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만나는 우리동네 문화유산] 터미널 옆 돌부처 앞에 매일 물이 놓이는 이유

  • 장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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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7-19 09:09  |  발행일 2026-07-19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서 걸어서 1분, 노서동 석불입상
미나리밭에 홀로 서 있던 불상…주민들의 생활 속 기도처
옛 남항사터 추정…약사여래 신앙처럼 가족 건강·안녕 빌어
경주 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에서 바라본 노서동 석불입상 비각. 시내버스가 줄지어 서는 대기장소 한쪽에 자리해 있어 오가는 사람들도 무심코 지나치기 쉽다. <장성재 기자>

경주 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에서 바라본 노서동 석불입상 비각. 시내버스가 줄지어 서는 대기장소 한쪽에 자리해 있어 오가는 사람들도 무심코 지나치기 쉽다. <장성재 기자>

이번에는 어디를 걸어볼까. '걸어서 만나는 우리동네 문화유산'의 다음 장소를 정하지 못한 채 며칠을 보냈다. 이름난 유적은 이미 많은 사람이 다녀갔고 너무 멀리 있는 곳은 우리 동네라는 말과 조금 어울리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지인이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터미널 옆에 오래된 불상이 하나 있어요."


터미널 인근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이다. 나는 처음에 그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터미널과 불상은 한 문장 안에서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들렸다.


터미널은 나도 종종 이용한다. 가끔 회사 일이 있어 동대구로 갈 때 버스를 타고 경주로 돌아오면 그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주변을 여러 번 오갔지만 불상을 본 기억은 없었다. 보지 못한 것인지 보고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며칠 뒤 지인과 함께 그곳을 찾았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황성공원 방향으로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경주시내버스들이 운행 사이 잠시 머무는 대기장소 옆에서 지인이 걸음을 멈췄다.


"여기예요."


낮은 붉은 울타리 안쪽을 들여다보자 얼굴 형체가 거의 남지 않은 석불이 보였다. 오가는 버스와 차량 소음 속에서도 불상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고요했다.


지인은 한동안 말없이 불상을 바라봤다.


"어릴 때는 이런 지붕도, 울타리도 없었어요. 그냥 불상만 있었죠."


40대인 그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이곳에서 뛰어놀았다고 했다. 불상 주변을 빙빙 돌고 돌로 된 몸을 손으로 만지기도 했다. 당시 아이들에게 불상은 문화유산이라기보다 동네에 늘 서 있는 커다란 돌에 가까웠다.


하지만 어른들이 불상을 대하는 모습은 달랐다. 누군가는 물을 가져다 놓았고 누군가는 과일을 올렸다. 두 손을 모으거나 조용히 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가 찾아간 날에도 불상 앞에는 생수병 여러 개가 놓여 있었다.


노서동 석불입상 앞에 누군가 가져다 놓은 생수병들이 놓여 있다. 인근 주민들은 이른 아침 이곳을 찾아 물을 올리고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빌곤 한다. <장성재 기자>

노서동 석불입상 앞에 누군가 가져다 놓은 생수병들이 놓여 있다. 인근 주민들은 이른 아침 이곳을 찾아 물을 올리고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빌곤 한다. <장성재 기자>

새벽 5시, 물을 들고 오는 사람들


불상 앞에 놓인 물은 누가 가져다 둔 것일까. 바로 옆 주차장에서 만난 버스기사에게 묻자, 그는 매일 새벽 이곳에서 반복되는 풍경을 들려줬다.


최씨는 "아침 5시쯤이면 이곳을 찾는 어르신들이 있다"며 "새로 산 생수병의 뚜껑을 따 석불 앞에 놓고 한동안 기도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고 말했다. 동료 기사 가운데서도 이곳을 찾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불교를 믿는 기사들은 첫 운행을 나서기 전이나 하루 일을 마친 뒤 잠시 두 손을 모은다는 것이다.


서천으로 아침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르기도 한다. 부처님오신날에는 과일을 놓고 가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인근 주민 김모씨도 중앙시장이나 중심상가에 다녀오는 길에 불상 앞을 지난다고 했다. 이곳을 지나게 되면 그냥 돌아서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는 이곳을 지날 때면 석불 주변을 천천히 돈 뒤 세 차례 기도를 올린다고 했다. 가족과 배우자가 건강하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또 집안에 환자가 생긴 뒤 날마다 아침 일찍 이곳을 찾는 동네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이곳의 더 오래된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근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유모씨는 "가게 문을 연 50여 년 전만 해도 주변은 미나리를 키우는 논밭이었다"며 "당시 석불은 덮개나 울타리 없이 바깥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고 기억했다.


미나리밭은 사라지고 터미널과 도로, 상가가 들어섰다. 노천에 있던 불상에는 지붕과 울타리가 생겼다. 주변 풍경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불상 앞에 물과 과일을 놓고 가족의 안녕을 비는 모습은 남았다.


가까이 다가가 석불을 살폈다. 다리 아랫부분은 땅에 묻혀 있고, 얼굴은 원래 모습을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파손됐다. 머리 둘레의 두광과 몸을 감싸던 신광도 크게 깨져 일부만 남았다.


