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핵심 산업 TK배터리의 一生 ③] 2차전지 밸류체인의 마지막 퍼즐 ‘배터리 셀(Cell)’

  • 이동현(경제)
  • |
  • 입력 2026-11-07 12:31  |  발행일 2026-11-07
국내 최초 LFP 배터리 완제품 셀 양산 체제 구축 한 대구 기업 ‘럼플리어’의 화성공장 취재기
코팅·압연된 전극 자르고 층층이 포개 전해액 주입…3주간 고온 숙성 거쳐 완제품 셀 탄생
유독 용매 뺀 ‘친환경 수계 공정’으로 원가 20% 절감…중장비·물류로봇 고출력 특화 시장 선점
대구 본사 BMS 개발·화성 공장 생산 ‘투트랙’…2028년 1GWh 기가팩토리 구축 도전
지난달 29일 경기 화성시 럼플리어 공장 2층 조립공정 내 선반에 파우치형 셀들이 투명한 전용 플라스틱 트레이에 담겨 보관돼 있다.

지난달 29일 경기 화성시 럼플리어 공장 2층 조립공정 내 선반에 파우치형 셀들이 투명한 전용 플라스틱 트레이에 담겨 보관돼 있다.

2차전지 생태계의 핵심은 결국 완제품인 배터리 셀(Cell)이다. 양극재 분말이 아무리 뛰어난 성능을 지니고 정밀한 전극 장비가 뒷받침되더라도 이를 하나로 묶어 전기를 저장하고 내뿜는 최종 완제품으로 조립하지 못하면 산업 생태계는 반쪽에 그친다. 대구는 그동안 글로벌 소재 기업과 탄탄한 장비 기업을 보유했지만, 정작 이들을 이어줄 최종 '셀 메이커'가 없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최근 본사를 대구로 이전한 럼플리어는 지역 2차전지 밸류체인의 마지막 퍼즐을 맞출 핵심 주자로 꼽힌다. 국내 최초이자 유일하게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완제품 셀 양산 체제를 구축한 이 기업은 대구·경북 배터리 산업을 완결형 생태계로 이끌고 있다.


럼플리어 프레스 및 슬리팅 설비에서 무광 상태의 전극 원단이 8톤 압력을 거쳐 유광 고밀도 전극으로 압축된 뒤 두 갈래로 정밀하게 절단되고 있다.

럼플리어 프레스 및 슬리팅 설비에서 무광 상태의 전극 원단이 8톤 압력을 거쳐 유광 고밀도 전극으로 압축된 뒤 두 갈래로 정밀하게 절단되고 있다.

◆물 기반 친환경 코팅부터 3주 숙성까지… 3단계로 완성되는 배터리 셀


지난달 29일 찾은 경기 화성의 럼플리어 생산 공장은 분말 형태의 소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실제 에너지를 품은 배터리 셀로 탄생하는지 한눈에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배터리 셀 제조는 크게 전극 공정과 조립 공정 그리고 화성 공정 등 3단계로 나뉜다. 핵심은 각 소재의 비율이다. 배터리 셀의 성능과 수명은 결국 양극재를 구성하는 LFP나 NCM(니켈·코발트·망간)의 정밀한 금속 비율 레시피에 있으며, 이를 최적의 비율로 배합하고 제어하는 기술력이 곧 제조사의 성패를 가르는 셈이다.


공장 1층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거대한 코터(Coater) 설비가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가동되고 있었다. 믹서기에서 LFP 활물질과 접착제 역할을 하는 바인더를 섞어 만든 걸쭉한 슬러리를 알루미늄 호일(양극)과 구리 호일(음극) 위에 얇게 펴 바르는 과정이다. 갓 도포된 촉촉한 수계 슬러리는 150도에 달하는 기다란 건조 터널을 통과하며 수분이 완전히 증발해 바짝 마른 상태로 빠져나왔다.


