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아픈 역사의 현장] 상처를 딛고 희망을 키운다

  • 정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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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09 21:30  |  수정 2021-09-07 07:26

대구와 경북에는 '상처'가 많습니다. 아픈 역사의 상흔입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생긴 상처들입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사건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상처 없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역사의 화살'은 우리나라 전역을 정조준했고, 대구와 경북도 당연히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참 고단한 역사였습니다. 숱한 역경을 딛고 눈부신 발전을 이룬 현재가 놀랍기만 합니다. 일제 강점기라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 맞은 해방의 기쁨도 잠시.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분열됐고 참혹한 전쟁을 겪었습니다. 이념의 희생자가 너무 많았습니다.


영남일보는 대구와 경북지역 아픈 역사의 현장을 찾아봤습니다. 아픈 역사가 주는 교훈이 남다르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자 함석헌 선생은 저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아픈 역사를 되짚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사람은 고난을 당해서만 까닭의 실꾸리를 감게 되고 그 실꾸리를 감아 가면 영원의 문간에 이르고 만다."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될 것입니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면 미래의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순국의 터'로 불리는 대구형무소의 흔적부터 살펴봤습니다. 대구형무소는 일제강점기 시절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된 곳입니다. 당시 경상도는 전라도, 충청도와 함께 독립운동이 활발한 삼남지방으로 불렸습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남북의 분열에 따른 이념 갈등과 한국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무고한 양민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군과 경찰이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김천 등에서 민간인 학살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른바 '보도연맹 사건'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오폭'으로 영문도 모른 채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대구와 경북지역 아픈 역사의 현장은 과연 어떻게 기억되어야 할까요.


정우태기자 wta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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