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人 사람속으로…] 대구서 고깃집 사장으로 변신, 천하장사 김정필

  • 입력 2009-08-21   |  발행일 2009-08-21 제38면   |  수정 2009-08-21
"최홍만 보다 먼저 K-1 제의 받았다"
[클로즈업人 사람속으로…] 대구서 고깃집 사장으로 변신, 천하장사 김정필
김정필의 현재모습·영신고 재학시절 모습

"왜 고깃집입니까."

"제가 횟집을 하겠습니까. 생선 들고 있는 것도 좀 그림이 안 되잖아요. 천하장사하면 황소·송아지가 떠오르니까 그래도 고깃집이 저와 매치가 잘 되는 것 같습니다."

1992·1993년 천하장사였던 김정필씨(36)가 고깃집 사장으로 변신해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대구시 수성구 황금동 어린이회관 맞은편 복개도로에 '정현대 영천식육식당'이라는 간판을 내건 것. 그 위에는 '천하장사 김정필 한우고기 파는집'이라는 플래카드도 붙여놓았다.

김씨는 대구가 배출한 유일한 천하장사. 대구에서 태어나 천하장사를 한 선수는 자신 뿐이라고 했다. 선수시절 11년간 천하장사 2번을 비롯해 백두장사 6번, 천하대장사 1번과 설날 장사·해외 장사 등의 번외 장사를 합쳐서 총 15번 장사에 등극했다. 식당 내의 장식장에도 이를 방증하듯 메달과 황금색의 황소 트로피 여러개가 번쩍이고 있었다. 진짜 황금이냐고 물었더니 피식 웃으며 아니란다. 그런데 "황소 안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며 "다음 번에 가게에 오면 그 비밀을 얘기해 주겠다"며 농을 던졌다. 손님들에게도 가끔 그런 농담을 한단다. "천하장사 기운 한번 받아보세요"라며 술을 한잔 따라주기도 한다고.

지난 17일 그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갔다. 김씨는 선수시절 때보다 여윈 듯 했고, 인상은 여전히 푸근했다.

"다이어트 하셨나요" 물었다. 그는 "선수 시절에는 몸무게가 158㎏(키 188㎝)까지 나갔어요. 2003년에 은퇴하고 50㎏정도 뺐어요. 일반 여성 한 사람 몸무게를 뺀 거죠. 밥먹는 양을 줄이고 등산, 웨이트 트레이닝 등 운동을 해서 2년만에 그 정도 뺀 겁니다. 너무 살을 많이 빼니까 당뇨 걸렸다는 소문도 돌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운동을 좀 덜하고 밤에 술도 좀 마시고 하니까 살이 찌더라고요. 지금은 135㎏정도 나갑니다"라고 말했다.

'곰돌이 푸' 같은 그에게 11년간의 씨름 선수 시절 얘기와 1달여간의 고깃집 사장 얘기를 두루두루 들어봤다.


- 씨름과 어떻게 연을 맺게 됐습니까.

"제가 신암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했는데, 인근의 동부초등학교 씨름 감독님이 지나가다가 저를 유심히 보셨나 봐요. 여름방학 때 저희 집에 찾아왔어요. 제가 장남이라 어머니는 공부를 하길 바라셨는데, 그 감독님 덕분에 씨름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거죠. 또래 친구들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커서 축구를 했는데 솔직히 축구는 잘 못했어요. 그런데 씨름을 처음 했을 때는 그 초등학교 선수 1명 빼고는 다 이겼어요. 그 친구들은 1~2년씩 씨름을 한 친구들이었는데 씨름 한번도 안해봤던 제가 이기니까 기분도 좋고 그렇더라고요."


- 1992년 프로씨름 데뷔해서 그해에 바로 천하장사가 되셨어요. 빨리 천하를 호령한 편이네요.

"제 자랑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때 아마추어 선수들 중에는 제가 최고 잘 했어요. 대학에서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는데 1992년 바로 프로선수로 데뷔를 했죠. 프로 데뷔하고는 첫 대회인 설날 경기에서는 2등을 했어요. 그해 3월에는 예선에서 지고, 4월 울산 대회때 백두장사를 했죠. 그리고 9월 첫 천하장사를 했습니다."


- 천하장사가 되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안 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지금은 씨름이 좀 어려워졌지만 제가 씨름할 때는 팀도 8개 정도 있었고, 1등 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1등 해서 좋은 것도 있지만 운동하면서 눈물겹고 어려웠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던 것 같아요."


- 강호동씨와 모래판에서 한판 붙어본 적 있나요.

"호동이 형님과 붙어보고 싶었는데 한번도 경기를 못 해봤어요. 제가 처음 백두장사를 할 때 예선전부터 올라가면 8강의 기둥에 호동이 형님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호동이 형님이 은퇴를 하시더라고요."


