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아픈 역사의 현장] (9·끝) 美공군 잘못된 정보로 예천 민가 오폭...민간인 70여명 희생

  • 장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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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18   |  발행일 2021-10-18 제6면   |  수정 2021-11-04 08:28

영남일보자료
미군의 오폭으로 마을주민 48명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산성리 마을이 자리한 학가산.

6·25전쟁 당시 경북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와 감천면 진평리에 가해진 미 공군의 폭격은 적군의 존재와 상관없는 초토화 작전이었다. 이 때문에 이 마을 주민들에겐 아직 기억조차 하기 싫은 사건으로 남아 있다. 보문면 산성리는 그나마 다행이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미군 오폭 사건으로 규명을 받아서다. 보문면 산성리는 2010년 6월 예천군에서 위령비를 세워 희생자와 가족은 조금이나마 위안으로 삼고 있다. 위령비가 건립된 후 매년 합동위령제도 지낸다. 하지만 감천면 진평리는 지금까지 진실 규명을 받지 못한 채 아픔의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사건에 이어 두 번째로 미군 서류에 의해 민간인 살상이 확인됐다. 6·25전쟁 당시 잘못된 정보로 민간인 마을에 폭격이 가해져 많은 주민이 참사를 당한 이 사건들은 피해자들에게 아직 아무런 보상이 없는 상태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상황에 봉착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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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들이 최초로 폭탄이 떨어진 곳을 가리키고 있다. 〈영남일보 DB〉


◆보문면 산성리
학가산에 패잔병 정보 입수한 미군
마을 위치 오인 엉뚱한 곳에 폭탄 투하
집안일 하던 부녀자와 아이들 희생
주민들 노력으로 진상규명 했지만
70년지난 지금도 피해자 보상없어

◆보문면 산성리 미군 오폭 어떻게 알려졌나

예천읍에서 자동차로 40여 분 거리인 해발 880m의 학가산 중턱에 자리 잡은 보문면 산성리. 여느 산골 마을과 다를 바 없이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6·25전쟁의 비극을 겪은 지 70년의 세월이 흐른 곳이다. 미군 비행기의 오폭으로 마을 주민 48명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주민들은 아직 전쟁의 상흔을 씻지 못한 채 통한의 삶을 살고 있다.

이 마을에 악몽의 시간이 찾아온 것은 1951년 1월19일 낮 12시쯤이다. 마을 상공에 미군 정찰기 2대가 나지막이 선회하더니 곧바로 나타난 전투기 6대가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휘발유까지 마구 뿌렸다.

이날 남자들은 대부분 인근 산에 나무하러 간 탓에 화를 면했다. 그러나 명절을 앞두고 집안에서 부업으로 명주를 짜던 부녀자와 아이들이 희생양이 됐다. 폭격은 명백한 미군의 오폭이었다. 미군은 당시 산성리와 같은 학가산 자락인 안동시 북후면 신전리(석밭)에 인민군 패잔병 수백여 명이 들어왔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폭격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군은 마을 위치를 오인했고, 엉뚱한 마을에 폭탄을 투하했다. 주민들은 70년이 지나도록 억울한 죽음에 대한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있다.

마을의 비극이 알려지게 된 것은 1996년 마을 주민들이 오폭 진상조사위원회를 결성하고 보상추진위원회를 구성하면서부터다. 지난 45년 동안 베일에 가려져 그동안 말 한마디 못하고 숨죽여야 했던 시간이 멈춰지고 진상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주민들이 사건 진상규명과 보상을 요구하는 진정서 등을 관계기관에 보내자, 1999년 예천군의회도 보문면 산성리 오폭사건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해 자체 조사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주민들의 끈질긴 진실 규명요구에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예천 산성리 미군 오폭 사건'으로 규명받았다. 미국이 배상 등 도의적 책임을 지도록 미국 정부와 적극적 협상을 하도록 정부에 권고까지 했다. 하지만 속시원한 답변은 아직까지 들려오지 않고 있다.