건조를 마친 전극 원단은 곧바로 롤프레스(Roll Press) 설비로 이동했다. 코팅 직후의 전극은 입자들이 미세하게 떨어져 있어 전자가 이동하지 못하는 부도체 상태다. 여기에 8톤에 달하는 강력한 롤러 압력을 가해 입자들을 빈틈없이 밀착시켜야 비로소 전기가 통하는 고밀도 전극이 된다. 거대한 롤러 사이를 통과하기 전 빛을 반사하지 않던 무광 상태의 검은색 전극 표면은 압연을 거치자마자 매끄러운 유광으로 바뀌며 단단하게 압축됐다. 이어 슬리터(Slitter) 장비가 두루마리 형태의 넓은 전극 원단 한가운데를 정밀하게 갈라 두 갈래로 잘라냈다. 눈에 띄는 점은 이 핵심 장비들 일부가 대구 지역 장비 기업인 에이시스가 제작해 공급했다는 사실이다. 지역 장비 기술력이 완제품 셀 양산 라인의 심장부를 뒷받침하고 있는 셈이다.


조립을 마쳤다고 해서 곧바로 배터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체 셀 제조 공정에서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는 화성(Formation) 공정이 남아 있다. 주입된 전해액이 겹겹이 쌓인 전극 내부 깊숙이 스며들어 리튬 이온이 원활하게 헤엄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일종의 숙성 과정이다. 조립된 셀들은 45도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별도 고온 숙성 창고로 옮겨져 약 3주 동안 보관된다. 이 기다림의 시간과 충·방전 활성화 과정을 모두 견뎌내야 비로소 시장에 출하할 수 있는 완제품 배터리 셀이 탄생한다.


럼플리어 한 직원이 자동화 조립 설비 옆에서 배터리 셀 반제품(파우치형 셀)을 직접 손에 들고 상태를 꼼꼼히 점검하고 있다. 공장 1층에서 압축과 절단 과정을 거친 전극들이 이곳 2층으로 옮겨져 낱장 재단(노칭) 및 적층(스태킹) 단계를 거친 뒤 파우치 외장재에 조립되는 핵심 공정이 이루어진다.

럼플리어 한 직원이 자동화 조립 설비 옆에서 배터리 셀 반제품(파우치형 셀)을 직접 손에 들고 상태를 꼼꼼히 점검하고 있다. 공장 1층에서 압축과 절단 과정을 거친 전극들이 이곳 2층으로 옮겨져 낱장 재단(노칭) 및 적층(스태킹) 단계를 거친 뒤 파우치 외장재에 조립되는 핵심 공정이 이루어진다.

김수진 럼플리어 대표가 1층 전극 공정 라인에서 전극을 고온으로 건조하는 코터(Coater) 설비를 설명하고 있다.

김수진 럼플리어 대표가 1층 전극 공정 라인에서 전극을 고온으로 건조하는 코터(Coater) 설비를 설명하고 있다.

◆대기업 비켜간 '고출력 LFP' 틈새시장 개척한 럼플리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18년간 LFP 배터리를 연구한 김수진 대표는 지난 2019년 럼플리어를 설립하며 소재가 아닌 완제품 셀 제조에 승부수를 던졌다. 국내 배터리 대기업 3사가 전기차용 삼원계(NCM) 배터리 대량 생산에 집중할 때 과감하게 비중국산 LFP 셀 양산이라는 독자 노선을 택했다. 최근 대기업들도 전기차 캐즘을 돌파하기 위해 LFP 라인 전환에 나서고 있지만 럼플리어와는 타깃 시장 자체가 다르다. 대기업이 저전류 기반의 데이터센터용 에너지저장장치(ESS) 대량 생산에 초점을 맞췄다면, 럼플리어는 순간적인 힘과 가속이 필요한 고출력 맞춤형 LFP 시장을 집중 공략한다. 무거운 짐을 들어 올리고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하는 중장비에 일반 저전류 LFP 배터리를 탑재하면 장비가 멈춰 서기 때문이다.


