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렁이 한마리가 한해 쥐 100마리 잡아먹어 "생태계에도 복덩어리"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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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1-04   |  발행일 2013-01-04 제35면   |  수정 2013-01-04
■ 심재한 한국양서·파충류 생태복원연구소장의 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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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모사의 날카로운 이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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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모사가 경계를 하며 먹잇감을 노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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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이 암컷의 머리 위에 올라가 구애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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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구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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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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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 구렁이의 생식기. 꼬리 부분에 2개가 있다.


◆복을 상징하는 구렁이 이야기

‘밤에 피리나 휘파람을 불면 뱀이 온다’ ‘실뱀 한 마리가 온 바다를 흐리게 한다’는 속담이 있듯 뱀은 혐오의 대상이나 부정적 이미지로 인식된다. 하지만 구렁이로 대표되는 업은 재물과 풍요, 다산의 상징이다.

옛날 합천 땅에 어려서부터 친구로 지내왔던 김 진사와 이 진사가 살고 있었다. 김 진사는 부자였지만 이 진사는 매우 가난했다. 이 진사에게 혼기를 넘긴 아들이 1명 있었으나 가난했기에 혼처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는 이 진사가 김 진사의 집을 찾아가 점심을 얻어먹고 사랑방에서 쉬고 있는데 열입곱살 정도 되는 여종이 물을 길어오는 것을 봤다. 여종이 부엌 쪽으로 문을 열고 가는데 구렁이가 내려와 여종의 목에 감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종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물동이를 내리고는 구렁이를 목에 건 채 밖으로 나와 손으로 내린 후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렴”이라고 했다. 그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구렁이는 슬그머니 목에서 내려와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이 진사는 여종을 며느리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며칠 후 김 진사를 찾아가 여종을 며느리로 삼고자 하니 허락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김 진사는 “아무리 자네가 몰락했기로서니 어떻게 여종을 며느리로 삼을 수 있겠느냐”며 반대했다. 이 진사는 “여종을 며느리로 삼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끈질기게 설득했다. 결국 김 진사는 마지못해 허락하면서 “동네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우리 둘 다 손가락질 당할 것이니 먼 곳으로 이사 가서 사시게” 하면서 혼수비용과 땅마지기를 살만큼 돈을 주었다.

이 진사는 친구의 마음씀씀이에 감복했다. 이 진사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 가서 아들과 여종의 혼례를 올려주었다. 여종이 새 고장으로 이사를 갈 때 구렁이도 따라갔다. 이 구렁이는 여종만 따라다니는 업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마을에 정착한 이 진사는 얼마 되지 않아 친구였던 김 진사보다 더 큰 부자가 되고, 업이 빠져나간 김 진사는 몰락하게 됐다. 그 후 이 진사는 친구가 가난하게 사는 것을 보고 재산의 반을 나눠줬다.

이 설화에서처럼 ‘부잣집 업 나가듯 한다’는 속담은 재물을 늘게 해준 업구렁이가 나간다는 뜻이다. 집안에 업이 나가면 망하고, 업이 들어오면 흥한다.

제주도엔 구렁이 없어
동면하는 곳은 ‘명당’

살모사 적외선 감지력
美, 이라크전 때 응용…
교미시간 평균 6시간


雙頭蛇 가는 방향 달라
雪上蛇 산삼 못 먹어


◆구렁이의 생태

구렁이는 길이 1~2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긴 뱀이다. 주로 민가에서 발견되는데, 정력에 좋다는 속설에 따라 남획으로 그 수가 매년 격감돼 환경부가 멸종위기종 1급으로 보호하고 있다. 크게 황구렁이(Yellow type rat snake)와 먹구렁이(Black type rat snake)로 나뉜다. 구렁이는 독을 지니고 있지 않아 먹잇감을 만나면 먹이를 힘껏 잡아당겨 문 다음 두꺼운 몸통으로 질식사시킨 다음 천천히 목구멍으로 집어넣는다.

