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맛보다 강렬한 단맛의 유혹…에너지원 쓰이거나 당뇨·비만 일으키는 주범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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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10   |  발행일 2020-04-10 제34면   |  수정 2020-04-10
■ 설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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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조들은 설탕보다 곡물을 당화시켜 만든 조청으로 단맛을 냈다. 지금은 백설탕, 갈색설탕, 흑설탕, 각설탕, 액상당, 파우더슈가, 돌설탕 등 다양한 기능성 설탕 제품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1953년 4월. <주>삼성물산이 제당 사무소를 부산 전포동에 설치한다. 회사 이름은 '제일제당공업주식회사'(현 CJ제일제당).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설탕인 '정백당'을 만든다. 정백당은 사탕수수를 화학적 정제 과정을 통해 순수하게 당 성분만을 남겨놓은 것이다. 설탕을 만들려면 사탕수수에서 채취한 원당이 필요하다. 불순물과 섞여 있는 이 원당을 원심 분리기에 넣고 쌀을 씻듯이 물로 씻어내면 1분에 1천800회 회전해서 불순물이 섞인 물과 설탕 성분을 분리해낸다.


한국 첫 공장형 설탕시대
1960년대 최강 식품…인기 명절 선물
배 아프면 약대신 따뜻한 설탕물 대체
가정용 소형 포장 제품 '백설표' 탄생


1953년 11월5일 한국 첫 설탕이 태어난 날이다. 이날 만든 설탕의 양은 6천300㎏. 당시 수입 설탕 한 근 가격은 300원이지만 제일제당은 100원이었다. 부산에서는 '신일상회', 그 밖의 지역에서는 '동양제당판매회사'가 판매를 담당했다. 55~56년 동양, 삼양, 대한 등 모두 7개 회사가 설탕 생산에 뛰어든다.

60년대 최강 식품 중 하나는 단연 설탕이었다. 1960년대부터는 음식을 만들 때도 설탕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신세계 상업사 박물관에 따르면 당시 인기 있는 명절 선물은 설탕, 밀가루, 쌀, 계란, 돼지고기, 참기름 등 농수산물이었다. 설탕은 특히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에 최고의 선물이었다. 손님이 찾아오면 설탕 단물을 대접하는 경우도 흔했다. 배가 아프면 따뜻한 설탕물을 약 대신 먹기도 했다.

제일제당은 오랫동안 가정용 소형 포장 제품 출시를 결정하고 63년 새로운 상표를 도입하기로 했다. 사내에서 상표명을 공모한 결과, 당시 영업과 여사원 김구혜씨가 응모한 '백설표'가 채택됐다. 백설표는 설탕의 심벌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설탕 저런 설탕
백설탕에 시럽 첨가, 갈색설탕·흑설탕
최초 인공감미료 '사카린' 300배 당도
2016년 꿈의 0 칼로리 '알룰로스' 등장
천연물로 조제한 물엿·메이플 시럽


설탕은 크게 3종류. 설탕 제조 과정에서 가장 먼저 생산되는 건 백설탕이다. 이 백설탕에 추가 공정으로 원당에서 얻은 갈색 시럽을 섞어주면 갈색설탕이 된다. 흑설탕 역시 원당에서 추출한 진한 흑색 시럽을 백설탕에 첨가해 만들어진다. 성분분석표에 보면 백설탕과 갈색설탕은 원재료 함량이 동일하다. 다만 흑설탕은 흑당 성분이 더 추가된 것이다. 황설탕이나 흑설탕이 백설탕에 비해 건강에 좋다는 믿음은 근거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단호히 'NO'라고 답한다.

음식문화평론가 윤덕노는 흑설탕과 흑당의 차이를 알려준다. "흑당은 흑설탕과는 다르다. 원칙적으로 사탕수수즙을 정제해 당밀을 분리하고 원당을 결정화시킨 것이 백설탕이고 당밀이 남아 있고 탈색하지 않은 것이 흑설탕(Brown Sugar)이다. 반면 사탕수수즙을 그대로 졸여 끈적끈적한 덩어리로 만든 게 흑당(Black Sugar)이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설탕도 새로운 기능성 시대를 예고한다.

현재까지 사용되거나 개발된 감미료는 설탕 등 50종류가 넘는다.

고감미료의 대표주자인 '사카린'은 최초의 인공감미료다. 설탕의 300배 당도에 칼로리가 거의 없는 등 감미료로서 특성이 우수했지만 한동안 발암물질이란 오명 때문에 사용이 규제되었다가 최근 발암물질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져 재조명받고 있다. 또 다른 고감미료 '아스파탐'은 1985년 코카콜라와 펩시가 사카린을 대신해 사용하면서 대체감미료의 대표 소재로 급부상했다. '스테비아'는 2008년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으면서 급격히 성장했다.

2016년 꿈의 '0칼로리 설탕'으로 알려진 '알룰로스'가 등장한다. CJ제일제당은 2011년 설탕의 60%가량 당도를 지니면서 체내 당 흡수 저감 기능이 탁월한 자일로스 물질을 활용해 이를 설탕과 일정 비율로 섞은 '백설 자일로스 설탕'을 내놓으며 일찌감치 국내 소비자 대상 대체감미료 시장에 뛰어들었다. 식후 혈당 상승을 억제하는 기능을 지닌 타가토스를 상품화하기도 했다. 타가토스는 우유의 유당에 들어있는 갈락토스를 효소와 반응시켜 만든 반합성감미료이다. 껌 하면 떠오르는 '자일리톨(Xylitol)', 효소 등을 사용하며 과당으로부터 인공적으로 합성한 알룰로스도 반합성 감미료로 분류된다.