현재 럼플리어는 자율주행 물류로봇(AMR·AGV)용 100암페어(Ah)급 셀부터 전기 지게차·굴착기·농기계·전기버스에 탑재되는 230Ah급 고출력 각형 셀 그리고 데이터센터 및 ESS용 300·314암페어급 대형 셀까지 주력 라인업을 양산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각형 LFP 배터리 KC 인증을 획득했으며 올해 인터배터리 어워즈를 수상하며 기술력을 공인받았다. 이미 외국계 기업의 지게차에 배터리를 납품하고 있으며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국내외 주요 글로벌 기업들과 로봇 및 중장비 배터리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내년 3월 미국에서 양산되는 로봇에도 럼플리어의 배터리가 채택될 예정이다. 나아가 로봇과 도심항공교통(UAM)을 겨냥한 리튬망간인산철(LMFP) 배터리는 물론 국내 최초로 영하 40도의 극한 환경에서도 작동하고 수명이 1만 회에 달하는 160암페어급 '소듐(나트륨)이온 각형 전지' 시제품까지 개발해 성능 평가를 진행 중이다.


럼플리어 경기 화성 공장 전경

럼플리어 경기 화성 공장 전경

◆대구 본사 '두뇌'·화성 공장 '생산'…"지역 공장 증설엔 인재가 관건"


럼플리어는 현재 대구 본사와 화성 생산 공장을 연계한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연간 약 10조 원 규모의 LFP 배터리를 사실상 전량 중국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국내 4천여 개 패커 업체들도 중국산 셀과 부품을 들여와 단순 조립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중국산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을 통한 정보 유출과 원격 전원 제어 등 심각한 안보 문제가 불거지면서 미국과 유럽은 중국산 배터리를 전면 배제하고 나섰다. 이에 럼플리어는 대구 본사에 12명의 전문 인력을 배치해 배터리의 두뇌에 해당하는 BMS 연구개발을 전담시키고 자체 국산화에 성공해 보안 위협을 원천 차단했다.


대구를 본사 거점으로 택한 배경에는 탄탄한 지역 산업 인프라와 지리적 이점도 자리 잡고 있다. 에이시스 등 지역 내 우수한 2차전지 장비 업체들과 즉각적인 기술 협력이 가능할 뿐 아니라 계명대 등 지역 대학과의 산학 협력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올해 100억 원에서 150억 원 수준인 기대 매출을 내년 300억 원으로 끌어올리고 2028년에는 4천억 원 규모의 1기가와트시(GWh)급 기가팩토리를 완공할 계획이다. 기가팩토리 완공과 함께 기업가치 2조 원을 달성해 증시에 상장한다는 로드맵도 세웠다.


다만 화성의 대규모 셀 생산 라인을 본사가 있는 대구로 이식하고 지역 내 대규모 공장 증설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도 명확하다. 전 과정에 석·박사급 인력이 필수적이지만 수도권 이남으로는 첨단 연구 인력들이 내려오려 하지 않아 당장 대구에 대형 공장을 지어도 핵심 브레인을 구하기 어렵다는 현장의 진단이다. 아울러 핵심 공정에 필수적인 물 공급과 안정적인 전력 품질 등에서도 수도권과의 격차가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김수진 럼플리어 대표는 "단순히 지자체가 세금을 깎아주거나 공장 부지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첨단 제조 기업이 지방에 대규모 생산 라인을 짓기 어렵다"며 "지역 내 특성화 고등학교와 지역 대학이 기업과 유기적으로 연계해 현장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맞춤형 기술 인력과 고급 인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주는 고용 생태계가 먼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 내 인재 수급과 산업 인프라 환경이 성숙해지면 본사가 위치한 대구로 생산 거점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사진=이동현기자 shineast@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이동현(경제)

지역 산업 현장을 취재합니다.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경제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