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초, 메타버스라는 말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새로운 기술에 전 세계는 열광했다.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자 너도나도 메타버스라는 가상공간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방역지침에 벗어나 자유를 만끽했다. 적게는 수백만 원, 많게는 수억 원을 들인 신기술 정책은 챗GPT로 대변되는 인공지능(AI)으로 이어졌다.
2026년, 메타버스는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말 그대로 디지털 세계의 폐허가 됐다. 2023년 즈음부터 메타버스의 뒤를 이어 등장한 AI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자체 홈페이지마다 경쟁적으로 AI 기능을 도입했지만 성능은 좋지 않다. 충분한 검토 없이 반짝 유행을 따라잡으려는 신기술 정책이 멋내기용 '패션정책'으로, 공급자 위주의 보여주기 행정으로 혈세만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 북구청이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개설한 '북구 메타버스 주니어보드' 가상공간. 움직임이 원활하지 않고 개설 이후 방치됐다. 제페토 캡처
◆'메타버스'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대구 북구청은 2021년 10월과 2023년 2월 각각 메타버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페토'에 활동하는 주니어보드를 개설했다. 기자가 올 5월1일 직접 제페토로 접속해보니, 이 공간에서 움직임조차 쉽지 않았다. 애초에 '바닥에 몸이 잠긴' 상태로 시작하며, 출발 지점에서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면 구현되지 않은 공간으로의 내리막길이 생기고, 결국 출발 지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2021년 북구청이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회의를 하는 모습의 캡처 자료가 남아있다. 이 주니어보드 정책은 대구시의 혁신 경진대회, 정부혁신 평가에서 수상할 만큼 주목받았지만, 지금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지 점검도 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다.
대구 중구 약령시에 있는 한방의료체험타운은 가상공간에도 존재한다. 제페토의 한방의료체험타운은 2021년 11월1일 최초로 등록(생성)됐다. 그리고 약 네 달 후인 2022년 3월10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현재까지 총 방문자는 1천700여 명으로 표시돼 있다. 한방의료체험타운은 2022년 3월과 5월 각각 한 차례씩 제페토 방문 인증샷 이벤트를 했지만,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다.
약령시 근처에서 직장을 다닌다는 이성호씨는 "한방의료체험타운이 메타버스에도 있는 줄은 몰랐다"며 "있어도 일부러 찾아서 접속해보고 싶거나 그렇진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메타버스로 한방의료를 체험해서 건강에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제페토에 구축된 한방의료체험타운과 강북보건지소. 각각 최근 방문자는 2명과 0명으로 표시됐다. '가상공간'으로 조성돼 대면과 체험서비스와의 이질감이 느껴진다. <제페토 캡처>
대구 북구 강북보건지소 역시 2023년 5월 "대구지역 보건소 최초로 메타버스를 건강생활실천 및 재활사업에 접목했다"고 밝히며 메타버스의 공간을 홍보했다. 이곳의 누적방문자는 각각 2천300여 명, 최근방문수는 0명으로 나타났다.
대구시의 메타버스도 있다. 대구시는 2023년 총 11억6천만원을 들여 '메타버스 대구월드'를 만들었지만, 2024년 8월부터 사실상 중단, 홈페이지에 접속되지 않는 상태다. 2023년 7월부터 17억원을 투입한 관광플랫폼 '대구메타라이브' 역시 2024년 연말을 끝으로 운영을 종료했다.
◆인공지능 맞아?…답답한 AI 상담사
대구시청 홈페이지에서 스크롤을 내리면 '상담사 뚜봇'이라는 버튼이 보인다. 이 버튼을 누르면 새 창이 열리고 뚜봇과 대화할 수 있다. 뚜봇은 스스로 '대구시 인공지능 민원상담사'라 소개한다. 기자가 '고유가'까지만 입력하니 '고유가 피해지원금은 누가 받는 거야' '고유가 피해지원금은 언제부터 받을 수 있어'라고 연관검색어가 제시된다. 그러나 기자가 "1991년생은 언제 신청할 수 있지"라고 쓰자 답을 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영남일보 취재진이 대구시 AI 상담사 뚜봇에게 고유가피해지원금 안내를 받은 뒤 추가로 질문을 했지만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없었다. 'AI'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의 성능을 보여주고 있다. <온라인 캡처>
AI와의 상담을 포기하고 포털사이트의 기본검색창으로 들어갔다. "1991년생 언제부터 고유가 피해지원금 받을 수 있어?"라고 검색하자 3초 내에 신청 시기·방법과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끝자리가 1인 것을 반영한 정확한 날짜까지 알려주진 않지만, 대답조차 할 수 없는 뚜봇에 비해 훨씬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
뚜봇은 2017년 4월 '전국 지자체 최초 AI 챗봇'이라는 타이틀로 시범 서비스를, 이듬해 1월에는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후 고도화를 계속 거쳤다고 대구시는 설명하지만, 요즘은 생활이 된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지난해 12월 대구시 행정사무감사에 따르면, 뚜봇은 매년 유지관리비에 8천400여만원, 운영비에 1천500여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는데 이보다 못한 AI 상담에 막대한 유지운영비를 들이는 셈이다.
