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피플] "생계 문제로 무용가들 너도나도 성급하게 교수나 안무가 되려 해" 김기전의 일침

  •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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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01 07:50  |  수정 2021-09-01 11:01  |  발행일 2021-09-01 제13면
대구시립무용단 초대 안무자로 '창단40년' 회고
"정작 무대서 춤출 무용가는 줄어 기형적 구조...
공연 보면 서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데
대구시만 몰라...타 시도 비해 예산 태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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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구시립무용단이 창단 40주년을 맞았다. 초대 안무자였던 김기전 선생은 "대구시립무용단은 서울 등 전국 어느 무용단과 견줘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며 대구시의 전폭적인 지원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대구시립무용단을 넘어서 대구 현대무용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김기전(85) 대구시립무용단 초대 안무자다. 대구는 1930년대 김상규(1922~1989)를 통해 현대무용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김상규가 뿌려놓은 씨앗을 싹틔워 꽃 피우게 한 인물이 김기전 선생이다. 1981년에는 그가 주도돼 국내 유일의 시립 현대무용단을 창단,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국공립 현대무용단은 아직도 대구시립무용단과 2010년 창단된 국립 현대무용단밖에 없다. 대구시립무용단은 김 선생을 시작으로 구본숙·안은미·최두혁·박현옥·홍승엽 안무가에 이어 현재 7대 안무가인 김성용까지 국내 우수한 안무가들과 함께 지역 무용 발전에 이바지해왔다. 그리고 올해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눈부시게 발전해온 대구시립무용단과 지역 무용계를 보면서 김 선생은 큰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안타까움도 있다. 점점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무용 인재로 인해 지역 무용계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1981년에 창단된 국내 最古 국공립 현대무용단
시대와 호흡하며 대구무용 저력 국내외 보여줘
시립무용단 年예산 타시도에 비해 턱없이 적어
생계 때문에 전문 무용가 갈수록 줄어 안타까워
국채보상운동 소재 작품 지역 순회공연 추진 중


▶대구시립무용단이 한국 현대무용계에서 가지는 의미는.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의 국공립 현대무용단이라는 것이다. 대구시립무용단의 창단은 대구 무용계의 큰 수확이다. 당시에는 대구를 제외한 지역의 국공립 무용단 대부분이 한국무용 단체였다. 대구시립무용단이 현대무용 단체로 창단된 것은 지역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무용사에서 갖는 의미도 크다."

▶초대 안무자로서 어려움도 많았을 듯한데.

"함경남도가 고향인데 6·25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 왔다가 무용 때문에 1957년 대구로 왔다. 당시만 해도 현대무용이란 개념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터라 고생이 많았지만 성과도 있었다. 가장 큰 성과가 시립무용단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창단 당시 상임 단원조차 없었다. 비상임 단원제로 운영됐고 안무자 월급과 훈련장만 지원됐다. 예산 지원도 거의 없었다. 상임 단원 없이 시작해 단원을 조금씩 늘려가는 일이 쉽진 않았다. 황무지를 개간한다는 심정으로 일했다."

▶현재는 상임 단원이 40여 명에 이른다.

"2대 안무자인 구본숙을 비롯해 많은 후배 안무가들의 힘으로 대구시립무용단이 이만큼 성장했다. 국내를 넘어 중국, 영국, 멕시코 등에서도 초대 및 교류 공연을 펼쳐 대구 무용의 저력을 보여줬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와 호흡하는 작품을 보여주고 세계 현대무용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갖추는 데 힘써왔다."

▶최근 무용단원들의 기량이 부쩍 높아졌다고 했는데.

"시립무용단원은 직업무용가다. 그러면 무용가로서 자신의 몸과 기량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한때 직업무용가로서 수준이 안되는 단원들도 있었다. 최근 좋은 안무가들이 들어와 단원들의 기량이 높아지고 국내외 역량 있는 무용가도 영입해 작품 수준도 많이 좋아졌다. 김성용 안무자는 단원들의 뛰어난 역량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래도 아쉬움은 있다고 했다.

"올해 대구시립무용단이 창단 40주년을 맞아 다른 지역과의 교류 행사, 젊은 무용가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대구시립무용단의 서울 공연을 보면서 서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기량이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대구시에서 이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대구시립무용단이 대구를 넘어 전국을 대표하는 현대무용단이 되기 위해선 시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대구시립무용단의 1년 예산이 광주, 대전, 인천 등 타 시도 시립무용단보다 턱없이 적다. 무용단에도 바라는 바가 있다. 무용수 기량만으로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작품에 철학이 녹아있어야 한다. 안무자는 물론 단원도 늘 공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대구시립무용단이 무용 인구 저변 확대에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도 현대무용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크다.

"대구시립무용단이 최근 기획한 한 공연에서 인상적인 작품을 봤다. 목수가 집 짓는 과정을 무용언어로 풀어낸 작품인데 쉽고 재미있었다. 이런 시도들이 현대무용에 대한 고정관념을 깰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재미 위주로 가다 보면 예술성이 부족할 수 있다. 관객에게 쉽게 다가가면서 감동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작품에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쉬운 주제, 실내공연만이 아닌 야외공연 등으로 관객과 가까워지려는 시도도 해야 한다."

▶지역 무용계가 기형화돼 있다고 했는데.

"지역 무용계를 이끌어갈 전문 무용가를 배출하는 대학의 무용학과가 위기에 섰다. 상당수 대학의 무용학과가 정원 미달로 애를 먹고 있다. 그런데 아마추어 무용가는 늘고 있다. 한때 한국무용을 취미로 배우는 사람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발레 취미생들이 늘었다. 무용 인구 증가는 반길 일이다. 하지만 순수무용을 하는 프로무용가도 많아져야 한다. 전체 학생 수가 감소하니 당연히 무용 입시생도 줄었다. 여기에다 수도권 대학 진학이 많아져 지역 무용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용인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현재 대구 무용계를 보면 교육자와 안무가는 많은데 무대에서 직접 춤추는 무용가는 줄고 있다. 대학 졸업 후 너도나도 대학교수나 안무가가 되려는 성급함 때문이다. 무대에서 자기 춤을 충분히 춘 후에 자연스럽게 교육자와 안무가가 되어야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무용인이 교육자나 안무가로 몰리는 이유는.

"생계유지 때문이다. 공연 출연료만으로는 무용가로서 살아가는 게 힘들다. 대학교수 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고 안무가가 돼야 그나마 이런저런 지원금을 받아 공연할 수 있다. 이 같은 풍토가 지역 무용계에 만연하니 한정된 자원이 서로 다른 작품에 품앗이해 출연하고 공연 제작을 도와준다. 비슷비슷한 출연진, 제작진이 참여한 작품은 개성을 갖기 힘들다. 결국 자기 색깔을 잃게 된다."

▶문화기획단체 〈사〉다다 대표로 있으면서 아직도 공연 현장에서 뛰고 있다. 새로운 작품을 준비 중이라 했는데.

"국채보상운동을 소재로 한 '몸으로 말하는 국채보상운동'이다. 1907년 대구에서 시작돼 해외로도 확산한 주권수호 운동인 국채보상운동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그칠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이어가야 할 소중한 우리의 자산이다. 그 정신을 무용 작품으로 표현했다. 2017년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첫선을 보였는데 규모를 좀 더 키워 대구 8개 구·군 순회공연을 추진 중이다. 대구의 정신인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살리는 것은 물론 대구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키워가고 싶다."

논설위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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