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영남일보 문학상] 단편소설 심사평 "사라져가는 존재들에 내민 연민의 손길 신뢰감"

  • 김영찬 평론가·정성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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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03 08:25  |  수정 2022-01-03 13:35  |  발행일 2022-01-03 제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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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편수가 예년보다 줄었다. 길어지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창작 활동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비일상적인 상황이 창작을 위축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투고작들에서 웃음 코드가 거의 실종된 것이며, 자극적인 소재와 극적 서사가 두드러지는 경향을 볼 때 비일상성이 준 영향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본심에 오른 여덟 편의 소설 중에 우리가 주목한 소설은 모두 네 편이었다.

'포틀랜드 여자'는 폭력, 마약, 살인에 노출된 문제적 인물을 통해 정의에 대한 묵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파지'는 도서관 창작교실에서 만난 젊은 작가들의 초상을 통해 원고가 '파지'로 전락한 현실의 냉혹한 이면을 살피고 있다.

마지막까지 우리의 손에 남은 작품은 '닥터 백'과 '블랙 잭나이프'였다. '닥터 백'은 호주의 타로하우스에서 인연이 얽힌 한국 젊은이들의 삶을 원경으로 하고 있다. 그들은 경제적 난민이나 다름없는 처지다. 이 소설은 '타로'라는 소재를 통해 각자의 내력을 당기는 구성력이 돋보인다. 삶의 영속성에 대한 의문과 부정은 '이방의 도시'와 '타로'라는 소재주의를 뛰어넘는다.

'블랙 잭나이프'는 딸이 찾아 나선 아버지의 유품이다. 오랫동안 아버지를 간병하던 딸이 아버지를 버리고 떠났다가 돌아와 죄책감과 미안함에 시달린다. 잭나이프를 잃어버린 집에 잠입해 하루를 머물며 목격하는 주인집 여자의 비밀스러운 내력은 부녀의 삶과 겹친다. 이 소설은 인물이 가진 죄책감에 잠식당하지 않고 서사를 세우면서 흡인력을 높이고 있다. '잭나이프'라는 물건이 인물의 행동을 추동한다는 설정이라든가 주인 여자의 내력을 대화에 의존해 전달하는 점이 다소 거슬리기는 했지만 일단 상황 설정 후에 서사를 직조하고, 삽화에서 의미를 발생시키는 솜씨는 믿음직했다.

선자들은 오랜 논의 끝에 '블랙 잭나이프'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이 작품이 가진 울림이 상대적으로 컸으며, 특히 사라지거나 사라져가는 존재들을 향해 내미는 연민의 손길이 호들갑스럽지 않고 미약하여 오히려 신뢰감을 주었다. 당선자에게 축하 인사를 드린다. 나아가 삶과 맞서는 글쓰기를 통해 어두운 시대를 묵묵히 건너고 있는 모든 투고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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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 평론가·정성태 소설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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