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전, 칼 마르크스는 자본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끊임없이 순환하며 잉여가치를 덧붙여 몸집을 불리는 운동이다.' 100년도 더 된 '자본론'을 굳이 꺼내온 건 삶의 안식처인 아파트가 '자본의 속성'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지는 않는가 해서죠. 수많은 작은 자본이 소수의 거대 자본으로 쏠리는 자본의 집중화는 양극화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자본을 등에 업은 아파트는 스스로 몸집을 불리며 우리 사회를 재단해 계층을 나누는 도구가 되었지요.
사회학자 노진철 경북대 명예교수의 진단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사는(Live) 곳'과 '사는(Buy) 것'으로 집이 갖는 의미를 두고 얼마 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금 같은 초양극화, 집이 자산 증식 수단으로 가치가 변한 작금의 현실에 노 교수는 '자본의 속성'에서 배경을 찾았습니다. 자본은 가치가 오를 상품을 선점하고, 자본이 몰린 상품은 더 큰 자본을 끌어당겨 덩치를 키운다는 설명이죠. 오늘날 집이 그렇습니다. 거대한 자본의 블랙홀이 돼 사람과 돈을 서울로 끌어당기고, 서울의 집은 노동 가치를 비웃듯 저만치 앞서 갑니다. 절망적인 것은 이런 '집'은 다음 세대의 출발선을 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어쩌면 자녀에게 물려주는 '다른 색'의 계급장일지도 모릅니다.
<그래픽= 염정빈 기자>
◆개천에 용나는 시대의 종말
'개천에서 용 난다.' 자식 세대 지위가 부모보다 나아지는 극적인 계층 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 표현입니다. 이 말이 통할 때도 분명 있었습니다. 그럼 지금은 어떻냐고요. 적잖은 사람들은(어쩌면 대부분일지도) '개천에서는 용나는 시대는 끝났다'는 데 동의할 겁니다. 그저 체감적으로 하는 말은 아닙니다. 지표로 증명이 됐으니, 모르긴 해도 우리가 겪는 현실은 차가운 지표보다 더 하겠죠.
한국은행이 얼마 전 발표한 보고서를 보겠습니다. 부모 세대 자산(집)이 자녀 세대 계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수도권으로 이주 여부에 따라 지방에서 태어난 1970·80년대생의 자산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추적한 연구입니다. 결과는 '개천에서는 용 나지 않는다'는 말을 보란 듯이 증명합니다.
부모 자산이 자녀의 계층에 영향을 미치는지 대물림 정도를 나타낸 RSS(rank-rank slope)는 70년대생 0.28, 80년대생은 0.42입니다. 부모 자산 순위가 100명 중 10계단 오르면 70년대생 자녀는 2.8계단, 80년대생은 4.2계단 오른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최근세대에서 대물림 정도가 강해졌죠. 부모 자산이 자녀 위치를 정하는 힘이 세진 겁니다. 연구진은 드러난 지표보다 현실의 대물림 정도는 더욱 심하다고 봤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 대물림이 사는 지역, 수도권과 지방에 따라 또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자산 대물림처럼 가난 대물림도 마찬가지인데, 역시나 그 정도는 최근세대에 심해졌습니다. 비수도권 출생 자녀 중 수도권으로 비이주 그룹에서 부모 소득 하위 50% 자녀가 여전히 소득 하위 50%에 머문 비율은 71~85년생은 50% 후반, 86~90년생은 80%를 넘겼습니다. 반대로 같은 그룹에서 소득 상위 25%로 '계층 사다리'를 타고 이동한 비율은 85년생까지는 13%, 90년생은 4%입니다. 개천을 벗어나게 하는 사다리가 치워진 셈이죠.
