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봉화군청소년센터에서 열린 '2026 봉화군수 후보자 초청 농정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상식·국민의힘 최기영·무소속 박만우 봉화군수 후보와 농업인 단체 관계자들이 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황준오 기자
"농업 예산을 지키겠다", "농민이 가격을 결정해야 한다", "청년이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겠다."
6·3 지방선거를 앞둔 경북 봉화군수 선거판에서 '농업'이 처음으로 선거의 중심 의제로 올라섰다. 단순한 공약 발표 수준이 아니었다. 인구소멸과 고령화, 유통 구조 붕괴, 청년 이탈, 산업폐기물 갈등까지 뒤엉킨 봉화 농촌의 현실이 공개 토론장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단법인 봉화군농어업회의소가 지난 26일 봉화군청소년센터에서 개최한 '2026 봉화군수 후보자 초청 농정토론회'는 기존 지방선거 풍경과는 결이 달랐다. 행사장에는 농업인과 주민 300여 명이 몰렸고, 토론은 1시간40분 가까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농업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보다 "농업이 무너지면 봉화는 무엇으로 버틸 것인가"라는 절박감이었다.
봉화는 전체 인구의 약 40%가 농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대표적 농업 군(郡)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농산물 가격 결정권은 여전히 외부 공판장과 유통업체에 쏠려 있고, 농촌 고령화는 전국 최고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여기에 귀농·귀촌 열풍마저 한계를 드러내며 지역사회는 '버티기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상식 후보는 '에너지 기본소득형 농촌'을 꺼내 들었다. 그는 햇빛과 바람 같은 자연 자원을 소득화해 농업 노동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부가 평생 허리 휘어 일하다 겨울이면 병원으로 가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단순 농정 공약을 넘어 농촌 삶의 구조 자체를 문제 삼는 접근이었다.
반면 국민의힘 최기영 후보는 '공동화·규모화'를 핵심 키워드로 제시했다. 공동 선별·포장·물류 체계와 6차 산업 플랫폼을 통해 생산 중심 농업에서 가공·유통 결합형 산업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리다. 특히 그는 "농업 정책은 생산량이 아니라 농업인의 삶을 지키는 정책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외국인 계절근로자 확대와 여성농업인 복지 강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무소속 박만우 후보는 보다 현실론에 가까웠다. "유통 문제는 국가도 수십 년째 해결하지 못한 구조적 난제"라고 진단한 그는 농협 공동사업법인 확대와 대형 유통업체 직거래, 브랜드 인지도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특히 "봉화 사과가 더 맛있다는 평가를 받아도 소비자는 결국 청송 사과를 산다"는 발언은 지역 농업이 겪는 브랜드 경쟁력 한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이번 토론회가 주목받은 또 다른 이유는 '농업'이 더 이상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존립의 문제로 확장됐기 때문이다.
청년농 문제는 대표적이다. 토론 과정에서 드러난 현실은 냉혹했다. 최근 귀농·귀촌 감소세가 뚜렷한 데다, 정착 실패 후 도시로 다시 떠나는 이탈 현상까지 심각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단순 지원금이나 귀농 캠페인만으로는 지역 정착을 유도하기 어렵다는 데 후보들 모두 일정 부분 공감대를 보였다.
특히 문화·교육·주거 인프라 문제가 반복적으로 거론된 점은 의미심장하다. 봉화군이 그동안 농업 지원 중심 정책에는 집중했지만, 실제 청년 세대가 원하는 '삶의 조건' 구축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했다는 반성으로 읽힌다.
토론 말미 산업폐기물 매립장 문제가 등장하자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봉화읍 일대 추진 중인 대규모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두고 세 후보 모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단순 환경 논쟁이 아니라 '청정 봉화' 브랜드와 농업 생존권 문제로 직결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박 후보가 1990년대 석포 폐기물 처리 실패 사례를 언급하며 "봉화군이 지금도 연간 수억 원의 후유증 비용을 감당하고 있다"고 지적한 대목은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최 후보 역시 "오염된 땅에서 나온 농산물을 누가 믿고 사겠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이번 토론회는 '누가 군수가 될 것인가'보다 '봉화 농촌을 어떤 방식으로 재설계할 것인가'를 둘러싼 공개 검증 무대에 가까웠다.
다만 한계도 분명했다. 후보들의 정책 대부분이 방향론 수준에 머물렀고, 재정 확보 방안이나 실행 우선순위, 중앙정부 협력 구조에 대한 구체성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농업 인구 감소와 규모화 흐름 속에서 소농(小農)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정교한 청사진은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그럼에도 이번 토론회는 봉화 지방선거에서 보기 드물게 '정책'이 전면에 등장한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를 남겼다. 인물과 조직 중심으로 흐르던 지방선거가 처음으로 농촌의 미래 구조를 두고 공개 논쟁 단계로 진입했다는 평가다.
봉화의 농업은 지금 단순한 산업이 아니다. 그것은 인구를 붙드는 마지막 생활 기반이자, 청정 브랜드를 지탱하는 경제 축이며, 동시에 지역 공동체를 이어주는 생존의 언어가 되고 있다.
황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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