- 최홍만 선수나 이태현 선수처럼 격투기 제의는 안 받아보셨나요.

"씨름 선수 중에 제가 제일 먼저 K-1 제의를 받았을 거예요. 최홍만 선수보다 더 일찍 제의를 받았거든요. 한국 천하장사 출신인 저와 일본 스모 챔피언 출신인 아케보노 선수가 대회를 하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격투기는 씨름과는 다르잖아요. 저랑은 안 맞는 것 같아서 거절을 했습니다."


- 가장 기억나는 씨름 경기는요.

"백두장사도 기억이 나지만 처음 천하장사할 때가 제일 기억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꿈이 천하장사였으니까요. 그때 현대중공업의 지현무 선수와 붙어서 이겼어요."


- 절친한 씨름 선수는 누구입니까.

"후배인 이태현 선수와 절친합니다. 전화도 자주 하고 저희 가게도 오고 그럽니다."


- 명절 최고 인기 스포츠였던 민속씨름이 왜 그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씨름인들이 잘못한 게 많겠죠. 씨름이 잘 될 때 더 연구를 했어야 하는데,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제라도 씨름인들이 다함께 힘을 모아서 잘 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겠죠."


- 기술보다는 힘의 씨름이 씨름을 지루하게 했다는 평이 많습니다.

"우리 정서에는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이기면 더 좋아하시니까요. 그런데 지금 이만기 선배님이 나오더라도 안 되실거예요. 이만기 선배님과 이봉걸 선배님은 체중 차이가 30㎏예요. 그때는 힘과 기술을 5대 5로 봤죠. 요즘에는 백두급 중에 몸무게 많이 나가는 선수는 170㎏정도까지 나가거든요. 70㎏ 차이는 힘들어요. 그렇다고 몸무게 제한을 두는 것도 어렵잖아요."


- 1990년대 씨름판을 호령했던 이태현·김경수 선수가 모래판으로 복귀했는데요. 선수 복귀 의향은 없으십니까.

"선수 복귀 의향은 없습니다. 나이가 좀 더 들면 감독이라든지 지도자 쪽으로 갈 생각은 있어요."


- 2003년 은퇴하고 나서는 뭐하셨나요.

"대구보건대 헬스 매니지먼트과에 들어가서 2년간 공부를 했어요. 졸업하고는 대한씨름협회에서 기술위원장직 제의가 와서 그걸 했고요. 선수들이 대회에서 사용한 씨름 기술에 대해 정리를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 5월에 기술위원장직은 내놓고 지금은 대구씨름협회 심판이사직을 맡고 있어요."


1973년 대구에서 태어나 동부초등학교 시절부터 씨름을 시작했다. 영신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92년에는 부산종상호신용금고 소속 프로 씨름 선수로 데뷔했다. 데뷔한 해인 1992년과 1993년(26~27대) 천하장사의 영광을 연거푸 거머쥐었다. 그외 11년간의 선수시절 동안 백두장사 6번, 천하대장사 1번 등 총 15차례 장사에 등극했다. 2003년 은퇴 후 대한씨름협회에서 기술위원장으로 활동한 바 있고, 지난 5월 기술위원장직을 내놓고 현재에는 대구씨름협회 심판이사직을 맡고 있다. 또 지난 7월 정현대 영천식육식당으로 사장으로 변신해 제 2의 인생 출발선 상에 있다.


- 이제 식당 사장으로 새로운 도전장을 내미셨는데요. 손님은 많습니까.

"지난달 7일 가오픈을 했고 지난달 말에 정식 오픈식을 가졌습니다. 가게 계약하고 나니까 이미 이 골목에는 소문이 다 났더라고요. 또 오픈할 때 전단지를 돌렸는데 그거 보고 씨름 좋아하는 어르신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제 생각에는 고기가 좋다고 소문도 조금 난 것 같아요."


- 식당에서 전담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가게에서 서빙도 하고, 고기 자르는 건 배우고 있고요. 덩치가 큰데 계산대에 있기는 좀 그래서…. 연예인들이 하는 식당에 갔던 손님들이 "연예인은 없더라"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그런 말은 듣기 싫어서 저녁에는 꼭 가게에 있는 편입니다. "


- 씨름선수와 고깃집 사장 중 뭐가 더 힘든 것 같습니까.