부유한 지역에서 태어난 자녀는 우수한 교육 인프라에 힘입어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높은 소득과 자산을 유지하지만, 반대로 저소득 지역에서 태어난 자녀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부모처럼 낮은 소득과 자산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높고 두터운 벽을 만든 건 무엇일까요. 가만 있어도 생물처럼 살아 움직이는 집이 한몫 합니다. 작년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실질)은 2005년과 비교해 19.6%, 수도권은 15.4%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비수도권은 -3.0%로 오히려 하락했습니다. 지역 간 깊어진 고리는 다음세대로 가는 경제적 대물림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지방에서 열심히 살아서는 '계층 사다리'를 탈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한 지금, 우리도 서울로 가야하는 걸까요.
◆출발선이 다른 아이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자산 대물림은 연구 결과보다 실제에서 정도가 더 심하다는 연구진의 분석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경제적 자립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20세 미만 연령대에서도 수억원의 주택 매수는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국민의힘 김종양 국회의원실을 통해 최근 5년간의 주택매수 자금출처를 분석했더니 올 들어 2월까지 20세 미만 연령에서 주택 매입 규모가 21건, 73억7천700만원에 이릅니다. 이들의 자금 출처를 추적해 보니 자기자금(58.7%) 중 증여·상속 24.4%, 예금 16.6%, 주식과 현금 등 그 밖의 자금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나머지 41.3%는 임대보증금 40.4%와 그 밖의 차임금으로 보고가 되었지요. 증여·상속은 물론 예금이나 임대보증금마저 부모 도움이 있어 가능한 게 합리적 추론입니다.
증여·상속은 경제적 독립이 이뤄진 30대까지도 주택매수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올해 1~2월 두달 간 30대 이하가 증여·상속으로 조달한 주택매수 자금은 8천127억6천만원에 이릅니다. 스스로 몸집을 키우는 '집'을 갖기 위해 청년세대들이 부모 도움을 얼마나 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대구 수성구와 서울 성동구에 아파트 한 채씩을 보유한 60대 사업가 A씨도 정부가 보유세 비율을 높이면 서울 아파트를 30대 딸에게 일찍 증여할 계획이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A씨 계획처럼 아파트 증여 거래는 꾸준합니다. 대구에서만 연간 2천건을 넘나듭니다. 영남일보가 한국부동산원을 통해 최근 10년치 대구지역 아파트 증여거래 현황을 찾아봤더니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며 매매 거래가 많았던 2020년과 2021년에 5천599건·5천718건에 이르렀고, 경기가 위축됐던 2024년과 2025년은 1천654건·1천447건을 나타냈습니다. 올해는 2월까지만 239건 증여 거래가 이뤄졌습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다음 지점입니다. 증여 거래가 일어난 지역에 관한 분석인데,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요. 수성구입니다. 서울에서는 강남이 그렇고요. 올해 대구 증여 거래 중 수성구에서 87건 36.4%가 집중됐습니다. 증여 거래 3건 중 1건은 수성구라는 의미입니다. 최근 10년간 추이를 살펴봐도 마찬가입니다. 자산이 집중된 곳일수록 부의 대물림 또한 활발하단 얘기인데, 대구경북부동산분석학회 이병홍 회장이 그 이유를 명료하게 설명합니다. 증여 받아 매입한 대상이 자녀세대에서 도움이 되느냐 마냐의 측면에서 이해하자는 겁니다. 증여로 인한 득이 '똘똘한 한 채'이어야 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경제력을 등에 업고 일찍이 집을 가진 청년과 그렇지 못한 청년의 출발선은 다를 수밖에 없지요. 부모가 가진 자신 크기만큼 다음세대의 자산 크기가 결정되는 지금.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나고 자란 고향에서 학업을 마치고 뿌리를 내리는 길과 기회를 찾아 서울로 가는 길 끝에 펼쳐질 다른 색의 미래를요. 서울로 향한 그 길은 우리 자신보다 다음세대 출발선을 결정짓습니다. 대물림 기울기만큼 기울어진 운동장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요. 미래세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균형 성장. 정치가 잔인한 레이스를 멈출 답을 해야 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사는 것(Buy)'이 된 집을 갖기 위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무거운 빚의 굴레를 짊어지고 있는지, '영끌'의 이면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윤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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