팀(One Team)이 답이다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 도전은 한국 철강 산업의 경쟁력을 지키는 것을 넘어, 포항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친환경 에너지 산업 메카'로 재정립하는 일이다. 이미 30만 톤 규모의 데모 플랜트(실증 설비)는 지난해 말 착공돼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국토부 승인을 통해 대규모 상업화 설비가 들어설 터전을 확정 짓는 일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이미 사업이 계획보다 2년 정도 지연된 상태"라며, 오는 6월 지방선거 등 정치적 일정이 본격화돼 행정적 추진력이 약화되기 전에 착공 절차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스코의 위기는 곧 포항의 위기이며, 수소환원제철의 성공은 포항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 상권을 되살리는 가장 확실한 해법이다.
정부의 규제 혁파와 지자체의 행정 지원, 기업의 담대한 투자, 그리고 시민들의 지지가 하나로 묶일 때 비로소 '영일만의 기적'은 '수소 경제의 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소로 만든 깨끗한 쇳물이 쏟아지는 그날, 포항은 탄소 중립 시대의 세계적인 선도 모델로 우뚝 설 것이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6월 이전, 산업단지계획의 승인 고시를 향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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