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아픈 역사의 현장](1) 서대문형무소보다 순국 서훈자 많았던 대구형무소이건만...독립투사 이름 적힌 벽돌 조형물만 남아

  • 정우태
  • |
  • 입력 2021-08-09 21:40  |  수정 2021-09-07 07:26
이육사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 대구형무소 거쳐가
중구청, 교회측과 MOU 체결하고 사적기념관 조성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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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조선총독부와 조선치형협회가 발간한 '조선형무소 사진첩'에 수록된 대구형무소 전경 (대구시립중앙도서관 일제시기 자료)

일제 강점기의 아픈 현장을 살펴볼 수 있는 사적이 대구 도심 한 가운데 있다. 독립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삼남(경상도·전라도·충청도) 지방의 투사들이 투옥되고 순국한 '대구형무소' 터가 바로 대구 중구 삼덕동에 존재한다. 현재 대구형무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순국선열의 희생정신은 생생히 살아남아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 3.1운동 당시 5천여명 수용
조선시대 죄인을 수용하는 감옥은 주로 지방행정 최고 관직인 관찰사가 머물던 경상감영에 위치해 있었다. 대구의 경우 현재 경상감영 공원 인근에 2개소(좌옥·우옥)의 감옥이 있었다.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된 1908년 대구경찰청(현 대구 중부경찰서) 뒷편에 대구 감옥이 설치됐으며, 1910년 삼덕동에 감옥을 신축했다. 대구형무소로 이름을 바꾼 것은 1923년이었다. 해방 후에도 같은 자리에 있던 대구형무소는 1961년 대구교도소로 개칭했고, 10년이 지난 1971년 달성군 화원읍으로 옮겨졌다.


대구 형무소는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감옥이었다. 삼덕동으로 이전할 당시 1만2천561여㎡(3천800평) 규모로 설치됐으나, 확장을 거듭해 1920년대 들어서는 처음의 2배 이상 크기인 2만5천785여㎡(7천800평)이 됐다. 박경목 서대문형무소역사 관장의 '일제 강점기 서대문형무소 연구' 을 보면 1937년 기준 대구형무소 수감자는 1천197명으로 기록돼 있다. 이는 전국 수감자의 6.48%로, 서대문형무소에 이어 가장 많다. 3.1운동이 전개된 1919년에는 5천여 명에 이르는 인원이 수용되기도 했다.


대구형무소 내부에는 태형, 사형을 집행하는 장소도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대구형무소요람 등에 따르면 사형 집행 혹은 다른 이유로 옥중에 목숨을 잃은 입소자가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사형집행과 사망자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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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조선총독부와 조선치형협회가 발간한 '조선형무소 사진첩'에 수록된 대구형무소 (대구시립중앙도서관 일제시기 자료)
◆ 참혹한 형무소의 일상
일제시대 형무소의 환경은 열악함을 넘어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일제는 조선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였다. 그 결과 좁은 공간에 수용 인원은 많아졌고 위생상 문제로 인해 각종 질병에 걸린 재소자가 적지 않았다. 영양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병을 얻으면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반인륜적인 고문도 자행됐다. 비밀리에 운영되는 독립운동단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취조 과정에서 구타는 물론 잔혹한 방벙의 고문을 일삼았다.


성주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장석영 선생이 대구형무소에서의 경험담을 쓴 '흑산일록'에는 수감자들의 참혹한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당시 69세 고령의 나이였던 장 선생은 4개월여 동안 수감돼 있다 출옥한 후 경험담을 남겼다. 장 선생은 "밤인데도 누워 있지 않은 자가 있으면 모두 문을 열고 들어가 뺨을 때리거나 허리를 차서 가지로 능욕을 하였다. 대개 이 속에 들어온 한인(韓人)은 일찍이 짐승만도 못하였다"고 서술했다. 감옥 환경에 대해선 "방마다 사람 수가 적어도 스물 네댓 명은 되기에 앉거나 누울 때 빽빽하게 어깨와 등이 서로 부딪혔고, 밤에는 제대로 누울 수 없어 어떨 때는 앉아서 아침을 기다리기도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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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형무소 터에 위치한 삼덕교회 한 켠에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독립투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벽돌 모양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정우태기자 wtae@yeongnam.com
◆ 독립운동가들의 터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대구형무소를 거쳐 갔다. 항일투쟁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도 적지 않다.


