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사람은 왔는데 재울 곳이 없다”…성주 농촌 덮친 ‘숙소의 벽’

  • 석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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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8-30 20:57  |  수정 2026-08-30 21:14  |  발행일 2026-08-30
성주군, 농지법 개정 건의…농가 부담·농번기 인력난 해소 기대
“외국인 계절근로자 숙소로 농촌체류형 쉼터 활용해야”
외국인 숙소로 사용되고 있는 체류형 쉼터 전경. 석현철 기자

외국인 숙소로 사용되고 있는 체류형 쉼터 전경. 석현철 기자

참외 비닐하우스가 끝없이 이어지는 경북 성주의 농촌. 수확철이면 농민들은 해가 뜨기 전부터 하우스로 향한다. 이들의 곁을 지키는 외국인 계절근로자는 이제 보조 인력이 아니라 성주 참외농사를 떠받치는 핵심 인력이다.


하지만 농가에는 사람을 구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문제가 하나 더 생겼다. 어렵게 확보한 계절근로자를 어디에서 생활하게 할 것인가 하는 '숙소 문제'다.


최근 외국인 근로자 숙소 기준이 강화되면서 농가가 그동안 사용해 온 이동식 컨테이너 형태의 숙소는 더 이상 활용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기준을 충족하는 주택이나 원룸을 구하려 해도 농촌에서는 마땅한 공간을 찾기 어렵다. 숙소를 새로 마련하거나 임차하는 비용도 고스란히 농가의 몫이다.


숙소를 확보하지 못하면 비용 부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배정 자체가 제한될 수 있다. 농번기를 앞둔 농가로서는 한 해 농사를 좌우할 수 있는 문제다.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는 성주 참외 비닐하우스 전경. 석현철 기자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는 성주 참외 비닐하우스 전경. 석현철 기자

외국인 근로자 숙소 기준이 대폭 강화된 배경에는 2020년 12월 경기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캄보디아 노동자가 사망한 비극이 자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2021년부터 가설건축물 축조신고필증이 없는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나 조립식 패널을 숙소로 제공할 경우 외국인 고용허가를 전면 불허하고 있다. 농민들은 인권 보호라는 취지에는 깊이 공감하면서도, 농지법상 농지에 적법한 건축물을 짓기 어려운 현실적 제약 속에서 막대한 숙소 마련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런 농촌 현장의 절박함이 26일 안동에서 열린 민선 9기 첫 경북시장군수협의회 정기회의의 안건으로 올랐다.


전화식 성주군수는 이날 경북지역 22개 시장·군수 앞에서 '외국인 계절근로자 주거 안정 확보를 위한 농지법 개정'을 건의했다. 일정한 안전기준을 갖춘 농촌체류형 쉼터를 계절근로자의 임시숙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자는 제안이다.


전 군수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이어지는 농촌에서 외국인 계절근로자는 농업 생산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인력이 됐다"며 "성주군도 외국인 근로자의 노동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지만 숙소 기준 강화로 농가의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현행 제도와 농촌 현실 사이의 간극이다.


전화식 성주군수가 지난 26일 안동에서 열린 민선9기 첫 경북시장군수협의회 정기회의에서 외국인 계절근로자 주거안정 확보를 위한 농지법 개정을 건의하고 있다.  전화식 성주군수 페이스북 인용

전화식 성주군수가 지난 26일 안동에서 열린 민선9기 첫 경북시장군수협의회 정기회의에서 외국인 계절근로자 주거안정 확보를 위한 농지법 개정을 건의하고 있다. 전화식 성주군수 페이스북 인용

성주군의 외국인 계절근로자 의존도는 통계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법무부와 지자체 자료에 따르면, 본격적인 참외 수확철(3~5월)을 앞두고 성주군에 배정되는 외국인 계절근로자는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하지만 농가가 개별적으로 적법한 숙소를 마련하려면 농지 전용 부담금, 건축설계비, 시공비를 합쳐 수천만 원의 초기 비용이 발생한다. 영세 농가 입장에서는 치솟는 인건비에 이어 '숙소 마련'이라는 이중고를 겪으며, 비용 감당이 안 돼 농사 규모 축소까지 고민해야 하는 실정이다.


농촌체류형 쉼터는 가설건축물 신고를 거쳐야 하고 도로 접도와 소방시설 설치 등 일정한 안전요건도 충족해야 한다. 사람이 머무르는 것을 전제로 도입된 시설이지만 외국인 계절근로자의 숙소로는 사용할 수 없다.