식성 조사 결과 월별로 차이는 있으나 포유류, 조류, 양서류 순이다. 5월에는 포유류 47%, 조류 53%였고, 6월은 포유류 83%, 양서류 17%, 7~10월에는 포유류가 100%였다. 먹이의 종류로는 쥐를 비롯한 설치류 86%, 조류 11%, 양서류 3%다. 농사에 해를 주는 참새와 병원성세균인 유행성출혈열을 옮기는 설치류(보통 1년에 1마리가 100마리를 잡아먹음)의 포식자로 생태계균형을 유지하는 이로운 동물이다.

등면은 녹색을 띤 황갈색으로 중앙부분에서 점차 흑갈색의 가로무늬가 발달해 뒤쪽으로 갈수록 뚜렷하다. 색깔의 변이가 심하며 흑색의 가로무늬가 몸통에 25~32개, 꼬리쪽에 8~11개가 있다. 배면은 황색이고 흑색 점무늬가 있다. 등면 중앙의 비늘에는 용골돌기가 발달해있으며, 뒤로 갈수록 차차 없어진다.

구렁이 암컷은 같은 나이의 수컷에 비해 다소 크다. 남부지방에선 4월 하순이면 겨울잠에서 깨어나 활동하며 북쪽으로 갈수록 늦어진다.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시기는 6월이며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겨울잠을 자는 시기는 10월초다. 겨울잠은 집쥐의 집이나 바람이 적고 햇볕이 잘 드는 남쪽으로 향한 돌담, 폐가 혹은 숯가마터 등지에서 잔다. 보통 15℃ 정도가 유지되는 땅속에서 잔다. 야생동물이 집을 짓거나 겨울잠을 자는 장소는 명당이 많다. 산란은 7~8월에 하며 12~25개의 알을 낳는다. 알은 타원형으로 계란보다는 작고, 메추리알보다는 크다. 악어와 같이 부화일수는 40~45일이며 갓 부화된 새끼는 15~20㎝다. 자연상태에서 25℃ 미만이 지속되면 암컷이 많이 나오고, 30℃ 이상 지속되면 수컷이 많이 태어난다.

우리나라에선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중국북부, 러시아 등지에도 있다. 지역에 따라 진대, 흑질백질, 흑지리라고도 한다.

◆살모사 이야기

살모사(殺母蛇)는 한자로 ‘어미를 죽이는 뱀’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없다. 알을 낳는 구렁이와 달리 난태생인 살모사는 몸속에서 알을 부화해 새끼를 낳는다. 새끼를 놓고 지쳐 쓰러져 있는 어미의 모습이 마치 죽은 것과 같아 새끼가 어미를 죽이는 뱀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까치독사라고 불리기도 하며 까치살모사(칠점사), 쇠살모사, 유혈목이(꽃뱀)와 같이 맹독성이 있어 물리면 치명적이다. 살모사의 머리는 삼각형이고 혀는 검은색이다. 머리와 목의 구별이 뚜렷하며, 머리가 훨씬 크다. 모든 살모사류는 눈과 코 사이에 피트기관(Pit organ)이 있어 온도와 적외선을 감지한다. 피트기관에는 0.025㎜의 얇은 막이 있어 최소 0.003℃까지 감지한다. 이 덕택으로 잽싸게 야간사냥도 가능하다. 이라크 전쟁 때 미군이 적외선감지레이더를 이용해 모래 속의 이라크탱크를 감지해 폭파시킨 일은 살모사의 피트기관의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살모사는 독니로 먹잇감을 물어 독을 주입해 신경마비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머리부터 삼킨다. 고산지대보다는 산과 연결돼 있는 밭둑이나 산 입구 가시덤불, 잡초가 무성한 바위근처에서 들쥐와 개구리, 장지뱀류를 잡아먹고 산다. 교미 시기는 8~9월이며, 수정된 알은 겨우내 생식기 안에 보관하고 있다가 이듬해 7월초 6~12마리(난태생)의 새끼를 낳는다. 10월~4월 동면하는데 수컷이 암컷보다 2주 정도 먼저 깨어나 햇볕이 잘 드는 따뜻한 곳에 누워 일광욕을 하면서 체온을 올려 몸속에 있는 정자를 성숙시킨다. 암컷이 나올 것에 대비해 사랑의 워밍업을 하는 것이다. 새끼는 2~3년이면 성체가 되는데 80~90㎝까지 자란다.

