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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한국외대교수/국제지역연구센터장/HK+국가전략사업단장 |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이 여전히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 바이러스는 인류 건강에 대한 직접 위협은 물론 각국의 정치적 부담과 경제 마비, 사회적 불평등까지 야기하고 있다.
특히 G2로 불리는 미·중 양국마저 자국 이기주의에 빠졌고, 각국은 각자도생(各自圖生) 을 선택해 국제정세까지 흔들고 있다. 여전히 기 싸움을 벌이는 미·중 관계는 이제 전략경쟁을 넘어 전략대항 색채를 띤 신냉전(新冷戰/New Cold War)으로 접어든 게 분명해 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미·중이 그나마 유지해왔던 제한적 공존의 구조적 한계를 현실적 충돌로 비화시켰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말, 양국 관계를 본격적인 '새로운 경쟁 시대'의 진입으로 규정하고,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에 서구의 보편가치를 이식해 중국을 미국 중심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키겠다는 미국의 희망은 이제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앞세워 중국을 도전자의 반열에서 탈락시키겠다는 전제 하에 관세전쟁을 시작했다.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붕괴, 기술패권 경쟁, 환율·금융 압박, 이념과 보편 가치 및 군사문제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연결하는 거대 담론으로 중국을 압박했다.
지난 4년에 걸쳐 트럼프 행정부가 거의 독자적으로 진행한 대중 정책은 중국을 억제하지 못하면 미국의 지위가 위협받고 궁극적으로는 세계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에 맞선 중국도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 특히 트럼프가 지적하는 '중국 코로나 책임론'을 강력 비판하면서 9월 8일 코로나 종식을 선언했다. 특히 32개국에 의료 전문가를 파견하고, 150개국에 의료 물품을 지원했음을 내세우면서 '대국으로서의 책임감'과 '국제적 헌신'을 강조했다.
전 세계가 여전히 코로나19 고통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뜬금없는 '나 홀로 축제'에 다름 아니지만, 이는 중국 사회주의의 체제적 자신감과 미국의 방역 실패를 우회적으로 강조하는 목적도 있다.
국내 정치적 정당성을 정치적 억압과 민족주의, 경제적 성과에 기대고 있는 시진핑 주석은 코로나19 중국 발원론과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위한 프레임 전환에 나서 국제적 영향력 확대 및 대미 주도권 확보에 반전을 꾀하고 있다.
중국 주도의 '보건 실크로드'와 '디지털 실크로드'라는 중국식(中國方案) 다자협력 플랫폼으로 미국에 대항하겠다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미국을 대신하는 초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하는 중이다.
이미 국제무대의 중심국가로 성장한 중국은 당초 미국이 구상한 '미국 주도 질서 내의 중국' 범위를 초월했고 양국 관계는 불가피하게 새로운 경쟁 시대로 접어들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전 세계 주요국 중 유일하게 경제적 반전에 성공한 중국은 '사회주의식 경제발전'에 대한 자신감을 근거로 미국식 보호무역주의에 맞서 개방과 자유무역주의를 지켜내겠다는 의지까지 천명하고 있다.
여세를 몰아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백신 공공재화 사업인 코백스(COVAX) 참여를 공식 선언함으로써 미국 등 선진국과의 차별성도 과시했다.
그러나 이제 중국은 바이든 이라는 새로운 미국 대통령을 상대해야 한다. 바이든 당선인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비판적이지만 이는 트럼프의 정제되지 않은 거친 방식에 대한 비판으로 중국에 대한 견제나 압박 자체를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대중 압박을 완화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트럼프가 부과한 대중 관세를 당분간 철회할 뜻이 없음을 밝힌 데서도 잘 나타난다. 오히려 미국 내 제조업을 더 튼튼히 하기 위해 중국 등 해외로 이전하는 기업에 높은 법인세를 물리겠다는 정책까지 내놓고 있다.
미국과 동맹국이 환경·노동·무역·기술 및 투명성 관련 규칙을 제정할 것임을 밝히면서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를 묵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계속 강조하는 중이다.
물론 환경이나 질병 등 인류 공동의 문제에서는 협력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트럼프에 의해 소외됐던 동맹국들과 함께 중국에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의 지위를 찾는 게 목표다.
이러한 양국의 국제 주도권 경쟁은 코로나19의 만연으로 증폭되었고, 결국 안보와 통상 등 다른 분야로 번져 국제질서 재편과 관련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안보 측면에서 미국은 올 8월,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일본-호주-인도를 연결하는 비공식 안보회의체인 쿼드(Quad)를 출범시켰고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위한 경제번영 네트워크(EPN) 결성을 도모하고 있다.
중국 역시 자국을 견제하는 통상 조직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맞서 지난 11월 15일 세계최대의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타결시켰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구축해 놓은 대중 압박 정책을 기준점으로 삼으면 된다. 결국 동아시아 지역을 둘러싼 지역구도 재편과 관련 힘겨루기는 계속될 것이며 기술경쟁에서는 미국 첨단기술을 유출을 방어하는 차원에서 '탈 동조화'(decoupling)가 불가피할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미국으로부터 한미동맹 강화와 쿼드 참여 러브콜을 받고 있지만 중국은 쿼드는 아시아판 나토(NATO) 라며 우리에게 더 이상 미국으로 경사하지 말라는 시그널을 보내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일단 한국의 국익을 분명히 하면서 안보나 통상 분야에서는 선택을 강요하는 양국을 설득해야 한다. 동시에 코로나 방역과 정상적 일상생활을 조화시킨 한국형 모델을 근거로 동아시아 방역협력체 구축 등에 나서는 등 적극적으로 소프트 파워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강준영(한국외대교수/국제지역연구센터장/HK+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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