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영남일보 문학상] 詩 당선작 - 고양이 무늬로 웃는 연습하기

  • 손연후
  • |
  • 입력 2022-01-03 08:39  |  수정 2022-01-04 15:46
966.jpg
이지현 作

고양이 무늬로 웃는 연습하기 

손연후

 

노란색 상자 안에


털실 뭉치 좋아하는 고양이를 기르는 일


누구나 동그란 노란색으로 웅크려본 날들 있었지

쉼표 모양 씨앗처럼 고요히 꿈꾸는 연습


감자야, 하고 부르면 눈이 동그래져서 딸꾹 하고

딸기향 나는 감기에 걸린 것 같아

당신 넥타이에도 딸꾹거리는 딸기가 묻었어,

우리는 서로의 코를 쿡 찌르며 웃어버렸지


커튼을 열면 우리도 고양이 꼬리처럼 기다랗게 기대어 보고

노란 고양이 무늬 닮은 햇빛이 머리 위로 얼룩덜룩 흘러내렸지

반짝이는 유리잔마다 함께 이름을 붙이던 날

사람은 이름대로 사는 거래, 여기저기 우리 이름을 붙이자

우리는 감자 눈동자 속에 살고 유리잔과 식탁보 넥타이 구두에도 살고

사람들 와르르 모였다 흩어지는 보도블록 횡단보도에도 길쭉하게 누워 있는 거야

수많은 버스 차창 손잡이에도 상냥한 고양이 키스처럼 토닥토닥 흔들리고 있는 거지


하늘이 자몽즙 같은 노을빛으로 젖어들면

기다란 빨대 꺼내 눅눅해진 하루를 보글보글 휘저어볼래

볼을 삐죽 부풀린 거품들 퐁퐁 터지고

푹 익은 노을 냄새 싫어하는 감자는 자꾸만 빨대를 타고 기어오르고

잭의 콩나무처럼, 하늘 위로 쑥쑥 자라나는 노란색 빨대를 올려다봤지

높이 더 높이, 어느새 굵어진 줄기에서는 샛노란 꽃잎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어


날마다 눈부시게 타오르는 구름 위로 훨훨 날아가는 꿈을 꿨어

감자는 점프를 잘했고 우리는 고양이 무늬로 웃으며 서로에게 손을 뻗었지

하늘에서 빨간색 노란색으로 뒤섞여 열리던 우리의 기다랗고 사랑하는 미래들


감자에 대해 말하자면 먼저 사랑에 대해 말해야 해

우리는 노란색이었고, 커튼을 열면 유리잔마다 함께 반짝이며 살아있었지

우리는 씨앗처럼 가벼워 이 계절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늘씬한 고양이처럼 숨차게 달려보지 않겠니


매일 밤 노란색 상자 안에서

우리는 털실 뭉치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었고


통통 고양이 발소리 다가오자

우리는 눈 맞추며 함께 큰소리로 웃어버렸어 

 

기자 이미지

손연후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