번식기가 되면 수컷이 먼저 구애작전을 펼친다. 암수 서로 교신을 하는데 시각, 촉각, 페로몬을 통해 암컷에게 전달한다.

먼저 수컷이 암컷의 몸통을 1초에 1~2회 살짝 날름거린다. 이후 암컷의 턱을 비비거나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면서 적극적으로 머리를 암컷의 머리 위에 붙인다. 이에 화답하듯 암컷은 꼬리를 물결치듯 흔든다. 만약 수컷이 맘에 들지 않으면 거부한다. 구애작전에 실패한 수컷은 가끔 암컷의 목을 물고 강제로 교미를 시도하기도 한다. 교미는 수컷의 꼬리를 암컷의 꼬리 밑으로 넣으면서 반음경을 통해 총배설강에 삽입을 시도한다. 교미시간은 최소 3시간~8시간30분이며 평균 6시간이 걸린다.

수컷은 종종 배우자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 혹은 먹이와 영역을 쟁취하기 위해 싸움을 벌인다. 2마리가 혀를 날름거리면서 물체를 세우듯 몸을 치켜들고 몸통을 흔든다. 종종 2마리의 목, 머리, 몸통이 붙어있어 같은 모양으로 보인다. 이런 행위가 지속되다 서로 공격적으로 목을 아치형으로 만들면서 뒷부분을 밀어낸다. 2마리는 수십분간 목이 얽혀가며 ‘머리 제거하기’공격을 한다. 한쪽의 힘이 빠져 후퇴를 하면 싸움은 종료된다.

살모사는 지방에 따라 까치독사, 살무사, 실망이, 부예기 등으로 불린다.

◆백사·쌍두사·설상사

백사는 백화증(Albinism)에 걸린 개체다. 피부의 색소세포에 멜라닌이 없어 전신 또는 일부가 희게 나타난다. 백화증이 나타나도 눈은 붉은색을 띠는데, 혈액 속 헤모글로빈이 들어있는 적혈구 색소 때문이다. 보통 10만분의 1의 확률로 나타나며, 피부 외에 다른 기관은 정상이다. 백사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데 효험이 있다는 속설은 전혀 근거가 없다.

쌍두사는 머리가 2개 달린 뱀이다. 기원전 350년 문헌에 기록돼 있으며 일본에서는 유혈목이, 살모사, 실뱀 등에 쌍두사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1965년 채집된 쇠살모사 쌍두사, 2000년 채집된 누룩뱀 쌍두사, 2005년 채집된 살모사 쌍두사가 있다. 일란성 쌍생사가 될 알이 발생도중 분리돼 몸통이 하나로 된 기형이다. 서로 가고자 하는 방향이 달라 오래 살지 못하고 죽는다.

설상사는 눈 위를 기어 다니는 뱀이다. 사람들이 산삼을 먹고 몸에 열이 많이 나 겨울잠을 자지 않고 눈 위를 마음대로 기어 다니는 영물로 착각하지만, 뱀은 결코 식물을 먹지 않는다. 이는 동면장소를 잘못 선택해 불편한 뱀이 동면장소를 옮기기 위해 땅속에서 나오다 매서운 날씨와 함께 눈을 맞아 얼어 죽는 불쌍한 뱀일 뿐이다.
▨정리=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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