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아픈 역사의 현장] (8) 경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1천여 명…860여명은 국군-경찰에 의해 집단처형

  • 송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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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04 20:20   |  수정 2021-10-18 15:30
기계천 미군 폭격으로도 민간인 35명 숨져
진실화해위 1차 조사 결과 895명 희생 확인
2기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완료땐 크게 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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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11월 19일 경북 경주시 황성공원 내 '한국전쟁 민간 희생자 위령탑' 제막식 모습. <경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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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황성공원 내 한국전쟁 민간 희생자 위령탑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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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11월 25일 미군 폭격 사건 희생자 유족회가 '제8회 경주 기계천 미군 폭격 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 모습. <경주시 제공>


#1. 1950년 8월 3일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서 경찰관이 부친(이석환)과 삼촌 2명(석륜·석태)을 끌고 가서 아버지와 막내 삼촌은 천북면에서 사살되고, 둘째 삼촌은 목포 바닷가에서 사실 된 것으로 확인됐으나 사체를 찾지 못했습니다. <경주유족회 고문 이원길>


#2. 1950년 8월 5일 경찰관 2명이 보도연맹 구실로 삼촌<조극환)을 잡으러 왔다가, 삼촌이 피하자 대신 부친(인환)을 연행해 간 후 행방불명됐습니다. 부친 사망 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적색분자로 몰리는 등 평생 비통한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경주유족회 고문 조희덕>


◆6.25 격전지 등서 민간인 1천여 명 희생
경북 경주시는 한국 전쟁 전·후로 민간인 희생자 수가 많은 지역으로 손꼽힌다. 경주는 한국전쟁 때 국내 최대 격전지인 안강·기계전투가 있었고, 북한군(빨치산)의 퇴각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주는 이러한 지리적 여건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많아 '낮에는 국군이, 밤에는 빨갱이가 들이닥쳤다'라는 어른들의 말이 실감이 날 정도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 <사>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경주유족회, 경주시 등에 따르면 경주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수는 진실화해위 1차 조사 결과 895여 명으로 집계됐다.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지난해 6월 출법해 올해 5월부터 경주지역 진실 규명에 나서 국민 보도연맹 사건 83건, 민간인 희생 사건 30건이 추가로 접수되면서 희생자가 늘어날 전망이다.

 

경주의 민간 희생자 유형은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대구 10월 항쟁 관련 민간인 희생 △국민 보도연맹 사건 △미군 폭격 사건 등 다양하다. 특히 5·16군사정변 이후 김하종 민간인 희생자 경주유족회장(전국유족회 국회 특별법추진위원장)이 당시 혁명재판소에서 반국가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2년 8개월 복역한 사건도 있었다.


진실화해위 1차 조사 결과, 한국전쟁 전·후인 1948년 2월 28일부터 1950년 9월 25일까지 2년 7개월간 경주시 13개 읍·면·동에서 860여 명의 민간인이 육군 정보국 CIC 경주파견대와 경찰에 끌려가 재판도 없이 예비 검속으로 집단 처형됐다. 지역별로 내남면이 150명으로 가장 많고 안강읍 107명·감포읍 90명·문무대왕면(양북면) 77명·양남면 71명·건천읍 53명·서면 40명 등이다.


집단 매장지는 100여명이 처형·매장된 내남면 노곡리(메주골)를 비롯해 내남면 이조리·명계리·용장리·망성리, 천북면 신당리, 건천읍 송선리·철교, 감포읍 나정리(큰 골짜기)·팔조리·감포 앞바다, 문무대왕면 용동리, 산내면 동창천 원두 숲, 경주시 황룡동 등이다.


<사>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경주유족회와 경주시는 지난 2016년 11월 19일 황성공원에 경주지역 민간인 희생자 추모를 위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을 건립하고, 매년 10월 합동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경주 기계천 미군 폭격 민간인 35명 숨져
진실화해위원회는 2009년 9월 25일 한국전쟁 당시 발생했던 ‘경주 기계천 미군 폭격 사건’으로 민간인이 집단 희생된 사실을 확인하고, 희생된 피해자의 구제를 위해 미국 정부와 협의할 것 등을 국가에 권고했다. 경주 기계천 미군 폭격 사건은 1950년 8월 14일 경주시 강동면 기계천에서 집단으로 피난길에 오른 민간인이 미군 폭격으로 이석영(당시 33세)씨 등 35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민간인 희생자는 최소 35명(남자 19·여자 16명)으로, 확인 희생자 30명·미신청 희생자 1명·추정된 미신청 희생자 4명이다. 10세 미만의 어린이 9명도 희생됐다.


경주시 강동면 안계리(심동·사곡·삽실·구경·초감) 주민들은 이날 북한군이 쳐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군인의 눈에 잘 띄는 곳으로 피난해야 피해가 없다”라는 마을 어른의 주장으로 마을 서쪽의 기계천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당일 미군 정찰기 1대가 피난 지역 상공을 돌다 갔으나 대부분의 피난민들은 정찰 후 포격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흰 천을 흔들기도 했다. 정찰 후 전폭기 2대가 남쪽에서 날아와 1대씩 번갈아 가며 20분 정도 폭격했다. 미국 공군 문서에 따르면 1950년 7월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 공군 제18전폭기단 소속의 제39전투편대가 피난민이 모인 강둑에 폭격했다고 기록돼 있다. 폭격은 낮 12시 30분에서 오후 2시 40분까지 F-51 전폭기 2대로 이뤄졌다.


2009년 7월 진실화해위가 이 사건이 미군의 폭격과 기총사격으로 발생한 것이라는 진실규명 결정을 내려 유족들은 사건 발생 60년을 맞은 지난 2010년부터 매년 강동면 양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합동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진실화해위는 “폭격 당시 현장에는 인민군이 없었고, 일부러 노출된 장소에 피난해 있던 민간인에 대한 경고나 확인 등의 조치나 민간인과 적을 구별할 의무를 다하지 않고 폭격한 것은 국제관습법적 지위를 가진 국제인도법은 물론, 당시 미군 교범에도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폭격 당시 부모와 형이 희생된 이원우 미군 폭격 사건 희생자 유족회장 “미군이 피난 길에 오른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한 것은 명백한 전쟁 범죄”라며 “반드시 미군 폭격에 따른 민간인 희생의 진실을 밝히고 위령탑 등을 건립해 돌아가신 분들의 원통한 한을 되새기겠다”고 말했다.


송종욱기자 sj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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