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 세청숲 입구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돌탑이 나란히 서 있다. 장승 너머로 400년 역사를 품은 이팝나무 군락의 숲길이 이어진다. 강승규 기자
지난 17일 오전 대구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 논밭 사이로 난 길 끝에 익살스러운 표정의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방문객을 맞았다. 장승 사이 돌탑을 지나 숲으로 들어서자 이팝나무들이 흙길 위에 서늘한 그늘을 제공했다.
이곳은 다리목마을의 이팝나무숲이다. 국립생태원 생태자산 자료에는 '세청숲'으로 기록돼 있다. 마을 어귀에서 바람과 물길을 막아온 전통 수구막이숲이다. 대구에서 가장 큰 이팝나무 자생 군락지로 꼽힌다. 숲 면적은 1만5천510㎡다. 현장 안내판을 보니, 이팝나무 32그루를 비롯해 나무 5종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주요 수목 나이는 100~200년으로 추정된다. 생물 유전자원과 자연 생태계를 보존할 가치가 높아 1991년 희귀식물 자생지인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대구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 이팝나무숲의 흙길 위로 나뭇가지가 터널처럼 드리워져 있다. 숲길 옆 안내판에는 400년 역사를 간직한 '마을의 방패막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강승규 기자
주민들은 이 숲 역사를 약 400년으로 본다. 임진왜란 무렵 교항리에 마을이 형성될 당시부터 이팝나무숲이 자리를 지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방패를 뜻하는 '간(干)' 자를 써 이 숲을 마을의 방패로 여겼다는 설명도 있다.
숲이 가장 화려해지는 때는 4월말부터 5월이다. 가느다란 흰 꽃이 가지마다 소복이 피면 멀리서 보면 눈이 내린 것처럼 보인다. 꽃 모양이 흰쌀밥을 닮아 '이밥나무'라고 불린다. 꽃이 풍성하게 피면 풍년이 들고, 드문드문 피면 흉년이 온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늘날까지 숲이 남을 수 있었던 데는 주민들의 노력이 컸다. 땔감이 귀하던 시절에도 이팝나무만큼은 함부로 베지 못하게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숲 입구에 돌기둥을 세우고 벌목을 막았다. 이후 보존회를 꾸려 관리해왔다.
고목이 고사하면서 개체 수가 줄자, 출향민들도 힘을 보탰다. 2000년대 초 출향민 82명이 성금을 모았고, 달성군은 주변 환경을 정비했다. 2006년엔 휴식 공간인 팔각정 '교간정'이 조성됐다.
대구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 세청숲에 설치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안내판. 이곳은 1만5천510㎡ 규모로, 이팝나무 32그루 등 5종의 수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강승규 기자
국립생태원이 2024년 실시한 마을숲 생태계서비스 평가에서 세청숲은 경관미 부문 최고 등급을 받았다. 문화유산과 관광, 사회적 관계, 휴양·건강 등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나무 군락은 대기를 정화하고 기후를 조절하는 한편, 토양 유실을 줄이고 야생식물과 곤충의 서식 공간을 제공한다.
당시 평가에 참여한 자연보호중앙연맹 손형백씨는 "교항리 이팝나무숲은 생태적 기능과 마을 역사, 공동체 문화가 함께 남은 전통 마을숲"이라며 "주민 생활과 맞닿은 공간인 만큼 정기적인 생육 점검과 체계적인 보전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현장에서 한 시간 가량 숲을 살펴보니 마른 가지와 풀이 있는 구간이 눈에 띄었다. 안내판도 비바람에 표면이 벗겨지거나 글씨가 흐릿했다. 수목 생육 상태와 병해충을 정기적으로 살피고, 노후 시설도 정비해야할 듯 보였다.
달성군 기획전략국 직원은 "교항리 이팝나무숲은 생태적 가치뿐 아니라 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이 축적된 소중한 자산"이라며 "수목 생육 상태를 꾸준히 점검하고 주변 환경을 정비해 숲의 원형과 가치를 지켜가겠다"고 말했다.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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