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규채 경북연구원 사업지원본부장
2025년 APEC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지방 도시 경주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준비 기간을 마쳤다. 이번 회의는 단순한 외교 행사를 넘어 대한민국 지방의 잠재력을 증명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짧은 준비 기간과 낙후된 인프라, 그리고 국정 공백기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정부와 경북도가 긴밀히 힘을 모아 행사를 완성해냈다는 점은, 앞으로 지역이 세계무대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가 되었다.
이번 APEC의 진정한 성과는 시설보다 사람에게서 나왔다. 숙박과 교통, 회의시설이 세계 수준에 맞게 갖춰진 것도 의미 있었지만, 시민들이 스스로 참여해 만들어낸 시민형 국제행사라는 점이 더 큰 울림을 주었다. 황리단길과 보문단지, 불국사 일대는 해외 언론이 명소로 소개할 정도로 활기가 있었고, 시민들의 차량 2부제와 미소, 청결운동은 경주의 품격을 한층 끌어올렸다. 평균 숙박률 95%, 상권 매출 두세 배 증가라는 결과는 도시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경북경제도 이번 APEC을 계기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1천700여 명의 글로벌 CEO와 420개 기업이 참여한 CEO 서밋과 투자박람회는 지역 기업에 큰 기회를 열어주었다. 총 90억 달러 규모의 상담이 진행됐고, NVIDIA와 AWS 등 글로벌 기업이 경북의 기술력과 산업 기반에 주목한 것은 일회성이 아니라 경북이 첨단산업과 디지털 경제의 중심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준 성과이다.
이제 경북은 AI 새마을 프로젝트와 APEC 퓨처스퀘어 구상을 통해 미래 신산업 생태계로의 대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과거 새마을운동이 산업화의 초석이었다면, AI 새마을은 디지털 포용과 기술 격차 해소의 새로운 세계적 플랫폼이 될 것이다. 또한 세계경주포럼과 APEC 문화전당은 문화유산과 첨단기술을 결합해 K-컬처의 세계화를 주도하는 거점으로 발전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과제는 APEC이 남긴 단기적 관광 열기보다는 형성된 글로벌 네트워크와 투자 유치를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로 연결하는 것이다. 지역 기업은 수출 시장을 넓히고 아울러 기술협력과 공급망 참여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규제 개선과 기업 지원, 그리고 대학·연구기관·산업 간의 협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한 축제의 성과를 지역경제의 구조변화로 연결하는 것이 포스트 APEC의 가장 큰 과제이다.
그리고 문화와 산업의 결합도 빼놓을 수 없는 숙제다. 경주의 천년 문화유산은 AI, 메타버스, 콘텐츠 산업과 어우러질 때 새로운 힘을 발휘한다. 경북이 APEC 글로벌 인구협력위원회 등을 통해 저출생 대응과 평화·포용의 아시아 모델을 이끌 잠재력이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신라통일의 역사와 남북평화의 메시지를 잇는 통일평화정원 조성은 미래 세대에게 평화와 상생의 가치를 일깨우는 뜻깊은 출발이 될 것이다.
경북의 APEC 성공은 지방정부가 세계와 직접 연결되는 주체로 설 수 있음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경주는 천년의 역사와 현대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로 다시 태어났고, 시민들의 에너지는 지역 경쟁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방향이다. 글로벌 교류가 일상이 되는 지속가능한 경제·문화의 거점으로 나아가야 한다. APEC을 통해 경북은 더 이상 변방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 경주의 성과를 미래 100년의 성장 동력으로 삼는다면, 진정한 포스트 APEC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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