얼굴은 사라졌지만 몸의 선은 비교적 또렷했다. 넓은 어깨와 길게 표현된 상체, 가슴 아래에서 비스듬히 내려오며 층을 이루는 옷 주름에서 통일신라 석불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노서동 석불입상. 얼굴과 광배 일부가 크게 훼손됐지만 넓은 어깨와 길게 표현된 상체, 아래로 이어지는 옷 주름에서는 통일신라 석불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장성재 기자>

가까이에서 바라본 노서동 석불입상. 얼굴과 광배 일부가 크게 훼손됐지만 넓은 어깨와 길게 표현된 상체, 아래로 이어지는 옷 주름에서는 통일신라 석불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장성재 기자>

병든 마음이 부처를 찾는 이유


사람들은 왜 얼굴도 알아보기 어려운 불상 앞에 물을 놓고 건강을 빌까.


박임관 경주문화원장은 경주에 전해오는 약사여래 이야기를 꺼냈다. 약사여래는 몸과 마음의 병을 낫게 해준다고 믿어온 부처다. 삼국유사에는 경주 분황사의 약사여래가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의 눈을 뜨게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옛사람들에게 병은 지금보다 훨씬 두려운 일이었다. 치료할 방법이 많지 않았던 시절, 가족 중에 누가 아프면 부처 앞에 물을 올리고 낫기를 빌었다. 어느 절의 부처가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사람들은 멀리서도 그곳을 찾아갔다.


박 원장은 이런 이야기가 사찰을 찾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오랫동안 이어졌다고 했다. 절이 있고 승려가 머물며 신도들이 오가는 곳에는 '영험한 부처'라는 이야기도 차곡차곡 쌓였다. 반대로 사찰이 사라지고 불상만 남으면 사람들의 발길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경주 남산 탑골처럼 바위마다 수많은 부처가 새겨진 곳에서도 간혹 촛불을 켜고 기도한 흔적을 볼 수 있지만, 현재 운영되는 사찰처럼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불상뿐 아니라 절과 승려,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함께 있을 때 신앙과 이야기도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서동 석불은 조금 다르다. 남항사로 추정되는 절은 사라졌고 불상의 얼굴도 알아보기 어렵게 됐다. 널리 알려진 특별한 영험담도 없다. 그런데도 주민들은 오랫동안 이곳을 찾았다.


박 원장은 "부처는 모두 같은 부처"라고 말했다. 어느 불상은 병을 낫게 하고 다른 불상은 그렇지 않다고 나누기보다, 사람을 불상 앞에 서게 하는 간절한 마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경주시 노서동 156-8번지 시내버스 대기장소 옆에 자리한 노서동 석불입상 비각. 주변이 미나리밭이던 시절부터 이곳을 지켜온 석불은 지금도 버스와 차량이 오가는 도심 속에 남아 있다. <장성재 기자>

경주시 노서동 156-8번지 시내버스 대기장소 옆에 자리한 노서동 석불입상 비각. 주변이 미나리밭이던 시절부터 이곳을 지켜온 석불은 지금도 버스와 차량이 오가는 도심 속에 남아 있다. <장성재 기자>

사라진 남항사, 남겨진 부처


노서동 석불이 서 있는 곳은 신라시대 남항사 터로 추정된다. 북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삼랑사터 당간지주가 남아 있고 삼국유사에는 삼랑사 남쪽에 남항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남항사에는 신라 효소왕 무렵, 삼랑사 경흥 스님의 병이 열한개 얼굴을 지닌 관음보살의 도움으로 나았다는 설화가 남아 있다. 병을 앓던 경흥 앞에 한 여승이 나타나 열한 가지 모습으로 춤을 추며 병을 낫게 한 뒤 남항사로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박 원장은 노서동 석불을 서천을 따라 이어졌던 신라 사찰들과 함께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영묘사와 흥륜사, 삼랑사 등 옛 왕경의 사찰들이 이 일대에 자리했고 노서동 석불이 있는 곳도 당시에는 사람들이 쉽게 오갈 수 있는 도심 사찰 공간이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절의 정확한 규모와 모습은 알 수 없다. 주변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원장은 경주 도심의 옛 유구가 현재 지표보다 40∼50㎝ 아래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며, 개발 당시 땅을 깊이 파내지 않았다면 석불 주변에도 옛 절의 흔적이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불상의 얼굴이 파손된 이유에 대해서는 조선시대 숭유억불의 흔적일 가능성을 들었다. 조선전기 불교가 힘을 잃으면서 시내에 있던 절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췄고, 그 과정에서 남겨진 불상 역시 손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 도착하고 다시 떠난다. 대부분은 작은 비각 안에 누가 서 있는지 모른 채 지나간다.


그러나 새벽마다 물을 가져오는 노인과 운행 전 손을 모으는 버스기사, 장을 보고 돌아오다 기도를 하는 주민들에게 노서동 석불은 지금도 살아 있는 동네의 부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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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재

동부지역본부 소속입니다. 경주의 현장을 기록하고 지역의 변화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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