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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구시의 한 부서는 '2026년 국비 확보 관련 중앙부처 방문에 따른 지역특산품 구입비'라는 항목의 업무추진비를 집행했다.
지난 2024년 대구시 한 경제 관련 부서의 1분기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에서도 '국비 예산 확보 업무 추진에 따른 지역 특산품 구입비 지출'이란 항목이 발견됐다.
같은 해 경북도의 한 교통 관련 부서의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에도 '국비확보 및 중앙부처 예산반영 관련 업무 관계자 지역특산품 제공'을 위한 예산 집행 사례가 포함돼 있었다.
대구경북에만 이런 항목의 예산 집행이 있는 것은 아니다. 광역지자체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며, 기초지자체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예산 집행 사례다.
'국비 확보 업무 협의를 위한 기념품(지역특산품) 구입' '국비 확보를 위한 관계자 특산품 제공' '국비사업 지원 협조 유관기관 제공 제주특산품 구입' 등 비슷한 명칭의 예산 집행이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잇따르고 있다.
국비 확보를 위해 중앙부처를 방문하는 지자체가 지역 특산품을 선물하는 관행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자체는 '절박한 생존 전략'이라지만, 효과가 불분명한 데다 주민 세금이 쓰인다는 점에서 비판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선물의 문제를 넘어 예산과 권력이 중앙에 집중된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비 확보 위한 특산품 구입 9-10월 두달간 41건
6일 영남일보가 전자정부 누리집에서 '국비'와 '특산품'을 키워드로 검색해 봤다. 그 결과, '국비 확보 업무 협의를 위한 지역 특산품 구입' '국비 확보 현안 건의를 위한 국회 방문 홍보용 특산품 구입' 명목의 예산 집행 혹은 집행 신고 사례가 올해 9~10월 단 두 달 사이에 41건이 확인됐다.
지난 5년(2021~2026년)간 대구시의 업무추진비 집행내역 중 '국비 확보 특산품 구입'이란 표현이 포함된 집행내역을 키워드도 분석했다. 4개의 단어(국비·확보·특산품·구입)가 모두 포함된 집행내역은 총 23건으로 파악됐다.
지자체가 업무 협의차 유관기관을 방문할 때 기념품이나 특산품을 선물하거나 상대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관행처럼 굳어져 있었다.
선물의 종류는 과일이나 고구마 등 해당 지역의 농축수산물이나 특산물로 만든 가공품, 간식거리 등이 특히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산물이 다양하고 풍부한 농어촌 지자체와 달리 대도시에서는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도 한다.
지자체 업무추진비 집행에 관한 규칙에는 업무추진을 위한 각종 회의·간담회·행사, 시책 또는 지역 홍보 등에 업무추진비 집행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청탁금지제도과 담당자는 영남일보와의 통화에서 "원래는 청탁금지법상 '원활한 직무수행 목적'을 벗어난 선물 제공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그런 행위가 관계 법령에 규정이 돼 있다면, 예외 사항으로 허용이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6년 이른바 '김영란법'이 제정될 당시에 이 관행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보도된 충청권 언론의 한 기사에는 "지난해까지 국회 의원회관의 의원실을 찾을 때 지역 특산품 등을 전달하고 유대관계를 맺어 지역현안 사업 예산을 많이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나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어려워졌다"고 토로하는 공무원의 발언이 담겨 있다.
비슷한 시기 국내 한 온라인 매체 기사에도 "강원도는 지난 7월 국비 예산 확보를 위한 업무 협의차 중앙부처를 방문하면서 지역 특산품을 챙겨 갔다. 협의 대상 공무원들에게 특산품을 선물하고 점심도 함께하다 보니 업무추진비 68만 원을 지출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해당 기사에는 '업무 협의차 유관기관을 방문할 때 기념품이나 특산품을 선물하는 관행'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국비확보 위한 '절박한 생존전략'
지자체들은 나름의 '절박한 생존 전략'이라는 입장이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 입장에서는 국비 확보가 지역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이에 특산품 선물 관행은 수많은 지자체 사이에서 지역의 사업을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게 만들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것. 이와 함께 중앙부처 공무원들에게 지역의 대표 브랜드나 특산물을 자연스럽게 알리는 마케팅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취재진이 국내 지자체 4곳에 무작위로 상황을 확인해봤다.
