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 장애 이어 시야도 좁아지는 구경선 작가와 임재양 원장의 인연

  •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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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9-22 19:02  |  발행일 2026-09-22
청각 장애에 시야 흐려지는 희귀병 앓아
10년 전 한 일간지의 기사로 인연 시작
파리행 후원…병원 북콘서트로 첫 만남

카톡 이모티콘 ‘베니’ 작가로 활약 중
해외서 캐릭터 사업 등 새로운 도전도
지난 21일 임재양외과의원에서 소리를 잃고 빛마저 희미해지는 어셔증후군 속에서도 토끼 베니를 통해 희망을 그려온 구경선(오른쪽) 작가의 북콘서트가 진행됐다. 이날 북콘서트는 10년 전 한 일간지의 기사로 인연이 시작됐던 임재양(왼쪽) 원장이 진행을 맡아 이끌어갔다. 박주희기자

지난 21일 임재양외과의원에서 소리를 잃고 빛마저 희미해지는 어셔증후군 속에서도 토끼 '베니'를 통해 희망을 그려온 구경선(오른쪽) 작가의 북콘서트가 진행됐다. 이날 북콘서트는 10년 전 한 일간지의 기사로 인연이 시작됐던 임재양(왼쪽) 원장이 진행을 맡아 이끌어갔다. 박주희기자

지난 21일 임재양외과의원 옆 '한입별당'. 10년 동안 서로의 안부를 마음속으로만 물어오던 두 사람이 드디어 처음으로 마주 앉았다. 청각 장애가 있는 자신을 대신해 소리를 들어줄 귀가 큰 토끼 '베니'를 그리고 있는 구경선 작가와 임재양외과의원의 임재양 원장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약 10년 전 한 일간지에 실린 인터뷰 기사 한 편으로 시작됐다. 구 작가는 두 살 때 열병으로 청각을 잃은 데 이어, 시야가 점차 좁아지다 시력을 잃게 되는 희귀 난치병 '어셔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임 원장은 구 작가의 스토리가 담긴 기사를 읽으며 눈물을 많이 쏟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기사에는 '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가고 싶다'는 구 작가의 간절한 버킷리스트가 담겨 있었는데, 이를 본 임 원장이 신문사로 연락해 구 작가 모녀의 파리 여행 비용을 후원하겠다고 나서면서 인연의 끈이 연결됐다.


파리를 다녀온 구 작가가 기어코 후원자를 알아낸 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한 '오르세 미술관을 감상하는 베니' 그림은 임 원장의 병원 한쪽 벽에 걸려 있다. 두 사람은 그저 마음으로만 고마움과 응원을 보낼 뿐이었다. 구 작가는 혹여 부담을 주게 될까 조심스러웠고, 임 원장은 구 작가의 시력이 더 나빠졌다는 아픈 소식을 접하게 될까 두려웠던 까닭이다.


그런데 얼마 전 '생로병사의 비밀' 촬영차 병원을 찾은 한 스태프가 병원에 걸린 베니 그림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구 작가의 친구라고 밝힌 그는 "구 작가가 시력도 유지되고 있고 연하의 남편과 결혼해서 건강한 아들을 낳아 잘 살고 있다"는 반가운 근황을 전했다. 이 소식에 안도한 임 원장이 먼저 안부 문자를 보냈고 이를 계기로 임 원장의 병원에서 북콘서트로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성사됐다.


지난 21일 임재양외과의원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그동안의 삶의 궤적과 향후 계획을 밝히고 있는 구경선(오른쪽) 작가. 박주희기자

지난 21일 임재양외과의원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그동안의 삶의 궤적과 향후 계획을 밝히고 있는 구경선(오른쪽) 작가. 박주희기자

올해 초 캐릭터 '베니'와 자신의 삶을 담아낸 책 '그래도 괜찮은 하루' 개정판을 10년 만에 펴낸 구 작가는 이날 북콘서트에서 장애를 안고 살아온 삶의 궤적부터 결혼 이야기, 그리고 해외에서의 새로운 도전 계획까지 담백하게 풀어놓았다. 그녀는 현재 정면 8㎝ 정도의 좁은 터널 시야만 유지하는 상태이지만 다행히 10년 전 수준의 시력을 기적처럼 지켜내고 있다. 북콘서트 현장에서는 동석한 남편이 매니저처럼 입모양과 '눈앞 손글씨'로 대화를 이어줬고, 구 작가는 '짭짤하죠' '그냥 까불어 보는 거죠' 같은 위트 있는 말로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청각장애인에게 수어라는 좋은 수단이 있지만, 어머니께서는 제가 어릴 때부터 세상의 틀을 깨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입으로 말하는 연습을 하게 하셨어요."


딸의 혀가 굳을까 봐 입 주변에 설탕을 묻혀 빨아 먹게 했고, 자신과 딸의 목에 손을 갖다 대게 해서 소리 연습을 쉬지 않고 하도록 가르쳤다. 구 작가는 세상에 나와 적잖은 상처를 받았고 어렵게 합격했던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중퇴하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이후 '싸이월드 스킨작가'로 첫 직업을 가지며 홀로서기에 성공했고 현재는 카카오톡 이모티콘 '베니'의 작가이자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홍보대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나쁜 생각을 안 하려고 했던 온라인 게임을 통해 뜻밖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뤘고 어느덧 여섯 살이 된 아들도 품에 안았다. "아들의 옹알이가 너무 듣고 싶어 보청기를 처음 맞췄고 아이의 목소리라는 걸 느낄 수 있게 됐다"는 고백에서는 참가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가장 힘든 부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미리 한계를 정해두고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라고 답한 그녀는 이제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해외 유학과 '베니' 글로벌 캐릭터 사업 진출이다.


구 작가는 "베니를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캐릭터로 만들고 싶다"면서 "해외에서의 학업에도 도전장을 내밀 계획"이라고 말했다.


"많은 분들이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해외에 가느냐'고 걱정하세요. 저도 새로운 일이 겁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눈이 보이는 지금 더 많이 보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보고 싶어요. 그냥 한번 '까불어 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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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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