120달구벌콜센터에도 AI를 적용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여권·노후차량·차량등록 등 일부분에만 AI가 답변하고 있었다. 이 역시 대구시가 2023년과 2024년에 걸쳐 20억9천500만원을 들여 120달구벌콜센터 AI상담시스템을 구축한 것인데, 뚜봇은 이와 중복되는 측면도 있다.
최근 여권을 새로 발급받은 백성준씨(35)는 "당연히 포털에서 검색부터 해봤다. 120달구벌콜센터로 전화를 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권 업무 등 제한적 적용에 대해서는 "전분야에 AI 적용 돼도 지금의 수준에서 수요자나 공급자 측면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의문을 남겼다.
메타버스와 AI 같은 신기술은 아직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메타버스와 AI 등 신기술에 투입되는 예산이 '전시성 행정'에 머물지 않으려면 실험을 통한 꾸준한 개선 과정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이미지=생성형AI>
◆유행은 실패…기술의 가능성은 계속
메타버스 유행이 끝나자 관련 기업은 적자에 허덕이다 폐업하기에 이르렀다. 메타버스로 들어가는 차원의 문, 즉 애플리케이션이 통째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열 올려 홍보하던 메타버스 사이트와 플랫폼은 2026년 현재엔 어렵게 경로를 찾아들어가야 하거나 겨우 접속하더라도 이용이 불가능하다.
사명까지 '메타(meta)'로 바꾸면서 메타버스 사업에 투자했던 페이스북은 1분기 실적을 포함해 누적 손실이 800억 달러(약 100조 원 이상)를 넘겼다. 메타버스의 대중화가 실패했다는 세계적 증거로 볼 수 있다.
메타버스에서 AI로 넘어가는 '유행 기술 정책'은 보도자료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대구시청과 8개 구군(군위군 제외)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80건의 메타버스 관련 보도자료를 내며 메타버스 담론에 동참했다고 홍보해왔다. 특히 이 중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인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낸 자료가 66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AI에 관한 홍보도 꾸준히 늘어났다. 대구시청과 9개 구군(군위군 포함)에서 2016년과 2018년엔 1건씩 있던 관련 홍보 보도자료는 2020년 2건, 2021년과 2022년 5건에서 2023년엔 23건으로 늘어났다. 2024년부터 2025년에는 85건이었으며, 절반도 지나지 않은 올해에는 4월30일까지만 82건 발표했다. 총 205건 중 81%인 167건이 'AI 열풍' 속에 쏟아진 것이다.
이 중 '어르신건강관리', '통번역 시스템 도입', '공무원 교육' 등 활용도가 높아 보이는 내용도 상당수 있다. 그러나 '생성형 AI활용 출생 축하 카카오톡 서비스 추진', '생성형 AI 활용 어르신 생신축하 song 제작' 등 다소 황당한 정책을 보도자료로 홍보하는 지자체도 있었다.
대구시는 2023년 11억6천만원을 투자해 '메타버스 대구월드'를 만들었지만 현재는 접속할 수 없다. 대구시와 구·군청의 메타버스도 대부분 운영을 하고 있지 않다. <온라인 캡처>
조광현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메타버스는 대표적 '전시성 행정' 중 하나로 입안에서 예산집행까지 충분히 검토와 숙의할 시간이 부족해서 낭비가 된 사례"라며 "유행성·전시성 행정을 사회 전반적으로 거를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메타버스는 단순 게임과 SNS와 같은 형태에 머물며 '디지털트윈'이라는 기대에 못 미치고, 장비도 비싼 가격 탓에 대중화에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다른 산업으로의 연계가 부족했고, 행정이 메타버스를 너무 빨리 도입한 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류동현 대구시 AI정책과장은 "메타버스 기술은 '가상융합'이라는 이름으로 AI를 비롯해 각종 기술 기반으로 녹아들고 있다. 지금은 하드웨어가 더 발전하고 AI까지 접속해 과거보다 디지털트윈에 훨씬 더 가까워졌다"며 "대구시는 자율주행이나 각종 제조 현장에서 위험요소를 가상공간에서 시험을 한다"고 전했다. 이어 "메타버스는 산업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메타버스를 '실패한 기술'이라고 단정짓지 말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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