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현곡면 남사리 마을 주택가에 자리한 경주 남사리 북삼층석탑. 1970년대 경주경찰서 정원으로 옮겨졌다가 1995년 주민들의 요청으로 돌아와 새 기단 위에 복원됐다. 장성재기자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 마을길을 따라가면 주택과 밭 사이로 오래된 삼층석탑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밝은색 기단 위에 세월의 흔적이 짙게 밴 몸돌과 지붕돌이 올려져 있다. 탑 옆에는 복원에 쓰이지 않은 옛 석재들이 놓여 있다. 천년의 돌이 마을 사람들의 일상 한가운데 서 있는 풍경이다.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인 '경주 남사리 북삼층석탑'이다. 지금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한때 경주경찰서 정원으로 옮겨졌다가 20여 년 만에 돌아온 사연을 품고 있다.
남사1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최용웅(87)·김종일(82) 어르신에게 석탑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에는 오래된 일이라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서로의 기억을 보태기 시작했다.
"그때는 탑이 온전히 서 있던 게 아니었지."
1970년대 경찰서로 옮겨질 당시 석탑은 몸돌과 지붕돌이 흩어진 상태였다고 한다. 석탑재를 가져가는 데는 포크레인까지 동원됐다는 것이 주민들의 기억이다.
어르신은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그때는 경찰에 가면 겁났잖아."
경주 남사1리 마을길 옆에 서 있는 북삼층석탑. 주택과 밭 사이에 자리한 이 탑은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주민들의 생활공간과 맞닿아 있다. 장성재기자
경찰서에서 탑재를 가져간다고 해도 주민들이 쉽게 나서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최용웅 어르신은 당시 경찰서가 마을에 흩어져 있던 탑재를 옮겨 갔고, 이후 마을의 한 인사가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진정을 내는 등 반환에 힘썼다고 기억했다.
석탑이 남사리로 돌아온 것은 1995년이다. 경찰서에 있던 몸돌과 지붕돌을 가져와 새로 만든 기단 위에 다시 세웠다. 1985년 경주 동부동 삼층석탑으로 문화유산자료에 지정됐던 탑도 이때 현재의 이름을 얻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오래된 탑재와 새 기단의 색깔 차이가 뚜렷하다. 1층 지붕돌과 그 위층 몸돌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고, 지붕돌 아래에는 다섯 단의 받침이 남아 있다. 탑 곁에 놓인 옛 돌들도 눈길을 붙잡는다.
경주 남사리 북삼층석탑 옆에 보존된 옛 석재들. 1995년 경찰서에서 탑재를 되찾아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사용하지 않은 돌들이 탑 곁에 남아 있다. 장성재기자
그렇다면 경찰서는 왜 마을의 석탑을 가져갔을까.
박임관 경주문화원장에게 물었더니 옛 경찰서 정원의 모습부터 떠올렸다.
"지금 폐쇄된 옛 정문 있잖아요. 거기로 들어가면 오른쪽 담벼락 밑에 향나무가 쭉 있었어요. 그 사이에 석탑재들이 하나씩 놓여 있었지요."
박 원장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경찰서와 교육청 등이 문화유산을 관리했으며, 관공서 정원에 석조물을 정원석처럼 가져다 놓는 일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냥 옆으로 하나씩 하나씩 쭉 있었다고. 당시에는 돌을 옮겨다가 정원석 비슷하게 놓아두기도 했어요."
2014년 경주경찰서 정원에 있던 신라사면석불 석탑 앞에서 열린 연등 점등식 모습(오른쪽)과 현재 같은 일대에 설치된 택배보관함(왼쪽). 당시 석탑 관련 유물은 2015년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됐다. 영남일보 DB·장성재기자
경주경찰서에는 북삼층석탑 외에도 부처가 새겨진 석탑이 있었으며, 이 유물은 2015년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됐다.
직접 찾아간 경주경찰서 앞뜰에는 과거 석조물이 있던 자리에 택배보관함이 들어서 있었다. 청사관리담당 부서에서도 북삼층석탑이 놓였던 정확한 자리를 곧바로 확인하지 못했다. 박 원장이 기억하는 향나무 사이의 석탑재들도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됐다.
남사리 마을회관에서 들은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주민들이 어렵게 되찾은 석탑을 두고 지금은 다른 목소리도 나오고 있었다.
"그때는 마을에 탑 하나 있는 것도 자랑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탑이 돌아온 뒤에는 집을 짓거나 고치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어르신은 문화유산 주변이라는 이유로 건축에 제약을 받으면서 마을에 불편이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장순기 남사1리 이장도 "예전에는 집을 개량하지 못했으니까요. 지금은 조금 완화됐는지 회관도 짓고 했잖아요"라고 말했다.
남사1리 복지회관은 2003년 12월 사용승인을 받았다. 주민들은 회관 하나를 짓는 과정에서도 오랜 시간 어려움을 겪었다고 기억했다.
마을의 자랑으로 되찾았던 석탑이 이제는 생활의 불편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가 된 셈이다.
이주영 경주시 문화유산과 연구팀장은 "도지정문화유산 주변 300m는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이지만 모든 건축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며 "기존 마을은 건축이 가능하도록 기준을 마련했고, 다른 구역도 절차를 거치면 허가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을빛으로 물든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 산자락 아래 보물 삼층석탑이 서 있다. 절의 이름과 규모는 전해지지 않지만, 이 일대는 통일신라시대 옛 절터로 추정된다. 장성재기자
마을을 벗어나 남사저수지 서남쪽 골짜기로 향했다. 이번에는 숲에 둘러싸인 넓은 터에 삼층석탑 하나가 홀로 서 있다. 마을 안의 북삼층석탑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보물 '경주 남사리 삼층석탑'이다. 높이 4.07m로 이층 기단 위에 삼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렸다. 9세기 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1975년 보수 당시 위층 기단 일부를 보충했을 만큼 원래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절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마을 어르신들은 이 일대에 큰 절과 작은 절이 있었다고 했다. 예전에는 골짜기에 물도 풍부했다는 이야기가 뒤따랐다.
경주시 현곡면 남사저수지 인근 산자락에 자리한 보물 '경주 남사리 삼층석탑'.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이층 기단 위에 삼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형태다. 장성재기자
박 원장은 "두 탑이 서로 거리가 꽤 떨어져 있잖아요. 같은 사찰의 쌍탑으로 볼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절터에 있던 탑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지요"라고 설명했다.
남사리의 두 석탑은 같은 신라의 세월을 품고 있지만 지나온 길은 다르다. 하나는 골짜기에 남았고, 다른 하나는 경찰서 담장 아래를 거쳐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북삼층석탑 곁에는 그때의 옛 돌들이 여전히 놓여 있다. 마을회관에는 그 돌들이 떠나던 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
장성재
동부지역본부 소속입니다. 경주의 현장을 기록하고 지역의 변화를 전합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