이밖에 천연물로부터 조제한 것 중에는 식혜를 가열해 농축시킨 물엿, 단풍나무 수액을 가열 농축한 메이플시럽 등이 있다.


설탕은 유해한가 무해한가
과도한 섭취, 비알코올성 지방간 원인
영양가 없고 칼로리↑ '엠프티 칼로리'
소금보다 맹목적 유해론 반대의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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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학자 기와기타 미노루가 펴낸 '설탕의 세계사'는 약(藥)으로 출발해 현대로 접어들면서 각종 성인병을 일으키는 독(毒)의 상징이 된 설탕의 연대기를 잘 정리해 놓았다.

설탕은 몸속에서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해돼 에너지원인 글리코겐으로 간에 저장된다. 밥의 주성분인 탄수화물 역시 소화가 되면서 포도당으로 분해돼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6년부터 설탕은 '인류의 공적'으로 각인된다. 설탕과의 전면전에 나선 나라는 영국으로 정부와 의회가 이른바 '설탕세'를 도입하기로 한 것. 우리 정부도 이에 자극받아 '설탕과의 전쟁'을 선포, '당류 저감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앞서 그해 4월3일 방송된 'SBS스페셜-당(糖)하고 계십니까' 편에서는 실험을 통해 설탕이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확인했다. 방송에서 전문가들은 과도한 당류 섭취가 비만·당뇨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비(非)알코올성 지방간의 주원인이라고 방송했다. 심지어 미국 설탕 업계가 60년대에 설탕이 심장병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축소하기 위해 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2016년 9월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이 전했다. 2018년 12월 맛 평론가 황교익은 설탕에 대해 오픈 마인드를 가진 음식 사업가 백종원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영국 영양학자 존 유드킨은 1972년 출간한 책 '설탕의 독(Pure, White and Deadly)'에서 "설탕이 비만과 심장병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과학·건강 분야 탐사 전문기자인 게리 타우브스는 10년여의 취재를 거쳐 '설탕을 고발한다'는 책을 출간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 정도 먹어야 몸에 나쁜 정도의 설탕인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그냥 '적당량'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맹목적 설탕 유해론'에 반대의견을 내는 학자도 있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설탕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인식은 일종의 누명"이라고 했다. 그는 설탕의 '반수치사량(半數致死量·LD50)'을 근거로 들었다. 반수치사량은 독성 물질의 특성을 평가하기 위해 용량과 독성 반응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지표로, '일정한 조건에서 실험 동물에게 독성 물질을 투여할 경우 실험동물의 50%가 죽는 양'을 뜻한다. 하 교수는 "설탕의 반수치사량은 29.7g/㎏인 데 반해, 소금의 반수치사량은 3g/㎏"이라면서 "독성으로 따지자면 소금이 설탕보다 몸에 더 나쁜데 사람들은 설탕이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은정 신한대 식품조리과학부 교수는 설탕을 가리켜 '엠프티(Empty) 칼로리'라고 한다. 영양가 없이 칼로리만 높다는 말이다. 그녀는 "음식에 설탕을 쓰는 건 영양 때문이 아니라 맛 때문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취재후기
국내 문제없는 사카린, 해외는 유해
당으로 쇼크사 방지, 중요 에너지원
단 빵과 케이크류·음료 폭발적 소비
과잉 섭취의 문제…건강 위한 절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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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소금' 편처럼 설탕에 대한 전문가의 시각 역시 상충된다. 언론에 유포된 각종 전문가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소금보다 설탕의 경우 무해론보다 유해론이 9대 1 정도 더 강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소금보다 설탕이 우리 몸에 그늘을 드리울 가능성이 더 높다는 사실이다.

짠 것의 유혹보다 단 것의 유혹이 더 강력하다. 예전 불고기의 폭발적 인기도 따지고 보면 소고기 맛보다 인공조미료(MSG)와 손을 잡은 설탕의 위력에서 기인했다.

설탕보다 더 안전하고 후유증이 없는 것으로 홍보된 아스파탐·올리고당 등 대체 감미료에 대한 전문가의 입장도 합의점을 못 보고 있다. 2014년 과학전문지 '네이처(Nature)'는 유해론을 주장했다. 한 해 전 보고서를 낸 유럽식품안전청(EFSA)의 무해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역시 소비자를 엄청 헷갈리게 만들었다. 사카린도 마찬가지. 국내에선 무해 입장이지만 해외 연구결과는 문제 있는 사카린으로 보고 있다.

등산중 '초저당(超低糖)'을 경험해본 사람은 실감하겠지만 당장 사탕·초콜릿 등이라도 섭취하지 않으면 '쇼크사'로 이어질 수 있다. 응급실에 실려 가면 의료진이 포도당액을 주입해 준다. 그처럼 당분은 소금만큼 귀중한 에너지원이다. 소금처럼 설탕도 그 자체만 갖고 유·무해를 논하긴 어려운 것 같다.

현재 우리의 소금 수치는 갈수록 낮아지고 우리의 설탕 치수는 갈수록 치솟는다. 핫플레이스 베이커리카페 테이블마다 산더미처럼 쌓인 다디단 빵과 각종 케이크류. 그게 우리 설탕 문화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다.

갑자기 소금은 현재보다 조금 더 업(UP) 되어도 문제없지만 설탕은 조금 다운(DOWN)시켜주는 게 더 '효능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설탕의 문제도 결국 '과잉 섭취의 문제'다. 과잉은 어떻게 막는가. '포만감 직후 한 점 더', 그걸 포기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어렵다. 건강은 욕망이 아니라 '절제(節制)'의 편이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설탕 섭취를 하루 열량의 10% 이하, 50g 이하로 권고하고 있다. 한 캔의 각종 탄산음료에는 약 20g의 당이 포함돼 있다.

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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