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건강기능식품의 불편한 진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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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12   |  발행일 2020-06-12 제35면   |  수정 20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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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는 건강기능식품에 사면초가 돼 있는 형국이다. 범주는 식품이지만 광고는 의약품처럼 부풀려 홍보되고 있어 식약처의 더 디테일 한 규제와 제재가 필요한 실정이다. 영양제, 비타민제 등 각종 건강식품의 효능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찬반양론이 팽팽해 소비자를 더욱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이젠 약이 생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인명재약(人命在藥)' 세상이 됐다. 1960년대까지 우리의 보약 시장은 한의사와 한약재상의 몫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장표 보약시대

현대인 피로회복 책임 자양강장제 붐
'유산균 발효유=장수' 야쿠르트·우유
비타민제 시장 확장, 치열한 마케팅
소비자 파고드는 유럽발 바이오틱스


그런데 전국이 1일 생활권이 되고 TV가 전국화되기 시작하는 1960년대로 접어들자 판도가 달라진다.

국내 숱한 제약사가 '현대판 보약'을 연이어 출시한다. 63년 동아제약이 만든 박카스D, 67년 동화약품이 내놓은 까스명수, 이후 광동제약의 우황청심원·경옥고·비타500·헛개차, 대웅제약의 우루사 등이 피로회복이란 이름을 단 자양강장제로 국민적 인기를 얻게 된다. 이후 각종 토코페롤(Tocopherol·TCP)도 국민 강장제로 여러 제약사가 론칭을 한다. 72년 '동성 정로환'은 동성제약의 작품으로 가정상비약으로 사랑받는다.

이때 '유산균 발효유' 시대도 열린다. 한국야쿠르트는 프레시 매니저(야쿠르트 아줌마) 방문 판매에 힘입어 71년 국내 최강 유산균 발효유 야쿠르트를 출시한다. 그 야쿠르트의 돌풍에 도전장을 낸 기능성 우유가 있다. 87년 생겨난 국내 최초 저온살균 우유 '파스퇴르 후레쉬 우유'다. 이들 상품 광고에는 세계적 유산균 마을과 장수마을을 소개했다. '유산균=장수'란 등식을 국민에게 심어주었다.

'유산균 불패 시장' 위에서 태어난 게 비타민제 시장이다. 제약사 간 치열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강구한 마케팅전략이 바로 '비타민 마케팅'이다. 83년 경남제약이 출시한 비타민C 알갱이 '레모나'. 한때 이 나라가 '레모나 권하는 사회'라 할 정도로 국내에선 처음으로 비타민 돌풍을 일으킨 브랜드였다. 그 무렵 우리의 가장들은 상당수 술병에 걸려 있고 만성피로에 허덕였다. 그들을 겨냥한 비타민C, 그걸 먹으면 '감기 예방, 피로 회복이 된다'는 믿음은 확대 재생산 됐다.

그 흐름은 지금도 유효하다. 최근 코로나19 사태 때 방탄소년단도 레모나 모델이 돼 '매일 레모나 신드롬'을 일으켜 약사들을 놀라게 했다.

어느덧 기능성 유산균 제품까지 '바이오틱스'란 단어를 달고 소비자를 파고들고 있다. 요즘 웬만한 건강식품은 하나같이 '바이오틱스'란 단어를 무차별 차용한다. 물론 국내 바이오틱스 시장은 덴마크 등 유럽발 바이오틱스 제품에서 기인된다.


코펜하겐 쇼크

50代 이상 2명중 1명 식이보충제 복용
의학계 항산화 비타민 효과 찬반논쟁
사망률 증가 충격적 연구 결과도 발표



2015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을 기준으로 1년 동안 2주 이상 지속해서 식이보충제를 복용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42.5%이다. 50대 이상은 2명 중 1명이 비타민을 복용하고 있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의학 전문가부터 일반 대중까지 비타민을 둘러싼 논쟁이 지속됐지만 건강에 유용하다는 게 상식이었다.

특히 북미·유럽에서 '비타민 보충제'는 대세 그 자체다. 그러나 비타민 A·E, 베타카로틴 등 항산화 비타민 보충제에 수명연장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사망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에 대해 학계도 찬·반으로 쪼개진 분위기다.

그런데 2007년 세계 의학계는 충격에 빠진다.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병원 연구팀이 12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 권위의 의학저널 미국의학협회지(JAMA·1883년 창간)를 통해 비타민의 효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연구 논문(항산화 비타민 보조제와 사망률에 관한 통계적 분석)을 발표한다. 요지는 이렇다. 인체에 유해한 활성산소를 막아주고 신체의 노화를 방지해 준다는 이유로 '생명의 묘약'이라 불렸던 비타민A, 비타민E, 베타카로틴이 건강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사망률을 5% 이상 증가시킨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다. 비타민의 효능에 대한 기존 학설을 정면으로 반박한 이 연구는 놀랄 만한 내용으로 인해 '코펜하겐 쇼크'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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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 전문가는 우리가 평소 접하는 제철 밥상이 가장 이상적인 건강식품이라고 믿는다. 또 어떤 전문가는 우리가 먹는 일반 식품만으로도 비타민 성분을 다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타민C 찬반양론

매일 먹는 과일·채소에 대부분 함유
패혈증 사망률 저하·암환자 회복 도와
A·C·E·셀레늄 함께 복용해야 효과


명승권 국립암센터 교수는 2010년부터 비타민제 등 각종 건강기능식품과 전면전을 벌인다. 그는 "비타민C는 물론 각종 종합 비타민제 등 건강기능식품은 과일·채소류 등을 골고루 섭취한다면 굳이 먹을 필요가 없고 세계 각국의 임상실험 결과를 살펴볼 때도 아무런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고 오히려 부작용 우려만 존재한다"면서 강력하게 사용자제를 주장하고 있다.

