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박범계의 新지역주의…"이상한 억양"은 대구경북 억양?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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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03   |  발행일 2020-08-03 제26면   |  수정 2020-08-03
야당엔 이상한 억양 안쓰는
사람이 오히려 더 귀하다는
여당 중진의원의 가벼운 입
지역구도 극복을 외치더니
새로운 기득권 만들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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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본부장

지금 대한민국 사회엔 주류 교체가 시도되고 있다. 이를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민심에 따라 나라를 이끄는 세력이 뒤바뀌는 건 당연하다. 그게 민주주의 원리다. 다만 민심에 의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광풍(狂風)을 일으키는 방식으론 결코 주류 교체를 완성할 수 없다. 언제든 여론의 역풍에 직면할 수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주류 교체의 대상이 된 한동훈 검사장의 말대로 지금 대한민국엔 광풍이 분다.

집권세력이 광풍을 일으킨 목적은 주류 교체다. 구(舊)주류를 '적폐'로 몰아붙여 고사시키고, '촛불' 세력을 자처한 자들이 신(新)주류로 자리 잡기 위해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반칙과 특권이 드러났음에도 문재인 대통령부터 나서서 보호막을 친 건 이미 신주류가 지켜야 할 기득권이 생겼기 때문이다. 윤미향·박원순 사태에 침묵하는 건 진보성향의 시민사회단체도 신주류의 든든한 외곽세력인 까닭이다.

그러다 보니 정의와 공정이 아닌 피아 식별이 가치 판단 기준이 돼버렸다. 정권이 급할 때마다 왜 국민을 갈라치기 하는 지도 알 것 같다. 그 와중에 주류 교체는 모든 분야와 계층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우파→좌파, 산업화세대→민주화세대, 사용자→노동자…, 심지어 부동산 대란을 해결한다며 개정한 임대차법에 의해 집을 가진 자에서 세를 사는 자에게로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다.

주류가 뒤바뀌는 현상을 뚜렷하게 체감할 수 있는 건 사회 지도층의 출신 지역 역전이다. 권력 주변뿐 아니라 관계·재계·학계·사회문화계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 해당한다. 특히 산업화 세대의 상징인 영남이 물러나고, 그 자리를 호남이 차지하고 있다는 통계분석은 문재인정부 들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런 분위기 탓에 중앙공무원 사회의 대표적인 대구경북 출신 향우모임의 회원들도 지금은 연락을 끊고 산다.

대한민국 사회의 주류 지역이 언제나 영남일 순 없다. 시대 상황에 따라 호남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적도 있었다. 이 역시 인위적으로 광풍을 일으키는 방식으론 언제든 역풍을 맞는다. 특정 지역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지역주의를 깨뜨려 고질병인 지역구도를 극복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지역구도 극복은커녕 정치적 목적에 따라 신(新)지역주의를 조장하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중진 국회의원 박범계는 미래통합당 윤희숙 의원의 부동산 관련 국회 연설이 호평을 받자 SNS에 이렇게 썼다. "언론의 극찬? 일단, 의사당에서 조리있게 말을 하는 건 눈 부라리지 않고 이상한 억양이 아닌… 그쪽에서 귀한 사례니 평가한다"라고 했다. 통합당 안의 다수인 영남 사람들의 말투를 '이상한'이라고 조롱한 말이다. 박범계 혼자만이 아니라 집권 세력에 널리 퍼져 있는 비뚤어진 인식일 거다.

문 대통령도 박범계의 기준으로 아직도 '이상한 억양'을 쓴다. 부산과 대구에서 고교를 다닌 조국과 유시민도 서울살이 처음엔 '이상한 억양'을 쓰다가 일부러 꾸준히 연습해서인지 '덜 이상한 억양'이 된 것 같다. 신지역주의에선 '이상한 억양'도 자기편은 괜찮고 상대방은 비아냥 거리가 되는 걸까. 아니면 충청 출신 박범계의 귀엔 집권자 고향인 PK 억양은 듣기 좋고, 야당 일색인 TK 억양은 거슬리는 걸까. 정치인의 자질과 양식을 의심케 하는, 광풍에 편승한 가벼운 입이다.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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