익명을 요구한 대구지역 한 기초자치단체의 A직원은 "국비 확보를 위해 정부 부처나 국회를 방문할 때 그 지역의 특산품을 선물로 사 들고 갈 때가 있다"라며 "일종의 인사치레 같은 것인데, 그런 특산품 선물이 국비 확보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물론, 받는 쪽도 부담이 되는지 요즘은 그런 선물을 아예 안 받으려고 하는 부처나 직원도 있다"고 말했다.
B지자체 예산 담당자는 "국비 협의를 하러 상경을 할 때 지역 특산품인 과일이나 차 등을 들고 올라간다. 물론, 관련 기준에 따라 너무 비싼 것은 구입하지 않는다"라며 "어떤 사람과 처음 만날 때 커피 한잔 대접하듯 국회나 중앙부처 쪽에 작은 선물을 건네는 것이다. 우리 지역 특산품을 서울에 홍보하자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경북지역의 한 지자체 간부급 직원 C씨는 "민선 시대가 되면서 지자체 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각 지자체에서 예산 확보나 현안사업 추진을 위해선 국회 및 중앙부처와 틈틈이 만나고 인맥을 쌓아야 한다. 그쪽에서 우리를 만난다고 시간을 내 줬으니 감사의 의미로 특산품을 선물한 것"이라며 "그래도 예전보다 특산품 선물 관행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그런 걸 아예 안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구태의연하고 시대착오적인 관행' 우려도
이 같은 관행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나온다. 구태의연하고 시대착오적인 관행이라는 이유다. 공정성 및 형평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국가 예산은 사업의 타당성과 효율성, 균형 발전 등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배분돼야 하는데, 선물이 예산 심사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친다면 이는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특산품 구입 등에 쓰이는 비용 역시 결국 지자체 주민들의 세금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예산을 따내기 위해 또 다른 예산을 낭비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 시민들의 생각은 어땠을까. 취재진이 직접 만나본 시민들 사이에도 비판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다.
6일 오전 대구 최대 번화가인 중구 동성로에서 만난 대학생 김정현(23)씨는 "우리나라 공공기관에 그런 관행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며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중앙부처 등에 왜 지자체가 선물 꾸러미를 들고 가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마치 국비를 배분하는 쪽이 '갑'이고 받는 쪽이 '을'처럼 보인다. 지자체들이 예산 확보를 하는 시스템이 너무 시대착오적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역시 동성로에서 만난 시민 채모(68)씨는 "지역의 농민이나 소상공인들을 위해 지자체가 특산품 구입을 한다는 취지도 있을 수 있지만, 그 쓰임이 지역 홍보 등을 위한 것이라면 몰라도 국비나 현안사업 논의를 위한 중앙부처 선물용이라면 다소 부적절해 보인다"라며 "지자체가 예산 확보 등을 위해 부지런히 비즈니스를 하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중앙부처에 특산품 선물하기' 관행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경북대 하혜수 명예교수(행정학부)는 "취지가 어찌 됐든 국민들에겐 소모적이고 불합리한 관행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런 것을 한다고 과연 효과가 있을까"라며 "전국의 지자체가 정책 성과를 담보할 수 있는 차별화된 논리가 부족하다 보니 인맥과 로비력에 의존하는 국비 확보 문화가 생겨났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특산품 선물 등의 행위가 예산 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도 않을 것이고, 각 지자체가 '우리가 국비 확보를 위해 이런 노력까지 했다'는 정도의 자기 위안 수단에 그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 교수는 이어 "매년 국비철마다 지자체가 중앙부처 등을 상대로 읍소하는 것이 당연시돼 왔다. 하지만, 국가 예산 배분은 명확한 기준에 따라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며 "지자체의 힘이 너무 없고, 예산과 권력이 중앙에 모여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예산 체계와 매칭 비율 등에 대한 개선 고민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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