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에 가로막힌 욕망④] “나도 일하고 싶다”…장애인의 ‘일할 권리’는 어디까지 왔나

  • 김현목
  • |
  • 입력 2026-09-25 13:59  |  발행일 2026-09-25
“일은 돈만 버는 게 아니죠”…능력 확인하고 사회와 연결
취업 희망은 분명한데…채용 문턱과 직무 선택은 여전히 높아
취업 숫자 넘어 ‘오래 일할 수 있는가’까지 봐야
장애인의 욕망에 대한 보이지 않는 벽. 게티이미지뱅크

장애인의 욕망에 대한 보이지 않는 벽. 게티이미지뱅크

"직장동료 중에 장애인 당사자가 없다."


대구지역 장애인들이 일자리와 관련해 겪는 현실을 묻자, 나온 응답이다. 장애인에게 일은 단순히 소득을 얻는 수단만은 아니다. 자기 능력을 확인하고 사회와 관계를 맺는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하고 싶은 욕구와 실제 일자리 사이엔 여전히 간극이 컸다.


◆"장애보다 능력을 봐줬으면"


대구대 장애인위원회에서 근무하는 신홍섭 씨가 수어로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신 씨는 청각장애를 딛고 2003년 대구대에서 조교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김현목 기자

대구대 장애인위원회에서 근무하는 신홍섭 씨가 수어로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신 씨는 청각장애를 딛고 2003년 대구대에서 조교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김현목 기자

대구대 장애인위원회에서 근무하는 신홍섭(47)씨. 최근 대구대에서 만난 신씨에게서 특별히 다른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신 씨는 말을 잘 하지도, 들을 수도 없다. 생후 백일 무렵 심한 열병을 앓으면서 청각장애가 생겨서다. 가족들이 서울까지 데려가 치료를 받도록 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청각장애인으로 살아왔다.


초등학교 때 농학교에서 수어로 수업을 받고, 친구들과 자유롭게 소통했다. 하지만 일반 중·고교에 진학하면서 달라졌다. 음성언어 중심 수업과 학교생활에서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대화에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그는 당시를 "답답함과 소외감을 느끼던 시기"라고 털어놨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이라는 또 다른 벽을 만났다. 여러 차례 지원했지만 계속 고배를 마셨다. 열심히 준비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자 '청각장애 때문에 취업이 더 어려운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때 어린 시절 자신을 가르쳤던 농인 교사의 말을 되새기며 버텼다. "꿈을 포기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라"는 말이었다. 이후 대구대에서 조교로 일해보라는 제안을 받아 2003년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2005년엔 직원으로 입사했다.


처음엔 행정업무가 익숙하지 않아 실수도 많이 했다. 의사소통 때문에 업무 내용을 여러 번 확인해야 했다. 다행히 동료들의 도움으로 업무를 하나씩 배웠다. 문자와 메신저, 이메일 등 자신에게 맞는 의사소통 방법도 찾았다. 국고사업 운영과 예산 관리, 사업계획 작성 등 업무 영역도 점차 넓어졌다.


그가 '일을 하길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장애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때다. 자신이 상담했던 학생이 원하는 직장에 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단다.


그에게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일이 아니다. 자기 능력을 확인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는 과정이다. 자신이 받았던 도움과 기회를 장애학생들에게 돌려주는 의미도 있다.


그가 바라는 건 장애보다 '능력과 경험'을 먼저 봐주고, 필요한 지원을 받으며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다. 신씨는 장애학생들에게 "장애 때문에 자기 가능성을 먼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어 "실패도 하고 힘든 과정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아서 여기까지 왔다"고 덧붙였다.


2025년 하반기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 15세 이상 기준 고용률. 인포그래픽 생성형AI 클로드

2025년 하반기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 15세 이상 기준 고용률. 인포그래픽 생성형AI 클로드

◆대구 장애인 고용률 22.7%…"일자리·고용 가장 큰 불편"


2026년 대구지역 장애인 권리보장 정책 요구 기초조사(대상자 116명)에서 최근 2년 내 차별이나 불편을 가장 심각하게 느낀 영역으로 '고용·일자리'를 꼽은 응답은 15%였다. 이동권(21%)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이 조사엔 장애인 50명, 장애인 가족 39명, 관련 종사자 27명이 참여했다.