저항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는 대구형무소에서 받은 수인번호 264를 따서 호를 '육사'로 삼았다. 경북 안동 출신인 그는 1925년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에 가입했으며, 1927년 중국에서 귀국해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가담한 죄목으로 대구형무소에 수감돼 약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30년대 독립의 의지를 담은 작품을 발표하며 활동을 이어가던 중 베이징 감옥에 다시 투옥돼 광복을 1년여 앞두고 숨을 거뒀다.


대한광복회 총사령관 박상진 의사는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울산에서 태어난 그는 판사 시험에 합격해 평양법원에 발령을 받았으나, 경술국치로 일제의 식민지가 되자 '일제의 관리자는 되지 않겠다'며 판사직을 사임했다. 이후 박 의사는 대구에 상덕태상회를 설립하고 독립운동의 거점을 마련했으며, 비밀결사인 조선국권회복단을 창립했다. 또한 대한광복회를 조직하고 만주에 군관학교를 설립했다. 1918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대구지방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고 1921년 대구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심산 김창숙 선생, 전수용 의병장, 안규홍 의병장 등도 대구형무소를 거쳐갔다. 최근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에서 출간한 '묻힌 순국의 터, 대구형무소' 개정판에 따르면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한 독립지사는 206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202명은 국가 서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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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형무소 터에 세워진 삼덕교회 60주년 기념관 입구. 대구형무소 수감 당시 수인번호 264에서 '육사'라는 호를 따온 저항시인 '이육사'의 이름이 새겨진 현판이 걸려져 있다. 정우태기자 wtae@yeongnam.com
◆ 기억의 공간 생기나
대구형무소의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서대문 형무소가 보존돼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서울시는 서대문 형무소의 복원 및 보존에 노력을 기울였다. 1990년대 중반 '독립공원 사적지 성역화' 계획을 추진하면서 구치소의 제9~13옥사·중앙사·한센병사·지하옥사, 사형장, 망루, 담장 등을 원형 그대로 되살렸다. 현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과거를 교훈으로 삼고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는 역사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구형무소를 기억할 수 있는 별도의 역사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추진 중인 대구독립운동기념관이 설립되면 기념관 내부에 대구형무소를 재현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의견도 나온다. 우대현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상임대표는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한 서훈자가 서대문형무소보다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구에는 흔적이 하나도 없다. 영남 뿐 아니라 호남, 충청 독립투사들도 대구형무소에 투옥된 분들이 많아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라며 "민간단체에서 주도적으로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 복원은 못 하겠지만 새롭게 세워질 대구독립운동기념관에 대구형무소를 재현한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삼덕교회에는 대구형무소 터임을 짐작케 할 수 있는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교회 건물 외곽에는 이곳을 거쳐 간 독립투사의 이름이 적힌 벽돌 모양의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다. 삼덕교회 60주년 기념관 1층 로비에서는 '이육사의 벽'이 위치해 있다. 최근 대구 중구청은 교회 측과 MOU(업무협약)를 체결하고 사적기념관(가칭 '이육사 전시관')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중구청 관광진흥과 관계자는 "근대 골목투어 코스에 옛 대구형무소 터가 포함돼 있지만 자취가 남아있지 않아 아쉬운 면이 있었다. 교회와 업무 협약을 맺으면서 공간을 확보했고 기념관 건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정우태기자 wtae@yeongnam.com

<대구형무소 연혁>

1908년 대구감옥 개청(경상감영)
1910년 기관 신축 이전(대구 중구 삼덕동 102번지)
1923년 대구형무소 명칭 변경
1961년 대구교도소 명칭 변경
1971년 현재 대구교소도(달성군 화원읍 비슬로 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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