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만나는 우리동네 문화유산] 한 채의 작은 교회가 지켜낸 희망, 봉화 척곡교회를 걷다

  • 황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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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7-18 10:33  |  발행일 2026-07-18
나라를 잃은 시대, 신앙과 배움으로 마을을 밝힌 등불… 국가등록문화유산이 품은 100년의 기억
정방형 기와 예배당과 초가 사택이 전하는 경북 북부 농촌교회의 원형
국가등록문화유산 봉화 척곡교회 전경. 정방형 기와 예배당과 초가 사택이 한 공간에 남아 있어 우리나라 초기 농촌 교회의 원형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는다. 황준오기자

국가등록문화유산 봉화 척곡교회 전경. 정방형 기와 예배당과 초가 사택이 한 공간에 남아 있어 우리나라 초기 농촌 교회의 원형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는다. 황준오기자

교회는 마을보다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경북 봉화읍 척곡마을. 논과 밭 사이를 굽이굽이 이어지는 좁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낮은 담장 너머로 오래된 기와지붕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첨탑도,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도 없다. 대신 햇살에 바랜 목재와 기와, 그리고 한 세기를 묵묵히 견뎌온 건물이 조용히 시간을 품고 서 있다.


국가등록문화유산인 봉화 척곡교회다.


첫인상은 의외로 소박하다. 그러나 오래 머물수록 이곳은 단순한 교회가 아니라 근대 봉화의 역사와 신앙, 교육과 공동체가 함께 숨 쉬던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예배당은 정방형 평면 위에 기와지붕을 얹은 전통적인 농촌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다. 붉은 벽돌 기단 위에 세워진 목조 건물은 화려한 장식을 철저히 배제했다. 굵은 기둥과 나무 서까래, 오래된 창틀은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 옆으로는 초가지붕을 얹은 사택이 나란히 자리한다.


목회자의 생활공간이었던 이 초가집은 예배당과 함께 초기 농촌교회의 모습을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보여주는 보기 드문 사례다. 예배를 드리는 공간과 생활공간이 한 울타리 안에 공존하는 모습은 당시 교회가 단순한 종교시설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생활공동체였음을 말없이 증명한다.


척곡교회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봉화 척곡교회 초가 사택 전경. 목회자의 생활공간으로 사용됐던 건물로, 예배당과 함께 100여 년 전 농촌 교회의 신앙과 공동체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황준오기자

봉화 척곡교회 초가 사택 전경. 목회자의 생활공간으로 사용됐던 건물로, 예배당과 함께 100여 년 전 농촌 교회의 신앙과 공동체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황준오기자

1907년, 평안도에서 기독교를 접한 김종숙(1872~1956)은 고향 봉화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땅을 내놓아 예배당과 사택을 마련했고, 주민들과 함께 교회를 세웠다.


외국 선교사가 중심이 되어 세운 교회가 아니라 지역 주민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이고 공동체를 일군 교회라는 점은 척곡교회가 갖는 가장 큰 역사적 가치다.


교회는 신앙만 전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농촌 사회에서 교회는 새로운 문명을 만나는 창이었다. 아이들은 글을 배우고, 어른들은 세상의 변화를 접했다. 예배당은 기도를 올리는 공간인 동시에 배움이 시작되는 교실이었고,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의지하는 사랑방이기도 했다.


특히 나라를 잃었던 일제강점기, 척곡교회는 신앙과 교육을 통해 민족의식을 지키려 했던 작은 거점 가운데 하나였다.


총칼 대신 성경과 교과서를 들었던 사람들.


작은 예배당 안에서는 글을 배우는 소리가 이어졌고, 새로운 사상과 희망이 전해졌다. 화려한 독립운동의 현장으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문맹을 깨우치고 공동체를 일으켜 세우려 했던 노력은 결국 민족을 지켜낸 또 하나의 힘이었다.


그래서 척곡교회는 종교유산을 넘어 근대 교육과 계몽운동의 현장으로도 읽힌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나무에서 특유의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1907년 설립된 국가등록문화유산 봉화 척곡교회 표지석과 현판. 척곡교회는 경북 북부 지역 초기 개신교 전래 과정과 농촌 교회의 역사를 간직한 대표적인 근대문화유산이다. 황준오기자

1907년 설립된 국가등록문화유산 봉화 척곡교회 표지석과 현판. 척곡교회는 경북 북부 지역 초기 개신교 전래 과정과 농촌 교회의 역사를 간직한 대표적인 근대문화유산이다. 황준오기자

창문을 통과한 햇살은 바닥 위에 길게 내려앉고, 오래된 마룻바닥은 수많은 발걸음이 지나간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화려한 성당에서 느껴지는 장엄함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이곳에는 검소함이 있고, 사람 냄새가 있다. 건물이 오래되어 문화유산이 된 것이 아니다.


한 세기를 넘도록 마을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결혼과 장례, 배움과 신앙을 함께 품어왔기에 문화유산이 되었다.


척곡교회의 가치는 바로 그 '삶의 연속성'에 있다.


봄이면 연둣빛 잎사귀가 예배당 처마를 감싸고, 여름이면 짙은 녹음이 초가 사택을 에워싼다. 가을에는 은행잎이 마당을 노랗게 물들이고, 겨울이면 눈 덮인 기와지붕 위로 적막한 시간이 내려앉는다.


계절은 바뀌지만 교회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마을을 바라본다.


빠르게 소비되는 여행지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풍경이다. 천천히 걷고, 잠시 멈춰 서야만 비로소 보이는 시간이 있다. 봉화 척곡교회는 거대한 성당도 아니고 유명한 순례지도 아니다.


그러나 이 작은 교회 한 채에는 경북 북부에 기독교가 뿌리내린 역사와 민족의 암흑기를 견뎌낸 공동체의 의지, 그리고 시대를 밝히려 했던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이 켜켜이 쌓여 있다.


오래된 예배당은 오늘도 아무 말 없이 그 시간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그 침묵은, 어떤 화려한 건축보다 깊은 울림으로 방문객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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