농촌에서는 주말 체류나 영농 체험을 위해 사람이 머무는 것은 허용하면서, 적법한 절차로 입국한 계절근로자가 농번기 동안 생활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 제도를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성주군은 농지법 시행규칙 제3조의2에 단서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법무부를 통해 적법하게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고용한 농업인에 한해 근로계약 기간 농촌체류형 쉼터를 임시숙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단순히 농지법만 고쳐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 관계 부처별 개선 방안도 함께 내놨다.


농림축산식품부에는 농촌체류형 쉼터를 계절근로자 숙소로 사용할 수 있는 근거 마련을, 고용노동부에는 외국인 근로자 숙소 운영기준에 해당 시설을 포함하는 방안을 요청했다. 법무부에는 농촌체류형 쉼터를 계절근로자의 적법한 체류지로 등록할 수 있도록 관련 기준을 개선해 달라고 건의했다.


제도가 개선되면 농가가 무허가 컨테이너나 창고를 숙소로 편법 활용하는 문제도 줄일 수 있다. 신고 절차와 소방시설 등 안전기준을 갖춘 시설로 전환함으로써 계절근로자의 주거환경과 인권을 보호하고 농가의 법적 불안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주군이 대안으로 제시한 '농촌체류형 쉼터' 역시 현행법상으로는 외국인 숙소로 쓰기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정부가 농촌소멸 대응책으로 도입한 이 쉼터는 33㎡ 이내의 가설건축물로, '본인'이 농작업을 위한 임시 숙소로 활용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반면 외국인 근로자 숙소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1인당 최소 면적, 남녀 구분, 소방 및 위생 설비 등 엄격한 기숙사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농지법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의 근로자 기숙사 기준까지 동시에 풀어야 하는 복합적인 딜레마에 빠져 있는 셈이다.


성주군이 대안으로 제시한 '농촌체류형 쉼터'가 실제 계절근로자 숙소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고용노동부의 까다로운 가이드라인을 넘어야 한다. 현행 규정상 외국인 근로자 기숙사는 1인당 2.5㎡ 이상의 침실 면적, 냉난방 설비, 화장실 및 목욕 시설, 채광·환기 요건을 엄격히 갖춰야 한다. 농식품부가 올해 12월부터 도입하는 농촌체류형 쉼터는 최대 33㎡(약 10평) 규모로 기본적인 주거 요건은 갖출 수 있으나, 다수의 근로자가 동시 거주하기에는 면적이 협소해 '1가구 1~2인 고용' 소규모 농가에 한정된 임시방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 계절근로자는 농촌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들어왔지만, 이들을 받아들일 주거정책은 여전히 도시와 내국인 중심의 기준에 머물러 있다. 농촌에서는 '사람이 부족한 문제'와 '사람이 머물 곳이 부족한 문제'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숙소 규제에 대응해 경북 내 타 지자체들은 '공공형 기숙사' 건립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영양군을 시작으로 김천, 영주, 문경, 청도, 영천 등 도내 8개 이상 시·군이 농식품부의 '농업근로자 기숙사 건립 지원사업'에 선정돼 국비를 확보했다. 지자체가 직접 쾌적한 숙소를 지어 농가의 부담을 덜고 근로자의 주거 환경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전국 최대 참외 산지로서 인력 수요가 폭발적인 성주군 역시, 법 개정 촉구와 함께 지자체 차원의 공공 기숙사 확충이라는 '투트랙 전략'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별 농가의 부담을 덜기 위한 '공공형 기숙사' 건립이 전국적으로 속도를 내고 있지만, '참외 수도' 성주군의 발걸음은 다소 늦은 편이다. 경북도에 따르면, 올해 영양군이 전국 최초로 100여 명 규모의 공공형 계절근로자 기숙사를 준공해 운영에 들어갔으며, 청도·김천 등 도내 여러 지자체가 국비 지원을 받아 기숙사를 짓고 있다. 대규모 인력이 집중적으로 필요한 참외 농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중앙정부를 향한 제도 개선 촉구와 별개로 성주군 자체적인 거점형 공공 기숙사 건립 예산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화식 성주군수는 "현장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숙소 기준보다 안전성을 확보하면서 농가에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제도적 대안이 필요하다"며 "군민에게 도움이 되는 사안은 법령 개정을 통해서라도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성주 참외농가에 외국인 계절근로자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됐다. 이제 농촌이 묻는 것은 단순하다. 농사를 짓기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도 제도 안에서 마련해 줘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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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현철

지역의 변화와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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