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모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의 뱀 이야기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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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1-04   |  발행일 2013-01-04 제35면   |  수정 2013-01-04
경문왕의 ‘뱀이불’…개구리 무는 뱀 그림의 항아리…영주 순흥벽화…“신라의 뱀은 적을 퇴치하는 지킴이 역할”
정병모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의 뱀 이야기
영주순흥벽화고분(사적 제313호)의 고깔모자를 쓴 지킴이가 뱀을 들고 뛰어가는 모습.

뱀은 무엇보다 무섭고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동물이다. 그렇지만 뱀은 인간에게 이로운 측면이 더욱 많다. 재생·불사·영생·재물·풍요·다산·지혜 등 여러 측면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다. 모든 사물에는 양면이 있다지만,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뱀의 이면에는 이처럼 많은 소중한 덕목이 있는 것이다.

신라시대 뱀은 지킴이 역할을 했다.

신라가 혼란기에 들어선 48대 경문왕 때 이야기다. 저녁마다 경문왕의 침전에는 무수한 뱀이 몰려들었다. 궁인이 무서워서 이들을 쫓아내려 하자, 왕은 “나는 뱀이 없으면 편안히 자지 못하니 쫓지 말라”고 만류했다. 왕이 잘 때에 뱀들이 혀를 내밀고 왕의 가슴을 덮어주었다고 한다. ‘뱀이불’인 셈이다.

문장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면 유난히 뱀을 좋아했던 왕이라고 새기면 그뿐이지만, 당시 그가 처한 정치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면 뱀을 끌어들여야 할 만큼의 절박함이 읽힌다. 제41대 헌덕왕 때부터 피비린내 나는 왕권다툼이 벌어졌다. 헌덕왕은 애장왕을, 민애왕은 희강왕을, 선무왕은 민애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게다가 측근의 반란이 잦았던 경문왕 때에는 뱀과 같은 지킴이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5세기 신라무덤에서 출토된 토우장식목긴항아리에도 뱀이 등장한다. 개구리 뒷다리를 무는 모습의 뱀이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다. 이 시기 토기에 장식된 토우 여기저기에 보인다. 중요한 상징임에 틀림없는데, 그 해석에 대해선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란 의견이 있고, 수호의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필자는 후자에 더 무게를 두고 이를 설명하려고 한다.

선덕여왕이 영묘사 옥문지(玉門池)에서 우는 개구리들을 보고, 여근곡(女根谷)에 백제 군사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맞혔다. 성난 개구리는 적의 군사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적의 군사를 무는 뱀의 존재는 적을 퇴치하는 수호의 상징인 것이다.

순흥 읍내리에는 드물게 신라시대 벽화가 그려진 고분이 있다. 고깔모자를 쓴 문지기가 양손에 뱀을 들고 뛰어가는 장면이 그려졌다. 고구려고분벽화 가운데 삼실총에서 뱀을 어깨에 두룬 문지기가 연상되는 모습이다. 여기서 뱀은 무덤을 지키는 문지기와 더불어 무덤을 침범하는 이를 퇴치하는 지킴이의 역할을 한다.

고구려의 사신도와 더불어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수호동물은 12지상이다. 왕의 무덤을 두른 병풍석에 십이지상이 새겨진 경우가 많다. 그 가운데 김유신묘의 십이지상 병풍석이 유명하다. 이 무덤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후에 흥무대왕이 된 김유신의 묘라는 의견부터 경덕왕의 능이란 의견, 그리고 누군지는 확실치 않지만 김유신묘는 아니라는 의견이 있다. 누구의 무덤이든 왕릉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12지상은 도복 차림에 얼굴이 동물 형상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뱀상은 12방위 가운데 남남동쪽과 12시 가운데 사(巳)시, 즉오전 9∼11시를 지키고 있다.

신라시대 뱀의 존재는 적을 퇴치하고 무덤을 수호하는 지킴이였다. 물론 뱀의 상징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후대에 여러 의미를 갖게 되었는데, 특히 민간에서는 뱀을 재산을 불리는 데 도움을 주는 신으로 믿어왔다. 나쁜 것을 물리치고 행운을 불러오는 권능을 갖고 있다. 무섭다고 무조건 꺼리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가 뱀인 것이다.

▨정리=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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