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놀이가 교육이다

  • 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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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05   |  발행일 2020-02-05 제29면   |  수정 20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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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다'는 말은 일이나 공부를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연상한다. 비생산적이고 빈둥거리는 것쯤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린이들에게 놀이는 세상을 배우고 자신의 인지구조를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유아교육에서는 과거부터 놀이를 교육의 중요한 방법으로 여겨왔고, 유아교육이 발전할수록 놀이는 유아교육의 중심 담론이었다. 그러나 유아교육현장에서는 종종 놀이보다는 직접적인 지식을 주입하거나 기능훈련에 관심이 많았다. 한마디로 이론과 실제의 괴리가 있었던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유아의 발달수준을 고려하고, 놀이의 교육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왔지만 지식경쟁의 환경에서 유아기를 놀이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의미 없어 보이거나 남보다 뒤처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염려가 지배했던 것이다. 4차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는 현대사회는 단편적인 지식의 많고 적음으로 사람의 능력이 판단되지 않고 그러한 지식으로 세상을 선도할 수도 없게 됐다. 이미 만들어진 지식을 누가 더 많이 더 빨리 습득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혁신적인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느냐의 문제가 중요해졌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지식의 습득은 수동적이고 무비판적이라면 지식의 창조는 능동적이고 비판적이어야 한다. 또 지식의 습득은 객관적 질서에 순응할 때 유리하지만 지식의 창조는 주관적 도전을 많이 경험해야 한다. 어린이들은 애초부터 탐구자로서 살아가도록 DNA가 맞춰져 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해 호기심이 많고 알고 싶은 것을 기어이 해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존재다. 어린이들은 놀이에서 자기가 해보고 싶은 것이나 알고 싶은 것들을 아무런 실패의 두려움 없이 할 수 있다. 놀이를 통해서 도전을 하고 능력의 한계에 부딪혀 보기도 하고 성공하는 경험을 한다. 놀이는 자유로운 탐구자로서 살아가도록 하는 조건인 셈이다. 만약 어린이들에게 놀이를 빼앗는다면 삶을 빼앗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놀이는 그냥 배회하거나 시간을 낭비하는 비생산적인 일이 아니다. 어린이들은 또래끼리 놀이를 만들고 그 놀이가 잘 작동되도록 규칙을 만들며 서로 협력하고 경쟁도 한다. 어린이의 놀이 속에는 언제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으며, 어른에게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풀어 간다. 놀이는 능동적이며 누구의 간섭을 받으면 놀이가 이어지지 않고 그치고 만다. 어린이들의 놀이 속에는 작은 세상이 펼쳐지며,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배우고, 지혜를 쌓아간다.

유치원에서 교사는 놀이를 설계하고 유아들이 그 놀이에서 교사가 의도하는 교육적 목표를 성취할 수 있도록 관리한다. 교사가 설계한 놀이는 즐거움이 있고 강요하지 않으며 자유가 넘쳐나야 한다. 교사가 설계한 놀이가 너무 정형화되고 엄격하면 유아들이 재미있게 참여할 수 없다. 재미와 자유가 충만한 놀이에는 새로운 지식을 창조할 공간이 만들어지고, 유아들은 생각의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칠 수 있게 된다. 21세기를 살아갈 유아들에게 20세기에 살았던 패러다임을 강요하는 것은 죽은 자의 입김으로 새싹이 움트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유아교육에서 놀이는 4차산업혁명을 이룩하고 새로운 사회의 주인이 될 세대에게 지식을 창조하는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이며, 변화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 안목을 선물하는 것이다.

이인원 (계명문화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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