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만나는 우리동네 문화유산] 민둥산의 기적 일군 360만 명의 땀방울...포항 ‘사방기념공원’

  • 전준혁
  • |
  • 입력 2026-05-02 12:18  |  발행일 2026-05-02
1970년대 맨몸으로 일군 4천538ha 산림녹화 기적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가치 입증
‘갯마을 차차차’ 품은 동해 뷰맛집, 관광 명소 넘어 글로벌 산림 교육장으로 진화
산책로에서 바라본 사방기념공원 전경. <전준혁기자>

산책로에서 바라본 사방기념공원 전경. <전준혁기자>

4월의 끝자락, 영산홍과 철쭉 등 붉고 흰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책로를 따라 오르자, 윙윙거리는 꿀벌들의 활발한 날갯짓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며 완연한 봄의 정취를 전한다. 탁 트인 푸른 동해 바다를 등지고 나지막한 산비탈을 바라보면, 일정한 간격으로 잘 정돈된 '떼 흙막이' 공법의 흔적들과 가지런한 수로들의 모습이 이곳이 예사로운 숲이 아님을 말해준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 오도리에 위치한 '사방기념공원'은 반세기 전, 인간의 끈질긴 의지가 자연의 황폐함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증명하는 거대한 기록물이자 세계 유일의 사방 테마 공원이다.


사방사업 당시 모습을 재현한 기념물. <전준혁기자>

사방사업 당시 모습을 재현한 기념물. <전준혁기자>

◆ 사막 같았던 민둥산, '피와 땀'으로 빚은 숲


오늘날의 푸른 풍경만 봐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불과 50여 년 전 영일군(현 포항시) 일대는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거대한 사막과 같았다. 지질학적으로 일명 '떡돌'이라 불리는 이암층이 지표면에 노출돼 있어 비가 오면 토사가 쉽게 쓸려 내려가고 보수력이 약해 식생 활착이 극히 어려운 척박한 땅이었다. 특히 한일 국제 항공노선의 관문에 위치해 있어,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외국인들에게 한국이 '산림 황폐국'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아픈 손가락이기도 했다.


이 절망적인 땅에 기적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1970년대 초반부터다. 1973년부터 1977년까지 5년 동안 연인원 360만 명이 투입되고 총사업비 약 38억 원이 들어간 사방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대공사가 펼쳐졌다. 이를 통해 4천538㏊에 달하는 거대한 황폐지에 나무를 심고 토사를 막는 특수사방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당시의 공사는 지금처럼 편리한 중장비를 동원한 것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만난 이한아(51) 숲해설가(산림교육전문가)는 "학생들은 원래 산에 나무가 울창하게 있는 줄 알지만, 이곳은 우리 선조들이 곡괭이, 삽, 지게만으로 돌을 나르고 흙을 돋우며 맨몸으로 일궈낸 피와 땀의 현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선조들의 피와 땀의 역사를 보존하고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사방기념관 내 전시실 모습. <전준혁기자>

사방기념관 내 전시실 모습. <전준혁기자>

◆ 세계 유일의 사방공원,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의 유산'


선조들이 맨손으로 일궈낸 녹화의 역사는 마침내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2025년 4월, 대한민국 산림녹화기록물이 그 역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아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공식 등재된 것이다. 이 기록물은 6·25 전쟁 이후 황폐해진 국토를 복구하기 위해 추진된 산림녹화사업의 전 과정을 담은 공문서, 사진, 필름 등 총 9천619건으로 구성돼 있다.


사방기념공원은 18만7천500㎡의 부지에 133억 원을 투입해 2007년에 개원했으며, 전시관 내부에는 당시의 땀방울이 밴 사방사업 도구와 설계 야장, 유네스코 등재 기록물 등이 소중하게 보관돼 있다. 앞서 2021년 12월에는 공원 내 위치한 '포항 영일사방 준공비'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 해설가는 "대한민국 사방 기록물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개발도상국들이 산림 복구에 실패할 때, 우리나라는 민과 관이 완벽하게 협력하여 단기간에 성공을 거둔 유일한 사례이기 때문"이라며 벅찬 자부심을 드러냈다.


사방기념공원 정상에 위치한 조형물.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전준혁기자>

사방기념공원 정상에 위치한 조형물.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전준혁기자>

◆ 드라마 속 낭만과 역사가 공존하는 동해의 '뷰맛집'


과거 피땀 어린 노동의 현장이었던 사방기념공원은 오늘날 뛰어난 산림해양 경관을 자랑하는 포항의 대표적인 힐링 관광 명소로 탈바꿈했다. 특히 공원 정상부인 묵은봉은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주요 촬영지로 알려지며, 극 중 등장했던 산꼭대기 어선 조형물과 낭만적인 풍광을 보기 위한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공원 곳곳에는 중년 부부부터 다정한 연인까지 다양한 방문객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특히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대만과 캐나다 등지에서 대형 버스를 타고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공원을 걷고 있던 한 포항 시민은 "동해의 멋진 풍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숨은 뷰맛집"이라며, "산책하기에도 좋아 시간 날 때마다 자주 찾는다"고 만족감을 보였다. 아울러 야외 전시장에는 1970년대 사방사업 당시의 치열했던 현장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한 디오라마와 인물상 41점이 설치돼 있어, 숲을 걷는 동안 자연스럽게 역사를 되새길 수 있다.


사방기념관에서 만난  이한아 숲해설가. <전준혁기자>

사방기념관에서 만난 이한아 숲해설가. <전준혁기자>

◆ 지속 가능한 녹색 도시, 포항을 향해


사방기념공원은 단순한 과거의 기념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 세대를 위한 산림 교육의 전초기지로 진화하고 있다. 사방기념공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숲해설 프로그램은 유아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으며, 숲해설가와 함께 야외 전시시설을 거닐며 숲의 가치와 산림녹화 과정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연간 약 1만1천여 명이 이 교육에 참여해 올바른 환경 가치관을 정립하고 있다.


또한 해마다 세계 각국의 약 100여 명에 달하는 외국인 산림 공무원과 식생복원 전문가들이 이곳을 방문해 우리 사방 기술의 우수성을 배우고 있다. 손초희 포항시 녹지과장은 "사방기념공원은 대한민국 산림녹화의 성과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라며 "앞으로도 방문객들이 체험하고 배우는 산림교육의 장으로 발전시키고, 지속가능한 녹색도시 포항을 만들어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바다 풍경에 이끌려 찾아온 이방인도, 주말의 여유를 즐기러 온 시민들도, 모두 360만 명의 땀방울이 스며든 단단한 대지 위를 걷고 있다. 무심코 밟고 지나는 흙 한 줌과 가지런한 떼 흙막이의 흔적들 속에서 선조들의 숭고한 헌신을 기억할 때, 사방기념공원은 비로소 시민들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유산'으로 영원히 꽃피울 것이다.



기자 이미지

전준혁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생활/문화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