주관식 응답에선 일자리 양은 물론, 질과 선택권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작업장 같은 데 가면 다 부품조립이나 포장 등 단순작업뿐입니다" "작업장에 있을 때 월급이 적었어요" "장애인의 경우 채용에서 서류 탈락" 등의 응답이 대표적이다.


고용지표로도 대구 장애인 일자리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진행한 '2025년 하반기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대구 15세 이상 장애인(12만7천311명) 중 취업자는 2만8천924명이다. 고용률은 22.7%로 전국 장애인 고용률 평균(34.0%)보다 11.3%포인트나 낮았다. 그나마 경북은 17만3천756명 중 6만561명이 취업해 고용률이 34.9%였다.


2025년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 인포그래픽= 생성형AI 클로드

2025년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 인포그래픽= 생성형AI 클로드

◆발달장애인 55.5% "취업 희망"…단순노무 71.9%


장애인 중에서도 발달장애인은 미취업 상태에서도 일하고 싶은 욕구가 뚜렷했다. '2025년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현재 일을 하지 않는 발달장애인 중 55.5%가 취업을 원했다.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 중 취업희망비중은 각각 54.1%, 72.8%였다. '당장 내일부터 일할 의향'을 묻자 47.0%가 '그렇다'고 했다.


일하고 싶은 이유는 '돈을 벌고 싶다'가 59.4%로 가장 많았다. 그 외 '일을 배우고 싶다'(18.8%), '일을 잘 할 수 있다'(10.5%), '집에만 있기 싫다'(7.4%)는 응답도 있었다. 일에 대한 욕구가 소득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일하고 싶은 욕구에 비해 선택할 수 있는 직무가 다양하지 않다는 점이다.


발달장애인 취업자 6만8천146명 중 직업 분류상 단순노무 종사자가 71.9%로 가장 많았다. 서비스 종사자(12.1%), 사무 종사자(4.7%)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대구지역 장애인 권리보장 정책 요구 기초조사에서도 '노동권 보장 및 공공일자리 확대' '발달장애인 일자리 정책 확대' 등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희망에 맞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정미 경북연구원 기획실장, "일자리 하나보다 오래 일할 환경 만들어야"

이정미 경북연구원 기획실장. 본인 제공

이정미 경북연구원 기획실장. 본인 제공

지역 싱크탱크인 경북연구원 이정미 기획실장은 장애인 취업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으로 개인 능력이나 의지보다 '고용환경'과 '지원체계 부족'을 손꼽았다. 장애인 특성과 기업 직무를 연결하고, 채용 이후 적응까지 돕는 체계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실장은 경북도의회 '민간기관 장애인 고용 확대 방안 연구'를 총괄하면서 장애인과 기업 현장을 직접 살폈다. 그는 "기업들이 장애인을 고용할 의지가 없다는 느낌은 덜했다"며 "어떤 직무에 배치해야 하는지, 적합한 인력을 어떻게 찾을지, 채용 후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장애인에게 기존 직무에 맞추라고 요구하기보다 기업이 직무와 근무환경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 실장의 제언이다. 직무 분석을 통해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업무를 발굴하고, 채용 전 현장훈련과 근로지원, 채용 후 적응 지원까지 이어지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장애인 일자리의 '질'도 과제다. 이 실장은 "장애인을 몇 명 취업시켰는지로 평가해선 안 된다"며 "얼마나 오래 일하고, 어떤 직무에서 숙련을 쌓으며 경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정부와 지자체 정책도 의무고용 중심에서 고용 유지와 경력 형성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일자리센터를 중심으로 기업 발굴과 직무 분석, 인력 매칭, 초기 적응과 사후관리를 연결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고, 그 일을 오래 하면서 경력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장애인 고용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애인도 자기 능력으로 일하고, 조직의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노동자로 바라봐야 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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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목

대구경북 대학과 보훈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기사를 작성하는데 집중하고 한번쯤 생각날수 있는 기사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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