◆감천면 진평리
산성리와 동일 시점에 미군이 폭격
진실화해위, 진상 규명 '불가' 통보
"당시 흰옷은 적으로 간주하고 폭격
국제법 위반여부는 확인할 수 없어"
유족들 "정부가 피해 보상해줘야"


◆감천 진평리 오폭은 진실 규명 불능

보문면 산성리와 동일 시점에 감천 진평1리에서도 주민 20여 명이 미군 폭격으로 희생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사건이 진실화해위원회에 접수된 것은 2006년 11월30일. 진실화해위원회는 그해 12월19일 진상 조사 개시 결정을 내렸다.

당시 주민들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19일 오후 3시쯤 장례식을 위해 주민들이 마을 뒷산 능선에 모여 있을 때 미군 전투기 7대가 기관총과 폭탄을 무차별로 퍼부었다"고 했다. 또 "이 폭격으로 동네 30가구 중 25가구가 불에 탔다. 노인, 부녀자, 어린이 등 26명이 숨지고 20명이 총상과 화상을 입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특히 사망자 중에는 진평리 주민 외에도 벌방리에서 피란 온 13세 이하 어린이와 20세 이상 부녀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마을은 조사 결과 진실 규명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결과서에는 "이 마을은 인민군이 침투한 소백산맥 인근 미군의 대게릴라전 합동 수색작전 지역이어서 인민군이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 흰옷을 입은 다수의 주민도 발견됐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흰옷을 입은 다수의 주민 존재를 발견하고 이들이 주민인지에 대한 충분한 확인 없이 폭격을 가해 마을을 소각하는 등 민간인에 대한 집단희생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제법 위반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라고 결론을 냈다. 이어 "이 사건은 6·25전쟁 당시 미군이 중·동부 전선 후방에 침투한 인민군과 게릴라들을 소탕하는 작전을 펼치면서 예천 감천면 진평리와 영주 봉현면 노좌리에 이르는 지역을 폭격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김홍년 진평1리 이장은 "당시 민간인 피해가 있었지만 인민군이 있는 의심 지역으로 오폭 피해에 해당하지 않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 규명에 대한 의지가 떨어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진실이 꼭 밝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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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1일 보문면 산성리에서 열린 산성동 미군오폭 위령제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예천군협의회 주관으로 열려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독자 제공>


◆위령비와 보상 규정

이렇듯 이들 마을은 7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피해자들에게 아무런 보상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보문면 산성리는 진실규명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보상은 없다. 그나마 예천군이 2009년 12월 6·25전쟁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유가족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과거와의 화해와 국민통합을 위한 합동위령제를 처음으로 열었다. 이듬해 6월에는 '미군 폭격 사건 희생자 위령비'를 건립해 공식적으로 희생자의 원혼을 달래주고 있다. 산성리 마을 초입 쉼터 옆에 화강석 재질로 세워진 위령비는 가로 1.8m, 높이 3.5m 규모다. 미군 오폭으로 희생된 안인모씨 외 50명의 이름을 새겨 넣고 제단을 마련했다. 제막식 당시 유족들은 "진실화해위가 미 공군이 인민군의 동향이 보고된 산성동 인근 지점의 좌표와 산성동 마을을 동일시했거나, 민간인이 거주하고 있다는 점 등을 충실하게 정찰하지 않은 채 산성동을 폭격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정부가 인민군의 민간인 위장 침투술로 인해 '흰옷을 입고 모인 자는 모두 적으로 간주하라'는 내부 묵인에 따라 흰옷을 입은 마을주민이 목격된 산성동을 적의 은거지로 간주하고 폭격 대상으로 삼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힌 만큼 이에 따른 보상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성리 주민들은 진실 규명을 넘어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감천면 진평리는 진실 규명 자체가 불가능해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12년 10월 이한성 국회의원이 '예천 산성리 사건 희생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무총리 소속으로 예천 산성리 사건 희생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를 두고, 희생자와 그 유족에게 피해 정도 등을 고려해 보상금·의료지원금·생활지원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정부가 위령탑 건립 등 위령 사업에 필요한 비용을 예산 범위 내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이 법안은 폐기된 상태다.

산성리 오폭 피해자 가족인 안태기(74) 노인회장은 "미군 오폭으로 할아버지와 동생, 삼촌 등 무려 9명의 가족을 잃었다"면서 "미군의 오폭으로 규정된 만큼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정부는 유족에게 국가유공자 대우와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존자는 대부분 80세가 넘었으며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 정부는 이들 피해 당사자와 유족들의 아픔을 껴안아 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석원기자 histor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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