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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함양 화림동 계곡. 희고 무리지은 너럭바위 저편에 람천정이 서있다. |
지나는 차도 드문 산길에서 선경을 만나면 속도를 줄이고, 다만 스치며, 영상을 새기는 것으로 족하다. 그러나 그 속에 사람의 흔적이 있으면 돌연 용기가 솟아 한번 거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환경과 조건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자연과 조응하고 있는 정자가 그렇다. 정자에는 은신의 안온과, 퇴거의 사념과, 복거의 평안과, 풍류의 흥취가 배어있어, 신선은 될 수 없고 도인되기는 어려워도 마음의 평정은 저절로 얻어진다. 함양의 화림동 계곡이 그러한 곳이다.
◆ 풍류의 장이었던 계곡에 선비길이…
화림동 계곡은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강천이 함양군 서하면과 안의면을 지나면서 만들어낸 골짜기다. 함양과 장수의 경계인 육십령에서부터 산 아래 안의면 소재지까지로 보면 쉽다. 산은 깊고 마을들은 작으며 도로는 한산하다. 계곡은 꽤 넓어 하늘이 깊은데 유난히 흰 화강암 바위들이 곳곳에 누워 기이한 선경을 만든다.
그러한 선경 속에 문득문득 정자들이 나타난다. 정자들 곁에는 살림집이나 식당 등속이 소소하게 군집하고 있다. 이들은 홀린 정신을 깨우는 데 유용하지만 화림동 계곡의 태곳적인 아름다움은 깨지 못한다.
옛날에는 이 계곡에 8개의 정자와 8개의 담이 있어 팔담팔정의 명소로 이름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세 개의 정자만 남아 있다. ‘달을 희롱한다’는 농월정은 2003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정자는 사라졌지만 방대한 너럭바위와 울창한 송림, 움푹한 웅덩이마다 막걸리를 붓고 꽃잎이나 솔잎을 띄워 마셨다는 선비들의 풍취는 남아 여름이면 탁족하며 세월 즐기는 이가 많다.
선비들의 은신처요 풍류놀이의 장이었던 이 계곡에는 정자와 마을을 이은 ‘선비문화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시작은 계곡의 상류인 서하면 봉전마을에 있는 거연정이다. 그 아래에 군자정이 자리하는데, 두 정자 사이의 봉전교를 건너면서 본격적인 선비길이 시작된다. 계곡물 소리를 벗하며 산허리를 걷는 길이다. 때론 흙길이고 때론 나무데크다. 때론 밭을 가로지르고 솔숲을 뚫고 계곡의 징검다리를 건넌다. 이정표처럼 정자들을 만나고, 마을을 지난다. 군데군데에선 최근에 지어진 람천정, 경모정, 영귀정이 옛 명성을 소환한다. 그렇게 농월정 터까지 6㎞가 1구간, 농월정 터에서 안의면의 오리숲까지 4.1㎞가 2구간이다. 걸어도 좋고, 달리다 멈추어도 또한 좋다.
◆ 자연과 하나된 정자, 거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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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화수류천을 내려다보고 있는 거연정 |
계곡은 넓다. 크고 작은 바위들은 희디희다. 정자는 계곡 속으로 걸어 들어가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 섰다. 그러고는 바위를 평평히 고르는 대신 제 다리를 바위에 맞추었다. 한쪽으로 보면, 정자는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여 어쩐지 위태하게 보인다. 또 한쪽으로 보면, 수백년 된 팽나무와 물푸레나무들이 정자를 감싸안아 얼핏 한 덩이의 섬 같기도 하다. 자연과 하나된 정자, 거연정이다.
거연정에 닿으려면 철제 무지개다리인 화림교를 건너야 한다. 다리 아래로는 소와 같은 잔잔한 물이 흐르는데, 옛 사람들은 이 물을 ‘방화수류천’이라 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가는 물인가. 다리 입구에 서있는 비 하나가 정자의 유래를 알려준다. ‘옛 안의현 서쪽 화림동에 새들마을이 있으니 임천이 그윽하고 깊으며 산수가 맑고 아름다운데, 화림재 전공(全公)이 세상이 어지러워 이곳에 은거하였다.’
화림재 전공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전시서 선생을 일컫는다. 1640년경 선생은 서산서원을 짓고 그 곁에 억새를 이어 정자를 지었다. 이후 1868년 서원이 철폐되자 선생의 7대손들이 억새 정자를 허물고 서원의 재목으로 새로이 지은 정자가 거연정이다. 선비들은 이곳에서 건너편 숲에 과녁을 놓고 활쏘기를 했다 한다. 활이 명중하면, 나무 뒤에 숨어있던 하인이 나타나 흰 깃발을 들고 큰 원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 군자를 기려 지은 군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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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두 정여창 선생을 기려 지은 군자정. |
계곡은 꽤 좁아 맞은편 절벽의 층리가 눈에 보일 정도다. 거연정에서 150m 정도 하류에 위치하는데, 계곡의 형상은 차이가 있다. 절벽에 선 나무들은 기이하게도 누군가 시간과 공력을 들여 가꾼 분재처럼 보인다. 약간 정리벽이 있는 꼼꼼하고 꼿꼿한 사람이 좋아할 것 같은 풍경이다. 그런 풍경을 눈앞에 두고 커다란 너럭바위 위에 정자가 있다. 군자정이다.
군자는 성종 때의 학자인 일두 정여창 선생을 뜻한다. 선생은 함양 태생으로 정자가 있는 봉정마을에는 처가가 있었다. 일두 선생은 처가에서 유할 때 이 계곡 가를 거닐곤 했다고 한다. 정자는 1802년 화림재 선생의 5대손이 일두 선생을 기려 세웠다. 지금 정자는 민박을 겸한 음식점의 마당가에 자리해 식당의 부대시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근 부분적으로 보수를 해서인지 그런 느낌이 더 강하다.
◆ 그리고 동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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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의지사 동호 장만리 선생을 기린 동호정 |
계곡은, 오직 거대한 너럭바위가 압도한다. 해를 가릴 정도로 넓은 바위 ‘차일암’이다. 바위에는 노래를 불렀다는 영가대, 악기를 연주했다는 금적암 명문이 새겨져 있어 풍류를 즐기던 열린 무대였음을 말해준다. 물가에는 은빛의 모래밭이 조그맣게 펼쳐져 있다. 군자정에서 2㎞ 아래, 서하면 황산마을은 선조 때 학자인 동호 장만리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그는 관직에서 물러난 후 이 계곡에서 유영하며 때로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선생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선조 임금이 의주로 몽진할 때 임금을 등에 업고 수십리를 달렸다는 인물이다. 평양성의 탈환에도 공을 세운 충의지사로 알려져 있다. 계곡을 바라보며 서있는 동호정은 그의 후손들이 1890년경에 세웠다. 정자는 단청으로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다. 계곡에 낚시하는 사내가 서있다. 예나 지금이나 낚시하기 좋은 곳인가 보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찾아가는 길
대구에서 88고속도로 광주방향으로 가다 거창 IC로 나간다. 거함대로를 따라 절부네거리에서 무주, 함양방향 3번 국도를 타고 계속 간다. 안의면에서 26번 국도 장계, 서상 IC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화림동 계곡(육십령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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