"고깃집 사장이 더 힘들어요. 씨름은 저 혼자만 열심히 하면 되는데, 식당은 손님들이 모두 취향이 다르니까요. 사람 상대하는 일이 상당히 어렵구나 싶어요. 또 식당 앞에 '천하장사 김정필 한우고기 파는집'이라고 플래카드를 붙여놨잖아요. 식당 이름 앞에 제 타이틀이 붙은 거죠. 전직 천하장사가 식당을 한다니까 처음에는 호기심에 오는 분도 있을 것 아닙니까. '그 집 고기 좋더라'하면 별 문제가 없는데, '그 집 고기 별로더라' 그러면 고기 뿐 아니라 제가 지금까지 운동하면서 쌓아놓았던 이미지까지 깎이게 되는 거니까 저도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이윤을 좀 적게 남기더라도 좋은 고기를 쓰자는 마인드를 갖고 있어요."


- 정현대 영천식육식당을 여셨는데요. 본인의 이름을 안 달고 체인점을 여셨네요.

"정현대씨는 저에게 둘도 없는 형님이에요. 제가 식당 오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조언을 구했죠. 식당 경영·영업 이런 쪽은 잘 모르니까 이 형님 도움을 받기로 한 거죠. 제가 상당히 미식가라 고기 맛있다는 가게에 가서 많이 먹어봤거든요. 그런데 그 형님 가게 고기가 괜찮더라고요. 처음부터 제 이름 걸고 하면 좋겠지만 아직 그럴 능력이 안되니까요. 그 형님과 저, 서로 윈윈하기로 한 거죠."


- 한끼에 고기로 치면 몇 인분까지 먹어봤습니까.

"운동할 때는 삼겹살이나 갈비살을 8인분까지 먹어봤어요. 지금은 많이 먹으면 5인분 정도 아닐까 싶어요. 운동할 때는 성장기고 하니까 많이 먹었죠. 제가 현대중공업 소속일 때 씨름 선수 식대는 2만3천원, 울산 현대 축구 선수 식대는 1만3천원 정도였어요. 축구는 90분 뛰고 씨름은 1분 안에 끝나는 운동인데도 식대가 1만원 가량 차이가 났어요. 씨름 선수단 쪽에 맛있는 음식이 더 많으니까 김병지 선배님도 우리 쪽으로 와서 밥 먹고 그랬어요."


- 결혼도 하셨죠.

"올해로 10년 됐어요. 결혼하고 첫날밤도 못 보냈어요. 1999년에 대회가 11월 말에 있어서 그 다음주인 12월 초에 결혼 날짜를 잡았어요. 그런데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으로 씨름 경기가 2주 연기됐어요. 결혼식 마치고 바로 숙소가서 훈련했죠 뭐."


- 운동한다고 바쁘셨을텐데 연애할 시간도 있으셨나봐요. 아내는 어떻게 만나셨나요.

"아내가 첫사랑이에요. 제가 부산에서 선수하던 시절, 어린이 대공원 근처에 숙소가 있었어요. 주말에는 대공원에서 산책을 했거든요. 지금의 아내와 아내 친구 그리고 아내 친구 남자친구를 공원에서 만났어요. 아내 친구의 남자친구가 제 광팬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아내가 딱 마음에 들더라고요. 우선 그 남자분 연락처를 받은 뒤 연락을 해서는 다 같이 만났죠. 그렇게 친해져서 3년 연애했어요. 3년이라고 하지만 보통 사람 6개월 연애한 것보다 못 만났을 거예요. 대신 전화를 많이 했죠. 전화비가 50만원 정도 나왔으니까요."


- 앞으로 계획은요.

"식당을 오픈했으니까 식당이 잘 되도록 노력을 해야죠. 식당 확장에 대한 꿈도 있고 제 이름을 걸고 체인 식당을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제가 20살 때 첫번째 꿈을 이뤘는데, 사나이로 태어나서 2번, 3번 꿈을 이루면 좋잖아요. 지금부터 고생해서 40대에는 식당 경영인으로서 성공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식당 해서 돈을 많이 벌면 씨름 후원도 할 수 있고요. 씨름계가 잘 되도록 힘쓰는 것도 제 꿈이자 바람이니까요.


- 김정필은?

1973년 대구에서 태어나 동부초등학교 시절부터 씨름을 시작했다. 영신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92년에는 부산종상호신용금고 소속 프로 씨름 선수로 데뷔했다. 데뷔한 해인 1992년과 1993년(26~27대) 천하장사의 영광을 연거푸 거머쥐었다. 그외 11년간의 선수시절 동안 백두장사 6번, 천하대장사 1번 등 총 15차례 장사에 등극했다. 2003년 은퇴 후 대한씨름협회에서 기술위원장으로 활동한 바 있고, 지난 5월 기술위원장직을 내놓고 현재에는 대구씨름협회 심판이사직을 맡고 있다. 또 지난 7월 정현대 영천식육식당으로 사장으로 변신해 제 2의 인생 출발선 상에 있다.

[클로즈업人 사람속으로…] 대구서 고깃집 사장으로 변신, 천하장사 김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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