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령장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 국군 제17연대 부대원들의 사진. 맨 앞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두 팔을 포개고 소총을 안고 있는 이가 김기범 하사다. 이 사진은 17연대가 1952년 10월 저격능선 작전을 앞두고 찍은 사진이라고 하며, 화령장전투전승기념관 로비에 걸려 있다. 화령장전투전승기념관 제공
"아버지께서는 뭔가 가슴에 맺힌 것을 달래려는 듯 평소에 술을 많이 드셨습니다. 취하시면 '너희는 군대는 꼭 가야 한다. 6·25와 같은 전쟁은 앞으로 없어야 한다. 나는 평양까지 포를 메고 올라갔고 전쟁 동안 엄청난 사람을 죽였다. 상주전투에서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김규호씨(70·충북 영동군 영동읍 비탄리)의 부친 고(故) 김기범씨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세의 나이에 입대했다. 대구에서 신병훈련을 받은 후 17연대에 배속됐다. 17연대는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17~24일에 경북 상주시 화서면 송계·상곡·동관리 일대에서 남하하는 북한군 15사단을 격퇴한 부대다.
화령장전투로 명명된 이 전투는 한국전쟁에서 국군이 북한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최초의 대규모 전투로 기록돼 있다. 17연대는 이 전투에서 아군 34명(사망 4명, 부상 30명)의 희생으로 북한군 606명을 사살하고 56명을 포로로 잡는 전과를 올렸다. 81mm 박격포 포병으로 이 전투에 참전한 김기범씨는 1954년 전공을 인정받아 은성화랑 무공훈장을 받아 병장에서 하사로 특진됐다.
2025년 충북 영동에서 열린 '6·25전쟁 제75주년 기념식'에 전시된 국군17연대 사진 앞에서 김규호씨가 부인, 두 아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김규호씨 제공
"아버지가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는 것을 전혀 모르다가 지난해 병역명문가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떤 훈장을 받았는지 전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진작 알았으면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아 아버지도 그렇게 힘들게 살지 않으셨을 테고 우리도 어린 시절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있었겠지요."
김기범씨는 2011년 사망했다. 아들 규호씨는 지난해 6월 자신의 큰아들과 함께 상주시 화서면 하송리에 있는 화령장전투전승기념관을 찾았다가 로비에 걸린 대형 사진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정말 아버지가 큰 사진의 맨 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에 계셨다. 눈물이 얼마나 나던지"라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규호씨는 선친이 암기력이나 판단력, 암산 등이 월등히 좋으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선친은 조용히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 7남매를 키웠다.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외면하시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무공훈장 수훈자인 것을 우리가 알았으면 현충원에 모셨을 텐데 '6·25 참전유공자'로만 인정돼 경기도 이천에 있는 호국원에 모셨습니다."
상주시는 매년 국방부와 함께 화령장전투 전승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연다. 규호씨는 오는 9월 5일 열리는 이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아버지께서는 말년에 정신이 흐려지시니까 참전유공자 모자를 쓰고 다니며 사람을 만나면 '충성'이라는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를 하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대전 현충원에 모시려고 보훈부에 여러 번 청원했지만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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