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 떠나 강릉에 새 둥지 튼 '팀 킴'…"베이징올림픽 티켓 따러 갑니다"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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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26   |  발행일 2021-03-26 제35면   |  수정 202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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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평창동계올림픽 은메달 신화를 쓴 여자컬링 '팀 킴'이 지난 9일 강원도 강릉컬링장에서 훈련을 시작하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2월26일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경북체육회 컬링팀으로 구성된 한국 컬링 여자대표팀은 한국 컬링 사상 첫 올림픽 은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2017년 대표선발전에서 태극마크와 올림픽행 티켓을 처음 따낸 경북체육회 소속 여자컬링 대표팀이 한 차례 도전 만에 올림픽 메달 획득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예선전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의성여고 출신인 김은정·김영미·김선영·김경애 선수 등으로 구성된 여자대표팀의 활약으로 한국 컬링의 뿌리로 알려진 의성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난 지금, 이들은 경북체육회를 떠나 강릉시청에 둥지를 틀었다. 우리나라 컬링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던 의성군의 위상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의성컬링과 연계해 경북 북부권을 동계스포츠의 메카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한 경북도의 계획은 무산됐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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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평창동계올림픽 은메달 신화를 쓴 여자컬링 '팀 킴'이 지난 9일 강원도 강릉컬링장에서 훈련 모습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컬링 가능성 본 의성군
2001년 경북도 男컬링팀 창단
2년 만에 아시안게임 金 성과
경북도·의성군, 컬링장 건립
방과후활동으로 유망주 키워
의성여고 주축 女컬링팀 창설


◆방과후 활동으로 컬링 시작

영남일보에 따르면 경북체육회는 2001년 1월 준실업팀 성격의 '경북도청 남자컬링팀'을 창단해 동계체전을 준비했다. 하지만 컬링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특별히 해줄 수 있는 지원책이 없었다. 소액의 훈련비 정도만 챙겨줄 수 있었다. 훈련시설은 더욱 열악했다. 대구실내빙상장에서 스케이트 훈련이 끝나는 밤 10시쯤부터 선수들이 직접 하우스 등을 가설했고 새벽 1~2시부터 겨우 연습을 진행할 수 있었다. 경북은 컬링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2001년 동계체전에서 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다. 국내에서 절정의 기량을 뽐낸 경북도청 남자컬링팀은 2003년 일을 내고 말았다.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한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것이다. 컬링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지 10년도 되지 않아 일궈낸 성과다. 이는 컬링이 한국인들에게 통한다는 것을 증명한 계기가 됐고 동시에 투자 기회를 열어주는 촉발제가 됐다. 당시 이의근 경북도지사와 정해걸 의성군수는 컬링의 성장 가능성을 알아채고 의성에 관중을 대거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컬링장을 짓기로 했다.

2006년 컬링장이 완공되자 경북체육회는 의성여고에 방과후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해보라고 건의했다.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종목이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어 학습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로 설득해 의성여고에서 방과후활동 컬링부를 만들 수 있었다. 흥미를 가졌던 김은정과 김영미가 이때부터 컬링을 시작했다. 김영미의 동생 김경애가 언니를 따라 컬링을 시작했고, 김경애의 친구 김선영이 합류했다. 갓 운동을 시작한 학생들이었지만 국제 수준의 컬링장이 지역에 있는 덕분인지는 몰라도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게다가 2007년에는 '경북체육회 남자컬링팀'이 실업팀으로 정식 창단됐고, 실업팀 선수와 함께 연습을 하다보니 학생들의 기량이 부쩍 올라갔고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하는 등 조금씩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경북체육회는 의성여고 학생들을 연계육성하기 위해 2010년에 여자부 컬링팀을 창설했다. 김은정·김영미가 창단 멤버이며 2년 뒤 김경애·김선영이 합류했다.

