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에 위치한 세종대왕자태실로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석현철 기자
최근 극장가에 잔잔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여운이 관객들의 발걸음을 경북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로 이끌고 있다. 영화가 비운의 소년 왕 단종의 애달픈 생애를 재조명하면서, 이곳에 안장된 단종의 태와 조선 왕실의 독특한 태실 문화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4일 오후 경북 성주군 월하연 인촌리 세종대왕자 태실 인근. 솔향기를 머금은 바람 사이로 늦겨울의 옅은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고즈넉한 돌계단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능선 위로 조선 왕실 특유의 생명 존중 사상이 깃든 유적이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낸다. 둥근 석물과 빛바랜 비석들이 침묵 속에 자리한 곳, 조선 왕실 탄생 의례의 정수라 불리는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이다. 평일 낮임에도 태실 주변은 제법 활기를 띠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에 귀 기울이며 정교한 석물들을 찬찬히 뜯어보는 방문객들의 눈빛에는 짙은 호기심이 서려 있었다.
4일 박재범 성주군 문화관광해설사가 세종대왕자 태실 중 단종의 태가 묻혀있던 곳에서 태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석현철 기자
태실(胎室)은 왕실에 새 생명이 태어나면 그 탯줄을 천하의 명당(길지)에 묻어 왕실의 안녕과 국가의 번영을 기원하던 성스러운 공간이다. 조선 왕실은 태를 단순한 부산물이 아닌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 국가적인 의례를 거쳐 정성스레 봉안하고 비석을 세워 관리했다.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태봉 정상에 조성된 '세종대왕자 태실'은 이러한 태실 문화가 집단으로 온전히 보존된 매우 드문 사례다. 세종의 여러 왕자와 함께 원손이었던 단종의 태가 묻혀 있어 그 역사적 가치가 더욱 남다르다. 소나무 숲에 아늑하게 안긴 태실은 화려함보다는 정갈하고 차분한 기운을 품고 있어, 조선이 생명의 탄생을 얼마나 경건하게 대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태실 주변을 거닐던 최판석(52·울산) 씨 부부 역시 영화가 준 감동을 안고 이곳을 찾았다.
4일 박재범 성주군 문화관광해설사 회장이 세종대왕자 태실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태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석현철 기자>
최 씨는 "영화를 보고 나니 단종이라는 인물에 대해 깊은 연민과 궁금증이 생겼다"며 "조선 왕실이 탯줄 하나에도 이토록 정성을 쏟았다는 사실이 경이로워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최씨의 부인 또한 "단순히 잘 만들어진 사극 한 편을 본 것을 넘어, 실제 역사의 숨결과 이어지는 느낌이라 무척 뜻깊은 여행이 되었다"며 미소 지었다. 이날 마주친 다른 방문객들 역시 상당수가 영화나 역사 콘텐츠를 통해 이곳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현장을 안내하던 문화해설사는 태실의 의미를 짚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4일 성주 별고을 시네마에서 관람객들이 왕과 사는 남자에 대한 포스터를 살펴보고 있다. 석현철 기자
박재범 성주군 문화관광해설사는 "태실은 그저 오래된 유적이 아니라, 조선 시대 사람들이 생명을 어떻게 바라보고 존중했는지를 보여주는 숭고한 철학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조용한 숲길을 되짚어 내려오는 길, 방문객들의 발걸음에는 묵직한 여운이 실려 있었다. 극장에서 피어난 호기심은 스크린의 불이 꺼진 뒤에도 꺼지지 않고,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찾아오는 것으로 이어졌다. 수백 년의 세월을 품은 성주 태실은 오늘도 변함없는 자리에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말없이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석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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