유명 방송인으로 성장한 홍혜걸 박사는반대로 임상실험으로 확증된 것은 아니지만 힐링 차원에서 가성비 높은 비타민C는 요긴한 요소가 많아 먹어주는 게 괜찮다고 강조한다. 미국 뉴욕 내과 의사인 장항준씨는 자신의 유튜브 장항준내과TV를 통해 지난해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2014년 9월부터 2017년까지 비타민C 1만4천㎎을 임상실험을 통해 패혈증 환자에게 정맥주사한 결과 사망률 저하 효과가 입증된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는 비타민C에 긍정적 입장을 보이면서 하루 500㎎ 비타민C 복용을 권고하고 있다.

'미스터 비타민C'로 유명한 서울대 의과대 해부학과 이왕재 교수는 수년째 비타민C를 입에 달고 산다. 실제 몸이 불편했던 그의 장인 장모도 비타민C를 통해 큰 효과를 봤고 그때부터 그도 비타민C 예찬론자로 변한다. 그 때문에 여러 의사들이 비타민C를 보조 치료제로 사용하기 시작하고, 2000년대 초부터 국내 비타민C 돌풍에 일조하게 된다.

아주대의료원 가정의학과교실 김범택 교수는 "비타민은 한 가지만 단독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면서 "예를 들어 비타민A·C·E·셀레늄 등은 같이 섭취해야만 몸의 산화스트레스를 분산시키고 줄여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왕재 교수는 비타민C 하나만 집중적으로 먹는데도 건강한 걸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대한비타민연구회 측은 "사람들이 병원에 와서 검사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처방 받으면 되는데, 다단계 회사나 약국에서 그냥 무분별하게 사 먹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라며 "결국은 병원에 와서 의사가 보고 처방하고 필요한 비타민을 섭취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이춘호 음식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기자의 생각은…

"제철 담은 밥상 골고루 먹는 게 이상적 건강법"


사람이란 너나 없이 누구 말에 잘 혹하는 '팔랑귀'를 갖고 있다. 건강식품도 팔랑귀 때문에 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식품일수록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 약품은 단숨에 승부가 드러난다. 하지만 건강식품은 섭취 후 자신의 건강 상태를 제대로 확인할 방도가 별로 없다. 그냥 좋아진 것 같다는 심리적 상태, 기분과 느낌, 그게 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 건강식품 광고는 상당히 공격적이고 단정적이다. 극도의 과장법 때문이다. 완전 의약품 광고를 방불케 한다.

현재 우리는 건강식품에 갇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제는 이 제품, 내일은 저 제품, 꿈의 식품은 매순간 표변한다. 그런 제품일수록 판매과정의 철저함보다 팔려고 하는 판매원의 상술이 품질보다 몇 수 위라는 걸 일상에서 잘 목격된다.

한쪽은 절대적으로 먹어줘야 한다. 또 다른 쪽에선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는 건강식품을 굳이 먹을 필요가 없다고 맞선다. 전문가조차 의견이 갈리니 솔직히 일반인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난감하다.

업자들은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먹어야 되는 게 건강식품이란 논리를 위해 조그마한 유관 학술논문이라도 있으면 다 마케팅 차원에서 마구 긁어모은다. 그건 실험실에서 동물을 상대로 한 실험이 대부분이다.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된 임상실험, 그 윗 단계인 메타분석에 의한 게 아니라 판단보류 정보랄 수밖에 없다.

건강의 출발은 모르긴 해도 건강식품 이전에 제대로 된 식품일 것 같다. 제철 음식을 골고루 먹어주고 단연과 절주, 그리고 적당한 운동, 이 정도의 조건만 갖춰져도 환상적이다. 그 어떤 건강식품보다 더 유리한 조건을 갖게 될 것 같다. 식품 그 자체는 건강의 필수조건이다. 그런데 더 좋은 건강식품이라는 건? 그건 마치 특정 종교를 두고 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 종교라고 고집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신의 한 수는 우리가 평소 접하는 제철 밥상이 아닐까 싶다. 배고플 때 '식사'를 하면 금세 힘이 솟구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린 그 식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가끔 극지의 원주민의 삶을 생각해 본다. 극지는 식품 사각지대다. 식물군은 전멸이고 탄수화물도 기대할 것도 없고 선택의 여지 없이 고래, 물개, 물범 등을 잡아 연명한다. 필수영양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라서 요절할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그들 나름대로 잘 연명해 간다. 인간의 몸속엔 그 몸만이 아는 시크릿코드가 장착돼 있을 것 같다. 그걸 의사라고 알 수 있을까. 전체 흐름과 개인적 상황은 천양지차일 수 있다. 양심적 의학자와 정부가 손을 잡고 그 틈을 좁히는 게 '의료 민주화'다.

결국 건강식품은 건강을 위한 하나의 필요한 조건일 정도이지 업자들이 홍보하는 것처럼 필요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물론 본인이 먹어 효과가 있다고 한다면 그건 그에 한해선 분명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 먹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건 엄청난 비약이다. 그 효과가 다른 사람에겐 전혀 다른 모양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걸 모두 인정해야 된다.

이춘호 음식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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