경북체육회 여자컬링팀은 2012년부터 국내 최정상팀으로 떠올랐다. 그래서 4년 전 소치 동계올림픽 때 무난히 대표로 선발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대표선발전에서 어이없는 패배를 당하며 티켓을 날려버렸다. 심기일전했다. 곧바로 국내에서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하기로 했다. 일단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우수한 기량을 가진 세계적 선수들이 참가하는 것은 물론 대회가 1년 내내 열리는 캐나다·스웨덴 등지로 투어를 떠났다. 이를 통해 세계적 수준의 팀들과 수차례 대적할 수 있었다. 여자대표팀에 '팀 킴(Team Kim)'이라는 별칭이 생긴 게 이때쯤이다. 2016년부터 세계컬링선수권대회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했고 결국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여자 대표팀은 자국에서 올림픽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본적으로 얻을 수 있는 '홈 이점'을 거의 살리지 못했다. 강릉컬링센터가 부실시공으로 인해 준공시기가 늦어졌고 이 때문에 올림픽 컬링 경기가 열리는 강릉컬링센터에서는 9차례밖에 훈련을 하지 못했다. 스켈레톤의 윤성빈이 평창올림픽 슬라이딩센터에서 2016년부터 올림픽 직전까지 400회 가까이 주행연습을 한 것과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모습이다. 대한컬링경기연맹의 행정적 지원도 불만족스러웠다. 컬링팀은 올림픽 전에 연맹 측의 요구에 따라 태릉선수촌에 입소했지만 선수촌 내 컬링장은 훈련이 불가능했다. 연맹이 이천컬링장을 섭외해줬지만 이곳의 빙질도 훈련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대표팀은 연맹 측에 국내에서의 테스트 이벤트를 요구했지만 이 역시 묵살됐다. 여자대표팀은 실전 감각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올림픽을 앞두고 캐나다 등지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는 모험을 감행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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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아시아 컬링 최초로 동계올림픽 은메달의 새로운 역사를 쓴 한국 여자대표팀이 시상식에서 환호하는 관중에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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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결승전 경기가 열린 2018년 2월 의성체육관에 모인 주민들이 국가대표팀의 승리를 기원하며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영남일보 DB〉


평창올림픽 은메달 신화
女컬링 2년 만에 국내 최정상
글로벌 투어하며 '팀 킴' 별명
평창서 세계 1·2위 꺾고 은메달
인구 5만 소도시서 판 뒤집어

◆올림픽에서 파란…그러나 메울 수 없는 갈등의 골

드디어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렸다. 세계랭킹 8위의 여자컬링 대표팀 팀킴은 예선 첫 경기에서 세계랭킹 1위인 캐나다를 만났음에도 주눅들지 않은 플레이를 펼치며 승리를 거뒀다. 다음 경기에서 쉬운 상대로 여겼던 일본에 일격을 당하며 역전패했다. 팀킴에 약이 됐다. 팀킴은 이후부터 세계랭킹 2위 스위스와 2017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팀 중국(세계랭킹 10위), 세계랭킹 4위이자 컬링종주국 영국, 세계랭킹 5위 스웨덴을 잇따라 꺾으며 9승1패의 전적으로 8강전에 진출했다. 8강·4강전에서도 강호들을 잇따라 꺾으며 결승에 진출했지만 스웨덴에 무릎을 꿇고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팀킴은 국민 관심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올림픽 폐막 이후에도 그들의 인기는 한동안 이어졌다. 인구가 5만명에 불과한 소도시 의성에서 나고 자란 소녀들이 전 세계를 발칵 뒤집자 지역민의 자긍심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2018년 중후반부터 팀킴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올림픽 직후 3월 열린 세계여자컬링선수권대회에서 5위로 마감했다. 8월에는 국가대표 선발전 결승에서 춘천시청(스킵 김민지)에 10-3으로 패하며 중국 컬링월드컵 티켓을 내줬다.

팀킴의 부진 배경에는 경북 컬링의 대부 김경두 전 대한컬링연맹 부회장, 코치진과의 갈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팀킴 5명은 2018년 11월6일 부당한 처우를 당해 고통받고 있다는 A4 용지 13장 분량의 호소문을 대한체육회 앞으로 보냈다. 국가대표 선발전 패배의 충격 뒤 약 두 달 만에 나온 호소문이었다.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과 김민정·장반석 감독(부부)이 언제부터인가 사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우리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저희들은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김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은 아무도 컬링에 대해 알지 못했던 2001년 경북체육회 컬링팀을 창단했고 2006년 국내 최초의 국제 규격 컬링 경기장인 경북컬링훈련원(의성) 건립을 주도했다. 한국 컬링의 사상 첫 은메달에 대한 큰 공로를 인정받던 때라 충격도 더욱 컸다. 팀킴은 호소문을 통해 김 전 부회장이 올림픽 전후로 선수들에게 폭언·훈련 방해·사생활 통제를 자행했고 선수들이 딴 국제대회 상금을 한 번도 배분해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김 전 부회장이 자신의 딸인 김민정 전 대표팀 감독을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시키려고 후보 선수 김초희를 엔트리에서 제외하려 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그해 12월 김 전 부회장은 가족과 함께 컬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9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국가대표 호소문 계기 특정 감사' 결과 발표를 통해 팀킴의 호소문이 대부분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팀킴은 2년 가까이 컬링에 전념하지 못했다. 문체부 특정 감사에 여러 차례 출석하는 등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게다가 2019년 주장 김은정의 출산 등으로 인해 팀을 꾸리기가 어려워지면서 2018~2019년에는 춘천시청, 2019~2020년에는 경기도청에 국가대표 자리를 내줬다. 팀킴은 지난해 2월이 돼서야 코리아 컬링리그 초대챔피언에 오르며 상승세를 탔다. 11월에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한 한국컬링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3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고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따낼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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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19일 문화체육관광부·경북도·대한체육회 세 기관의 합동감사반이 경북도체육회 컬링팀에 대한 특별감사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 〈영남일보 DB〉


선수와 지도부의 갈등
"폭언·훈련방해·상금독식…"
팀 킴, 연맹부회장·코치 폭로
문체부 감사 결과 사실로…
3년 만에 태극마크 달았지만
경북체육회와 재계약 무산


◆고향 떠나는 팀킴·무너져 버린 경북도와 의성군의 꿈

하지만 악재는 이어졌다. 대한컬링경기연맹이 회장 선거를 둘러싸고 파행을 겪고 있어서 국가대표 지원 업무도 마비됐다. 이 때문에 팀킴은 빙상 훈련 장소를 제대로 구하지 못한 채 웨이트 등 육상 훈련 중심의 개인 훈련에 의존했다. 팀킴은 지난해 말 경북체육회와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소속팀이 없는 '무적' 신세가 됐다. 팀킴은 성적 등을 근거로 연봉 인상을 요구했고 경북체육회는 예산타령만 하며 연봉 동결 수준을 제안했다. 결국 협상은 결렬됐고 소속팀 차원의 훈련 지원이 끊겼다. 이들의 이적에는 소속팀 감독과 선배의 상습 폭행 탓에 세상을 떠난 최숙현 선수의 사망 사건에 대한 경북체육회의 미온적인 태도도 한몫했다. 팀킴은 성적만 중시하면서 선수들 간 경쟁을 심화시키는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제2, 제3의 최숙현 선수'가 얼마든지 또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릉에서 새로운 출발
팀 킴에 아낌없는 지원 약속
이달 초 강릉시청으로 이적
4월 세계선수권 준비 구슬땀
"새 출발…올림픽 출전 목표"


3개월여 소속팀이 없었던 팀킴은 지난 4일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한 강릉시청으로 이적했다. 이들은 훈련에 집중하며 오는 4월 캐나다에서 펼쳐지는 여자컬링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대회에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티켓이 걸려 있는 만큼 각오가 남다르다. 강릉시청 입단 기자회견 당시 스킵 김은정은 "강릉컬링센터에서 다시 훈련을 하게 돼 새로운 시작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컬링장에 들어올 때마다 예전 평창올림픽 때의 기억이 나고 훈련을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 세계선수권에서 티켓을 획득해 온다면 베이징 올림픽을 목표로 열심히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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